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대충 지내다 보니 올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시작하는 날보다는 왠지 엄숙하고 경건한 느낌이면서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날. 마지막 날.
인생을 별 계획 없이 살아가고 있어 대부분 특별한 결심 없이 새해를 맞이하고 있으므로, 마지막 날이라고 뭔가 회고하면서 마감할 것도 없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할까. 회고할 일이 별로 없는 게 재앙은 아닐 테니, 종두득두種豆得豆 정도로 해두고 싶다
.
희한하게도 연말과 신년은 끝과 시작이 붙어있는 형태인데, 한 해가 가고 다음 해가 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렇지 생각해보면 그렇게 흔한 구조는 아니다. 퇴직하면 대부분 구직기간을 거친 이후에 다시 입사하게 되고, 여자 친구나 남자 친구와 헤어진 이후에도 어느 정도는 혼자 버티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 보통이니까.
물론 연속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거나, 강남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갈 때 2호선에서 3호선으로 바로 갈아타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어느 쪽이든지 트랜싯에서는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다음을 준비할 시간이 존재한다. 봄방학 정도의 진공상태 같은 휴식 기간을 보내거나, 2호선에서 3호선까지 이어져 있는 가느다란 복도를 걸으며 이전 상태를 정리하고 다음 상황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길든 짧든 그것은 크게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정리할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런데, 해를 보내는 것은 조금 다르다. 마지막 날이 되어 정리 좀 해보려 해도 방송의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바로 다음 해의 첫날로 진입해 버리기 때문이다. 복사하다가 손가락을 종이에 베일 때처럼,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날짜 변경선을 지나 버릴 때처럼. 상태는 순간적으로 변해버린다.
그 덕분에 뭔가 한 해를 되돌아보려다 보면 바로 새해 첫날이 되고, 한 해를 제대로 되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첫날 결심이나 목표를 만드는 건 왠지 성실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면 잠이 왔다. 새해의 첫날을 맞이하게 되는 때는 밤이니까. 그러고 보면, 밤인 것도 문제인 것이다. 가끔은 노력해서 두 가지를 모두 잘 끝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파우스트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라 했으니, 적어도 방황은 하지 않게 되는 것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상들은 그것이 불공평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구정'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양력으로, 새해의 첫날은 음력으로 쇠게 되었다. 그 이유로 다른 나라들이 양력 혹은 음력 하나에 집중하여 해를 정리하고 맞이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대부분 양력으로 해를 마감하고 음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지어내다 보니 '맞는 거 아닐까?'하고 말았는데, 새해에는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