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구정 연휴에 홋카이도의 니세코를 다녀왔습니다.
니세코는 홋카이도에 있는 휴양지로 수량이 풍부한 온천과 사계절 즐길 수 있는 자연 액티비티들로도 유명하지만, 역시 안누프리산에 자리하고 있는 니세코 유나이티드 스키장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죠.
니세코 유나이티드는 히라후와 하나조노 / 니세코 빌리지 / 안누프리라는 세 개의 독립된 스키장이 정상부에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윈터 액티비티 에이리어를 형성하고 있는 홋카이도 최대의 스키장입니다. 개별 패스를 사용하여 한 스키장만을 사용할 수도 있고, 통합 패스를 구매해서 정상부나 셔틀을 통해 세 개의 스키장을 모두 사용할 수도 있는데, 날씨가 좋고 어느 정도 실력이 따라 준다면 하루에 모든 슬로프를 돌아보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자 그러면 각 슬로프들의 특징부터 살펴볼까요?
하나조노는 쯔가이케(나가노의 스키장 중 하나)처럼 슬로프가 넓은 것이 특징인데, 난이도도 적당하고 길 찾기도 쉬워서 초급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관리가 잘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덕분에 아래쪽은 경사가 거의 없는 얼음 지역이 꽤 있어요.
히라후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스키장으로 날씨 좋은 주말이면 리프트를 타기 위해 줄을 서게 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인데요. 보통 일본 스키장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으니 꽤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키장 면적이 넓고 코스가 다이내믹해서 여러 번 왔다 갔다 해도 매번 재미있게 내려올 수 있는데, 호텔 아래쪽에 마을도 꽤 발달해 있어서 저녁때에 돌아다니기도 좋아요. 그래 봤자 볼만한 건 편의점이나 푸드트럭 정도지만.
니세코 빌리지 스키장은 하나조노와 히라후의 딱 중간 정도인데, 초급도 우리나라의 중급 정도 경사라고 보면 됩니다. 가이드가 허술해서 잠깐 방심하면 슬로프를 벗어나 계곡 같은 곳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그럴 때는 절대로 멈추지 마세요. 그루밍이 안된 곳에서 가라앉게 되면 빠져나오는 게 너무 힘들거든요.
안누프리는 올해는 가보지 못했는데, 오래된 기억에는 곤돌라에서 내리자마자 경사가 꽤 급했어요. 대신 아래쪽에서는 나무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면서 꽤 신나게 탈 수 있는데, 그곳을 내려왔을 때 곤돌라나 리프트가 멈출 시간이어서 다시 호텔로 돌아오기 위해 눈을 맞으며 셔틀을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니세코에서 눈은 정말 잠깐만 방심하고 있으면 어느새 내리고 있다니까요?
각 슬로프에 대한 이해가 대충 끝났다면, 라이딩 플랜에 따라 패스를 준비하실 차례네요.
세 개의 스키장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통합 패스를 끊으려 한다면, 히라후 스키장 아래쪽의 마을에 있는 로손(편의점)에서 구매하는 것이 좋습니다. 30% 할인된 가격은 물론이고, 예약권마다 스키장 내의 캐빈에서 사용할 수 있는 1,000엔짜리 쿠폰까지 포함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통합 패스를 끊을 때에는 날씨 예보를 잘 살펴봐야 하는데, 날씨가 안 좋으면 바로 정상 근처의 리프트나 곤돌라가 중지되어 각 스키장을 왔다 갔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셔틀로는 이동할 수 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이곳의 날씨는 정말 예측 불가능으로 예보에 눈을 떼지 않는다고 해도 몇 시간 후에 갑자기 폭설이 내린다던가 강풍이 불어대는 경우도 흔한데, 대신 노천에 몸을 조금 담그고 있으면 이내 눈이 멎고 바람이 잠잠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끝까지 포기는 금물이에요.
탐험가나 완벽주의자 스타일로 모든 슬로프에 에지 자국을 남기시려는 분들이 계시는 반면에, 느긋하게 중간에 커피도 마시면서 서너 시간 정도 설렁설렁 타면 충분하다는 분들도 분명히 계시겠죠? 그런 분들은 각 스키장 밑의 매표소에서 단일 패스를 구매하시면 됩니다. 아이와 노인은 할인이 되니 꼭 챙기시고요.
저는 이번에도 힐튼 니세코 빌리지 Hilton Niseko Village에서 묵었는데, 이전에 묵었을 때는 이름이 히가시야마 프린세스 호텔 Higashiyama Prince Hotel이었습니다. 힐튼에 인수되면서 리노베이션을 했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아마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호텔 내의 레스토랑들도 괜찮고, 조식 뷔페도 나쁘지 않으며,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일층의 온천도 - 노천이 함께 있어 그런지 - 분위기는 꽤 괜찮은 편이에요. 수건이나 샴푸도 준비되어 있고 귀중품 보관함도 따로 있으니 방 키만 가지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휙 들어가서 푹 잠겨있을 수 있죠.
아무래도 니세코는 엄청난 시골이라 보드 타는 것 말고는 먹는 것 밖에 할 게 없는데, 혹시 이것저것 먹다가 체하게 되는 경우에는 편의점에서 카베진 류의 액상 소화제를 사드시면 됩니다.
'체하다'라는 뜻의 일본어를 찾아보니 구어체로는 '気持ち悪い(기분 나쁘다)'라고 하면 된다는데, 그러면 일본 사람들은 '체해서 기분 안 좋은데요'는 '気持ち悪くて気持ち悪い(기분 나빠서 기분 나쁘다)'라고 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