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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보다 빠른 환자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by Aprilamb

나는 지하철에서 앉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대부분은 좌석 양 옆 사람들이 너무 가까우므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 신경 쓰다 보면 오히려 서 있는 것보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짐을 끌어안고 성냥팔이 소녀처럼 웅크리고 앉아있다 보면 왠지 담이 들 것만 같으니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내가 서 있는 곳은 금방 앉을 자리가 난다. 나도 모르게 독심술로 '아 이제 슬슬 일어나 볼까?'하는 사람의 앞에 서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한두 정거장 안에 꼭 앞에 앉은 사람이 일어난다. 자다가 눈도 뜨지 않은 채로 튀어나가는 사람도 있으니 가끔은 염력도 발휘하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자리가 나도 한가한 오후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 편하게 기지개를 켤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면 잘 앉지 않는다.


오늘도 그렇게 서 있는데, 갑자기 앉아 있던 사람이 문 열리는 소리에 스프링처럼 튀어나갔다. 이번엔 염력이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끝에 서 있던 빼빼 마른 남자가 빈자리로 뛰어들어온다. 나는 순간 그의 눈을 보았다. 마치 동점 상황 9회 말 투아웃 상태에서 3루 주자가 홈스틸을 거행할 때처럼 모든 것을 건 눈빛이었다. 그 짧은 순간 그는 내게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저 너무 아파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로 잠들어 버린다. 그 미간도 내게 이야기한다.


'저 너무 아파요.'


‘알겠는데, 미간 좀 풀어요. 늙어 보여.’


라고 나도 이야기하고 싶어 졌다. 미간 주름은 사람을 10년은 늙어 보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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