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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세탁하기(Part 2)

샌프란시스코 억척 생활기

by Aprilamb

두 번째 세탁을 위해 코인 세탁소인 Merto Wash로 향했다.


처음 세탁을 할 때는 참 어설펐던 것 같다. 카드를 충전하는 방법도 제대로 몰랐고, 세제도 준비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비싼 자판기 세제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난 무려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확실하진 않지만—세제도 구매했고, 건조 시 사용하는 드라이 시트도 남성 타입으로 준비해 두었다. 게다가 불투명 이케아 비닐백에 카트까지 구비했으니, 적어도 세탁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준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탁하는 동안 바깥쪽 벤치에서 햇빛을 즐기며 독서를 하기 위한 책을 챙겨 든 후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모든 물품이 얹어진 카트를 질질 끌며 걸어가고 있는데 가도 가도 코인 빨래방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근방인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침 길가는 할머니가 계셔 여쭈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근처에 세탁하는 곳이 어디에 있죠?”

“음.(오랫동안 생각하더니) 이 근처에는 세탁하는 곳이 없어. 적어도 내가 온 쪽에는 확실히 없다고."

"(내가 가고 있는 쪽이 할머니가 오고 있던 쪽이었음) 아 그래요?"

"음. 아마도, 아래로 한 블록 내려가서 왼쪽으로 가면 거기 있을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아."


그 할머니가 알려준 곳은 내가 지금 막 걸어왔던 곳이다. 하지만, 물론 내가 왔던 길에 절대로 코인 세탁소가 없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는데, 평소 다니면서 주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내가 가려던 쪽은 확실히 코인 세탁소가 없다고 하고, 내가 걸어왔던 길에도—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없었던 것 같으니, 전혀 새로운 길로 가보기로 했다. 이럴 때는 머리가 좋은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을 건너려고 서 있는데 그 친절한 할머니가 다시 내게 말을 건넨다.


"아래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확실하진 않지만."


확실하지 않다면서 왔던 길을 돌아가기를 상당히 강력하게 권하고 있다. 이렇게 친절하게 잘못된 길을 계속해서 알려주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고맙지만, 잘못된 방향인 줄 알면서도 그쪽으로 가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는다. 어찌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할머니는 다행히 자기 길을 가기 시작했다.

고민 없이 새로운 길로 한참 가다가 구글 지도를 확인했더니 아까 가던 길로 50미터만 더 가면 세탁소가 있었다. 이 할머니 정말 뭐지? 그리고, 그때 구글 지도를 찾아보지 않았던 나는 또 뭐지?


겨우 도착해서 카드를 충전하려 하는데 현금만 가능하다. 나는 왜 크레디트 카드로 충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머리가 좋은 게 아니었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현금도 백 불을 들고 왔으니 괜찮다. 그런데, 괜찮지가 않았다. 5/10/20불 지폐밖에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백불은 미국에서 일상생활을 할 때 사용하라고 만든 지폐가 아닌 것 같은 게, 도대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어쨌든 지난번에 충전해서 사용하고 남아있는 금액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종류별로 두 번에 나누어하려던 것을 한 군데에 때려 넣으면 된다. 어차피 다 똑같은 빨래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결국에는 다 사이좋게 깨끗해지는 거잖아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있는데, 이 곳을 처음 사용하는 듯한 손님 하나가 세탁기 앞에서 카드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나는 보란 듯이 익숙한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세탁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갑자기 세탁기 만지작 거리던 것을 그만두고 노골적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배우고 싶은 거겠지. 노력도 안 한 채 나의 완벽한 세탁 장면을 보고 그대로 카피하려는 거구나. 이렇게 쉽게 알려줘도 되는 걸까 생각도 했지만, 이 정도는 샌프란시스코 시민을 위한 대한민국 국민의 서비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우아하게 머신 앞의 세제 입구를 열어 세제를 흘려 넣었다. 약간 고민하는 척하며 물의 온도를 정하고, 카드를 밀어 넣는다. 그런데, 작동이 되지 않는다. '세제를 흘려 넣은 상태에서 카드가 작동 안 되면 대책이 없는 시스템이라니까' 하며, 세탁기 왼쪽 액정을 보니 에러코드가 깜빡이고 있다. 액정이나 제대로 확인할 걸 그랬어.


다시 빨래를 옆의 비어있는 세탁기로 옮기고 세제를 옷으로 슥슥 묻혀 어느 정도는 회수를 해냈다. 그러다가 세제가 손에 묻었는데, 이 곳은 손 씻는 곳도 없는 것이다. 그 손으로 만지작 거렸더니 전화기는 세제 범벅이 되고, 물론 가져간 책은 열어보지도 못했다. 독서고 뭐고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에도 건조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쾌속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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