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억척 생활기
친구가 라스베이거스로 회사 출장을 오면서 샌프란시스코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지 2~3주 정도밖에 되지 않아 누굴 관광시켜줄 만큼 알지도 못하지만, 친구가 샌프란시스코에 서너 번은 왔었다니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 곳 정서대로 공항에 나가주고 싶었지만, 차도 없고 귀찮기도 하고 친구도 어른이니 뭐 알아서 오겠거니 하며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온 지 한두 시간 정도 지나니 집 앞에서 내려오라고 전화가 온다. 대충 짐을 같이 들어 집에 넣어두고는 '오늘은 어디 갈까?' 하고 말을 꺼내 봤더니 역시 내 친구 아니랄까 봐 머릿속은 텅 빈 채다. 아무런 생각 없는 둘이 멍하니 앉아있다가 주섬주섬 일어나 간 곳은 피셔맨스 와프. 친구가 그 근처에 있는 4년 전에 가봤던 아이리쉬 커피 원조집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4년 전에 가보지도 않았고 술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전혀 관심 없었지만, 다른 의견이 없었기 때문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우버를 불러 피셔맨스 와프에 갔지만 친구는 예상했던 대로 어느 집인지 기억을 전혀 못한다. 대충 인터넷을 뒤져보니 저 모퉁이에 있는 집 같은데, 극구 저렇게 생긴 집이 아니었다고 강력하게 부인을 해대는 통에 계속 그 주변을 배회하면서 기억에도 없는 아이리쉬 커피집을 찾아다녔다. 피곤해.
'그냥 저기 가자. Yelp 평점이 높아.'
그 카페에 발 하나 디뎠을 뿐인데 친구가 바로 떠들어 댄다.
'어. 안에 들어오니 기억이 나네. 저기 커피 만드는 사람도 기억이 나!'
그럴리가 있나. 더 이상 찾을 자신이 없으니 그냥 이 곳이 추억의 그곳이라고 맘 속으로 정해버린 것 같지만, 나도 다리가 아파서 더 찾아다니기 싫었기 때문에 같이 흥분해 주었다.(나중에 보니 그곳이 아이리쉬 커피의 원조였던 카페가 맞긴 했다) 사람이 꽉 차있어 겨우 바 쪽에 자리하고 앉아 커피를 시키는데 신분증을 달라고 한다. 이 곳은 백발에 금방 기력이 다해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다 신분증 검사를 하니 검사를 당했다고 스무 살 아래 청년으로 보였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쨌든 술을 섞은 아이리쉬 커피는 생각보다 더 맛이 없었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던 친구조차 점심도 안 먹었는데 배부르다며 다 마시지 않았다.
저녁은 페리 빌딩에서 먹자고 하고, 여기서 얼마 멀지 않으니 걸어가기로 했다. 나는 이미 집을 구하러 다닐 때 피셔맨스 와프에서 페리 빌딩까지 걸어갔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걸어가다 보니 희한하게 저 건물인 것 같은데 그 건물이 아닌 상황이 너 다섯 번 발생하는 것이다. 그때는 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멀다고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걸어 다녔나 보다.
다리는 아파 죽겠는데 페리 빌딩은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는 혹시 그런 빌딩이 없는 것 아니냐고 계속 구시렁 대고, 나는 계속 저 다음에 보이는 건물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걸어서 밥 먹으러 갈 정도의 거리는 아니구나 싶었지만, 식사는 무사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 이후는 조금도 걷지 않고 우버를 사용했다.
집에 와서 다음 날 뭘 할까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역시 별 생각이 없다. 그러다가 또 친구가 이야기를 꺼낸 것이 '페블 비치'에 가자는 것이다. 그게 어디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우선 의견이 나왔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맞장구를 치고 지도를 찾았다. 그곳은 우버로 못 갈 것 같았다.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기차도 힘들 것 같고, 차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린 차가 없었다.
렌트 하지 뭐
렌트.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서울도 아닌 이곳에서 어떻게 렌트를 하지? 친구는 시차 적응이 안되어 피곤하다며 바로 잠들어 버린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집카'라는 게 있는데 이건 왠지 장기간 등록하고 사용해야 하는 것 같고 내가 주기적으로 렌털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수많은 렌터카 중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찾아낸 사이트가 Hertz라는 렌터카 사업체의 홈페이지였다. 더 이상 찾기 귀찮아 그냥 여기서 해야겠다 생각하고는 사이트에서 렌트를 진행했다. 렌트할 영업소를 선정하고(Airport로 검색하거나, 지역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지역의 영업소 리스트를 불러와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음) 날짜와 시간을 정하면 된다.
