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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Jun 24. 2022

느린 우리 아이, 이대로 괜찮을까?

언어지연부터 자폐스펙트럼 의심까지

큰 아이는 이상하리만큼 말이 느렸다.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집요하게 무언가를 해본 것은 아니었고 이따금 생각에 잠기다가 27개월 말 늦은 아이, 35개월 말 늦은 남아 이런 키워드를 유튜브에 검색해보는 것에 그쳤다. 그러다 40개월 말 늦은 아이까지 검색하게 되자 이제는 결괏값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대부분 여기까지 오기 전에 부모들의 불안은 해소가 되었나 보다. 오직 나의 불안만 찜찜한 느낌으로 남아있을 뿐.


아이는 말만 느린 게 아니라 종종 이상한 부분에서 미숙했다. 가위질을 전혀 하지 못했고 하기도 싫어했으며 양칫물을 아직도  하고 뱉질 못한다. 여전히 기저귀를 차고 있었으며 기분이 좋을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기세 좋게 읊어댔지만 막상 무엇을 세어 보라고 하면 세질 못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아이의 미숙함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나는 지독하게 빠른 아이였다. 돌이 지날 무렵 한글을 깨쳤고(!) 18개월부터 유창하게 말을 했으며 2돌이 지나서부터는 그림일기를 썼다고(!!). 꽉 찬 만 세돌을 넘긴 나의 네 살짜리 아들이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따라 하며 그림일기는 커녕 낫 놓고 기역자 그리는 흉내도 못 낸다는 것에 나는 차라리 안도했다. 고속성장이 둔해지고 난 이후의 나는 매 순간 부모에게 실망감만을 주는 아이였는데 최소한 이 아이에겐 앞으로 크게 실망할 일이 없겠다 싶었다. 엄마는 장학퀴즈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늘 착잡해했다. 언젠가는 내가 저런 프로그램에 나와 장원을 따올 거라 믿어왔는데 그 기대가 충족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시였다.

그래서 어린이집 선생님이 언어치료를 권했을 때도 그다지 타격감을 받진 않았다. 대강 그게 어떤 것이라는 것은 치료를 겪지는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나는 원체 말보다는 글이 편한 사람이고 우리 부부는 그래서 부부싸움도 보통 각자 다른 방에서 카톡으로 할 정도. 게다가 전쟁같은 워킹맘 시절에 잠깐 쉼표를 찍고자 선택한 육아휴직은 감히 휴직이라고 말 붙이기 어려울 만큼 하루하루가 쉴 틈이 없이 바빴다. 나는 더욱 과묵해졌고 자연히 집에서 쉴 새 없이 아이한테 말을 붙여주지 못했다. 그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 때문인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돈을 주고 아이와 함께 대화에 몰입하는 시간을 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걸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처음 방문한 언어치료센터는 아이를 앉혀놓고 간단한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하고 아이가 유희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노는지를 주의 깊게 살폈다. 개월 수별로 발달 과정이 기재된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아이가 여기까지 반응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했다. 20~30분간의 관찰 시간을 마치고 결과지가 들이밀어졌는데 아이의 수용 언어는 1년 정도 지연, 그리고 화용 언어는 1년 이상 지연이 확인되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언어지연에 속한다고 알려주었다. 보통 6개월 이상 지연이 있을 때 치료를 권장하는데 이 정도의 지연은 당장 부모의 개입이 필요한 수준이며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방문하여 언어치료를 하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그리고 이어 조심스레 아이가 눈 맞춤이 적고 상호작용이 약하다는 말과 함께 자폐스펙트럼 검사도 함께 권유받았다.


큰 애는 그러고 보니 종종 놀이에 몰두할 때면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을 붙이면 동문서답이 잦았다. 가령, 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얼 했어요? 하고 물으면 폴리랑 놀 거예요, 주스 마실래요 하는 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물론 손등에 도장을 누가 찍어주었니? 하는 질문에 오감 선생님이 찍어주셨어~ 하고 정확한 대답을 할 때도 있었지만 주로 나의 질문과 아이의 대답은 핀트가 안 맞는 적이 더 많다.

사실 아이가 조금 느린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폐 스펙트럼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저 느린 것과 신경발달학적인 장애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초보 엄마는 알 수가 없으니 그저 불안하다. 말 그대로 때 되면 다 할 거라 기다려졌던 모든 행동들을 영영 못하게 되는 불능 상태가 자폐스펙트럼인 것만 같고. 나는 그저 평온하게 제 인생을 살아가는 평범한 아이를 바랐는데 이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유튜브의 많은 콘텐츠에 우리는 매우 초조해졌고 부랴부랴 소아정신과를 예약하고 지역발달센터에 상담을 신청했다. 매일 밤 우리 부부는 심란함에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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