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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우산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by Aprilamb

오랜만에 비가 정말 많이 내린다. 이 주일 전쯤 회사에 두고 갔던 우산이 있어 여유 있게 인적이 드문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어떤 여자가 미친 듯이 뛰어와서는 내 우산 살 끝에 자기 정수리를 던진다. 정말 너무 아팠을 것 같다. 어묵이었다면 꽂힌 채로 우산 살 끝까지 밀려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아 씨……!”


혼자 비 쫄딱 맞고 가는 게 불쌍하기도 하고, 마침 들고나온 우산도 커서, 정말 역 입구까지 씌워 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저 소리를 들으니 그렇게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게, 만약 나였다 해도 저렇게 짜증을 내버린 상태에서 상대방의 호의에 웃는 낯으로 ‘고마워요’하기는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괜히 비 맞는 시간만 늘려주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지만, 천천히 걷는 나와의 거리가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다. 아마 지쳐서 그런 것 같다. 비가 점점 더 많이 왔기 때문에 더욱 안쓰러웠다. 그렇게 죄인이 된 것 같은 상태로 뒤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길가에 또 다른 여자가 비를 쫄딱 맞으면서 택시를 잡고 있다. 역시 택시는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고, 이미 여자의 머리는 물에 푹 담갔다가 뺀 대걸레처럼 젖어있다. 그 옆을 지나갈 때쯤 그녀는 택시 잡는 것을 포기하고 역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마침 그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좀 씌워주시면 안 되나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때 나와 일정 거리를 두고 걸어가고 있던 앞의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시 택시를 기다리던 여자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눈으로 말했다.


‘안돼요. 공평해야 하거든요.’


그게 공평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처한 마음에 나도 그냥 우산을 접고 빗속을 걷고 싶은 심정이 되어 버렸는데, 갑자기 옆에서 우산을 접어 든 외국인 남자가 비를 맞으며 성큼성큼 내 옆을 지나간다. 순간, '저 사람은 행동에 옮긴 건가?’ 하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 버렸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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