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길을 걷는다는 것
목적이 명확할 때에는 아무 고민 없이 그 방향으로 전진하면 된다.
한걸음 한걸음 성실하게 가다 보면 결국은 목적지에 닿게 될테니까. 하지만, 아주 가끔 주말에 날씨가 너무 좋으면 명확한 목적 없이 무작정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밖으로 나가야겠어!'라기보다는 '밖에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에 가까운 비강제적 의지로부터 시작되는 산책은 늘 보다 많은 선택을 요구한다.
보통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마무리되기 전에 집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아파트를 나서자 마자 고민이 시작된다. '지하철역으로 가야지.'정도까지는 쉽게 타협되지만, 역시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지 선택하기 위해서는 목적지를 정해야만 한다.
'이러면 안 돼. 목적지를 빨리 정하자.'
해봤자 너무 가고 싶어 미치겠는 상황에서의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뭐 거기나 가 볼까?'
정도의 가벼운 기분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많이 내리거나 혹은 문이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열려있는 경우가 생기면 이상하게도 후닥 내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왜 그러는 건지 설명은 불가능 하지만 말이다.
낯선 장소에 내리게 되면 근처에 뭐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바로 목적지를 수정할 수도 없다. 대충 바깥으로 나와서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이나 햇빛이 눈부시게 하지 않는 쪽으로 걷는 수 밖에.
이건 여행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어느 곳을 가더라도 미리 해당 지역을 공부하거나 '가고 싶은 곳 리스트'같은 것은 준비하지 않기 때문에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된다.
'거기에 갔었는데 왜 그건 못 봤어?'
사실 대답하기도 상당히 애매한 질문이라 그냥 슬쩍 웃어넘기고 마는데, 별로 자랑할만한 것도 아닌 성격까지 모두 끄집어내 그곳을 방문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지만 좋은 점도 조금은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괜찮은 곳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말하고 보니 그다지 좋은 점 같지는 않지만.
영화 '만추'에서 현빈과 탕웨이의 파이크 플레이스 신이 너무 좋았어서,
'시애틀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꼭 가봐야지.'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정도면 여행의 목적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해당 목적지를 찾아가면서 보게 되는 다른 모든 것들은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면 한층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경험상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더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밖으로 나가 조금 걸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