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가만있어봐
여자는 미동도 안 하는 남자의 볼에서 떨어진 눈썹을 떼어주고 있다.
'그래서, 월요일에 ㅇㅇ이랑 같이 이력서를 쓴다고?'
그녀는 눈썹이 잘 안 떨어지는지 남자의 볼을 연신 톡톡 건드리면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고, 그도 익숙한 상황인 건지 살짝 눈을 감고 얼굴을 든 채로 진행 중이던 보고를 이어갔다.
'그런데 생각을 해봐. 그 일이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맞아? 무슨 일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잖아. 그리고 ㅇㅇ이랑 왜 그렇게 늘 같이 붙어 다니는 거야. 서로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동그랗게 뜬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그녀. 침묵.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가 헛기침을 하고는 자신만의 논리를 이어가지만, 목소리는 자신이 없고 그다지 납득이 갈만한 내용도 아니다. 사회 초년생 진입 준비 시기에 철학적 고찰이 담긴 화려한 논리를 쏟아낸다면 그것도 좀 무섭긴 한데, 그래도 어깨가 축 쳐진 그의 어깨가 안쓰러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전만 해도 즐거운 화제로 그녀를 즐겁게 해 주던 그였는데 말이다. 볼에 떨어진 눈썹 덕분에 화제가 바뀌면서 분위기가 뒤집어진 이 상황이 내심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하고 있는 그 아이.(저 또래의 커플은 대부분 여인과 남자아이임) '눈을 깜빡거리지 말걸 그랬어.'하고 있지 너? 하지만 눈썹과는 상관이 없다네 이 친구야.
그녀는 살짝 한숨을 쉬며 어깨에 걸친 니트를 바로잡고는 창밖을 내다본다. 또 침묵.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립밤을 꺼내 바르고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다시 그를 쳐다보는 그녀.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취조 시작 직전 배드 캅 앞의 용의자 표정이겠지. '내가 도대체 왜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한 불쌍한 존재. 그를 응시하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 안쪽은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마리아나 해구 같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오로지 어둠뿐이다. 그는 순간적으로 숨조차 멈춘 것 같았다.
'점심 뭐 먹을래?'
그녀가 살짝 미소 지으며 이야기했다. 갑자기 추운 겨울 끝에 불어오는 첫 봄바람을 마주하는 에스키모인처럼 들뜬 목소리로 그가 외친다.
'응! 네가 먹고 싶은 거!'
순간적으로 조금 전의 상황을 모두 뒤로 한 그 친구의 표정을 보며, 나는 이 연인이 어떤 관계인지 알고리즘의 코드를 들여다보듯 알아버리게 되었다. 그가 빨리 어른이 되길 바라지만, 그게 쉬운 건 아니니까.
'우선 그녀를 만나기 전에 주변 맛집을 미리 검색하는 것부터 시작하길 바라네, 친구. 그대가 그렇게 말 안 해도 그녀는 먹고 싶은 것을 먹을 테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