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둘째주, 생각의 여름의 "새"
안녕? 내가 생각의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가? 안했으면 지금 해야겠다. 실은 지난주 EBS 공감에서 생각의 여름 공연을 보고 왔거든.
어쩌다보니 생각의 여름을 네번째로 보게 되었다. 처음 두 번은 군대도 가기 전인 4년 전, 두번째 앨범인 <곶>이 발매될 당시였다. 개성있는 붕가붕가 레코드 소속 아티스트들을 대체로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생각의 여름은 내게 특별한데, 80-90년대 동아기획과 하나음악에서 활동하던 포크 아티스트들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대에 흔치 않은 서정을 들려주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코드는 단순하지만 멜로디는 명확하고, 가사는 단정하면서도 낡지 않았다. 기타 한대와 목소리 하나로 사람을 사로잡는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생각의 여름의 음악에서 소리가 아닌 부분은 소리인 부분 만큼이나 중요하게 다가왔다. 적절하게 배치된 여백은 적절하게 배치된 음표 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가져오게 마련인 것이다.
레이블의 소개글에서 생각의 여름은 '포크의 근본주의자'로 불리곤 했는데, 이는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음악의 모든 부분을 제하는 그의 음악적 태도를 지칭하는 농담이었을 것이다. <곶>은 그의 음악적 미니멀리즘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었다. 이 음반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음악적 요소들은 2절이든, 간주든, 화음이든 모두 생략되었고 정제되고 정제되어 남은 것은 오직 기타와 목소리 약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17분에 달하는 열두곡의 음악이 한 트랙으로 실렸고, 이렇게 <곶>은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음반으로 탄생하였다. 이렇게 그는 여백을 가장 잘 연주하는 음악가가 되었다.
<곶>을 남기고 음악가는 유학을 갔고 음악 활동은 기약없이 중단되었다. 나는 숙취에 시달리며 건혁이형 집의 더운 마루에 누워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곶>의 마스터링 음원의 기타 소리를 듣던 기억을 안고 입대하였다. 그랬으니 4년이 지나고 갑작스럽게 돌아온 생각의 여름이 공연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새 음반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내가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생각의 여름의 세번째 정규 음반 <다시 숲 속으로>는 마치 <곶>의 반동으로 나온 음악 마냥 이제까지 그가 만든 음악 중 가장 다채로운 사운드를 품는다. 반절 가량의 곡에 솔로잉 기타가 들어가있고, 예전에 싱글로도 발매된 적 있는 "안녕"에는 바이올린이 삽입되었다. "침묵에서"는 피아노가 곡을 중점적으로 이끌고 있으며 "양궁"은 심지어 드럼이 들어간 그루비한 곡이다. 그의 음악에서 기대하기 힘들던 다채로운 소리들이 모여있고 감정적으로도 좀 더 밝아졌다.
새 앨범의 음악들 중에서도 한 곡을 고른다면 나는 "새"를 꼽겠다. 시인과 촌장의 <숲>의 한 트랙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단정히 아름다운 이 곡에는 변화의 모습과 함께 음악가 고유의 정체성이 유감없이 들어가 있다. 코드는 단순하고 멜로디는 곧고 명확해서 귓가에 오래도록 남는다. 하모니카와 함께 등장하는 기타 연주는 싱겁지만 불규칙하게 진행되면서-정확하게는 3.3.2. 스트로크(8)와 3.3.3.3.2.2 스트로크(16)이 불규칙하게 등장하면서-곡에 긴장을 가져다준다. 가사는 어떤가? "아침 / 아침마다 / 일력으로 / 새를 접어 날리는 / 사람들"로 시작하여 "사람들 사이로 내려앉는 / 접힌 적 없는 새, 땀흘리며 / 가쁜 숨을 쉬는 새"의 옆을 통과하여 결국은 "새를 접어날리는 / 우리"로 돌아온다. 소박하지만 유려한 "새"의 가사는 생각의 여름이 이제껏 들려주었던 성찰적 아름다움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내가 1988년 이후로 만들어진 이 비슷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새"는 생각의 여름이 한국의 포크씬에서 차지하는 계보를 드러냄과 동시에, 음악가의 음악적 영감이 어디에서 발원하는지 보여주는 멋진 증거가 될 것이다.
공연 자랑하려고 글을 시작했으니 적어도 마무리에는 공연 이야기를 해야겠지. 사실 EBS에서 본 공연은 살짝 아쉬웠는데, 아무래도 방송 카메라가 지켜보는 무대였던만큼 음악가가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여기에 앨범에 실린 다양한 악기들이 무대에 들어왔다 나왔다 하면서 분위기가 살짝 산만해지기도 했고. 이날 공연에는 세션으로 홍갑씨(기타)와 장수현씨(단편선과 선원들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참여했는데, (그 다음주에 같은 장소에서 열린 양일간의 권나무씨 공연까지 묶어서 생각해보면) 한국 포크 음악의 현재를 보여주는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이 괜히 상징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생각의 여름과 홍갑 두 사람이 무대를 이끌어나갈 때에는 자꾸만 하덕규와 함춘호의 무대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자꾸만 상상하게 되더라. 동시에 생각의 여름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무대는 기타 한대로 이루어진 조용한 클럽 공연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내게 있어 그는 여백을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음악가 중 한명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생각의 여름을 만나서 참으로 기쁘다. "길고 하얀 침묵"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여름은 "다시 숲 속으로, 하나의 악보 속으로 걸어들어가 거기 적힌 걸음걸이와 박자와 빛깔을" 입고 돌아온 것이다.
"길고 하얀 침묵을 지나"는 7번 트랙 <침묵에서> 가사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