하루만 다녀올 것이라 동일한 날의 아침 10시에서 저녁 6시까지로 지정 진행했는데, 실제 렌털을 하는 장소에 가보니 저녁 7시 45분까지만 입고시키면 된다고 한 것으로 봐서 아마도 시간제가 아니라 하루 렌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웬만한 온라인 예약들은 인터넷을 뒤지면 쿠폰 코드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찾아 입력하고, 차종을 고르고 예약을 완료하였다. 나중에 보니 폰용 앱도 있었는데, 특정 서비스의 경우 앱에서 할인율이 높거나 추가 할인이 가능한 경우가 있어 꼭 함께 찾아보면 좋을 것 같지만 성격 상 앞으로 또다시 렌트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음 날 일어나 렌털 장소로 가니 이미 렌트할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Debit 카드로는 렌트할 수 없고, Cradit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그 외에 여러 보험료 등등을 추가하고 부가세가 붙으니 어제 예약했던 금액을 훅 넘어간다. 연료는 처음에는 가득 차있는데, 기본 옵션은 차를 반납할 때 연료를 가득 채워야 한다. 백 불 정도에 렌털 한 차종은 준중형차였고, 친구는 귀찮아서 국제면허증을 만들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서울에서도 차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계속 집에만 세워두었던 사람인데 게으른 친구 덕에 이역만리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대부분의 길이 일방통행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내비가 있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생각보다 애플맵이나 구글맵의 내비게이션이 퀄리티가 상당히 좋아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나는 애플맵을 사용했는데 국내에서와는 달리 꽤 높은 퀄리티의 맵을 보면서 운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 친구가 오래전 미국에서 한번 운전할 때 들었던 운전방법을 알려준 것을 적어 보자면,
건널목에서 사람이 건너고 있지 않으면 그냥 건너도 된다.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는 무조건 멈추고, 먼저 진입한 순서대로 빠져나가면 된다.
정도였는데 나는 사전 지식이 하나도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대충 그대로 운전했는데 경찰이 뒤에서 쫓아오면서 길 가로 대라던지, 뒤차가 클락션을 눌러댄다던지, 하는 경험은 하지 않았다.
프리웨이 진입하고 나서는 크게 문제없이 직진만 했으며, 가끔 유료도로가 나오는데 그럴 때에는 진입할 때 요금을 내도록 되어 있다. 미국에 있는 친구들도 가끔 자신도 모르게 휙 벌금 고지서가 날아오는 적이 있다고 하니, 유료도로 사용법에 대해서는 각자 미리 이동루트를 확인하고 잘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벌금이 꽤 세다고 한다.
몬테레이의 피셔맨스 와프는 시끌벅적 샌프란시스코의 그곳보다 훨씬 더 볼 것이 많았던 것 같지만 페블비치를 가야 하니 대충 통과를 했다. 두 시간 넘게 운전해서 겨우 도착한 페블비치는 큰 골프장이었는데 골프를 치는 친구는 그곳이 꽤 인상 깊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역시 '경치 좋네' 이상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해변은 평화스러웠고, 파란 하늘 밑의 언덕은 마치 땅끝 마을 같아 기분이 묘했다.
시골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곳에 살면 아침에 일어나 바닷가 벤치에 앉아 하늘을 한번 보고 '오늘 하늘은 별로네.' 하며 또 다음 날 새롭게 그려질 하늘을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못 갈지도 모르지만.
대충 좀 걸어 다니다가 차를 반납해야 할 시간이 다가와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두 시간 운전해서 돌아가는 길은 친구가 옆에서 잤기 때문에 훨씬 더 지겨웠지만, 결국 무사히 진입해서 가장 가까운 주유소로 들어갔다.
'내가 어떻게 주유하는지 하는지 알아.'
친구는 결국 셀프 주유하는 방법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어설프기 그지없는 건 친구가 와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아예 못 읽는 것도 아니고, 주유기 옆에는 주유하는 법이 다 쓰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주유를 할 수 없는 걸까. 친구와 나는 매뉴얼을 탓하며 다른 주유하는 사람들이 주유하는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봐도 모르겠어. 사람들이 엄청 빨리 처리하는 것도 있지만, 그걸 또 빤히 쳐다보는 것도 민망하다. 이러다가는 정말 주유 못하고 반납할 것 같아 염치 불고하고 한 사람한테 말을 걸었다. 모히칸 머리를 한 동양인이었다.
'저. 혹시 우리가 주유를 못해서....'
'아 저 한국인이에요.'
'아. 진짜요?'
'네. 제꺼 하규 일려 줄게요.'
한국말을 잘 못하는 한국인이었지만, 도와준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유가 왜 이렇게 안 끝나지? 저 사람도 잘 못하는 것 같아. 다른 사람한테 또 도와달라고 하면 저 사람이 기분 나쁠 것 같아 계속 기다렸다.
'주유량이 많아서요'
거짓말인 것 같았지만, 우린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한국 총각은 생각보다 유연하게 진행을 도와주었고, '카드 삽입-주유 선택-주유구에 주둥이 끼우기' 순서로 무사히 주유를 마쳤다. 하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또 헛갈릴 것 같다.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천천히 운전해서 여유 있게 차를 반납했고, 인수 담당자는 차를 휙휙 살펴보더니 돌아가도 좋다고 한다. 돌아가는 건 내가 결정하는 건데.
그 날은 정말 집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