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끝났고

7월 마지막주, Whitney의 <Light Upon the Lake>

by 김방통

시험이 끝났다.


7월 한달간 글을 하나도 못썼다. 7월 초반에는 학기 마무리를 하느라 못쓴 6월의 글들을 허겁지겁 썼고, 그 이후에는 월말에 있을 논문자격시험 준비를 해야했다. 시험 따위에 방학을 빼앗길 수 없다는 일념으로 여유롭게 시험 준비를 하려고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은 동기들과 보름 가량을 매일 도서관에 모여 12시간씩 스터디를 하면서 보내야 했다. 내 평생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 건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일 것이다. 절정의 여름 절반이 그렇게 가버렸고, 7월이 다섯 주에 걸쳐 있었는데 브런치에 글을 하나도 올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2006년 이후 처음으로 락페스티벌도 가지 못했다. 단톡방에서 친구들이 "너는 평생 후회할 것이다" "제발 떨어지기 바란다"와 같은 저주를 퍼붓는 가운데 방에서 눈으로는 피터 디어의 글을 좇고 귀로는 <Blood Suger Sex Magik>을 들으면서 내적 댄스를 춰야했던 나의 심정을 당신들이 어찌 알랴? 락페스티벌에서 자네들이 흘린 찝찔한 땀보다 내가 방에서 흘린 피눈물이 열배는 더 진할 것이오.

다행히도(혹은 당연히도) 시험의 결과는 좋았다. 교수님들은 두 주간의 노력을 알고 있고 결과물이 그만큼 좋다는 평을 하셨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신림에 나가 저녁을 먹었다. 두 주만에 먹는 롯데리아나 배달음식이 아닌 제대로 된 저녁이었다. 기네스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과 떠들다 친구들과 게임을 몇 판 하고(정희라메들리#3282)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니 방이 너무나 엉망이었다.


중요한 시험, 중요한 면접, 온갖 중요한 것들이 내 삶 고유의 리듬을 망치는 것이 싫다. 시험을 준비하는 두 주 간 보려고 했던 영화는 다 지나가버렸고 도서관에서는 연체 문자가 왔다. 더벅머리가 되었고 방에는 냄새나는 빨래가 쌓였다. 구석엔 머리카락과 먼지도 쌓여 있을 거다. 곱게 개켜놓은 열개의 수건이 하나씩 사라지는 동안 수영복은 완전히 말라버렸다.

오늘은 그 망가진 일상을 회복하는 날이었다. 간만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피아노도 뚱땅거렸고 보름만에 수영도 갔다. 점심으로 좋아하는 덮밥집에서 낫또동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공부가 아닌 책도(중요) 2백쪽 읽었다. 커피는 괜찮은데 BGM이 너무 별로인 카페라(주인 아저씨가 열린음악회 동영상을 틀어놓고 노래를 따라부르는 그런 곳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휘트니Whitney의 데뷔 앨범을 들었다. 밴드 이름만 듣고는 소울이나 R&B 장르의 음악을 하는 친구들인가 싶었는데-그렇다. 무의식적으로 휘트니 휴스턴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예상 외로 브라스가 깔리는 기타팝이었다. 멜로디 뽑아내는 감각이 참 좋아서 찾아보니 스미스 웨스턴즈Smith Westerns와 언노운 모탈 오케스트라Unknown Mortal Orchestra에 몸을 담았던 두 명이 만든 밴드라는군. 그걸 들으니 언노운 모탈 오케스트라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미디어에서는 버즈Byrds나 조지 해리슨을 이 앨범의 레퍼런스로 언급하고 있는데, "Dave's Song"에 나오는 슬라이드 기타나 오르간 위로 흐르는 간주의 기타 솔로와 브라스를 듣고 있으면 오래된 노래들이 아스라이 떠오르기도 한다. 저녁과 내일 아침으로 먹을 빵을 사서 돌아오면서 노래에 맞춰 춤도 췄다. 음악이 신나서인지 그냥 시험이 끝난 내 처지가 복에 겨워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Whitney, "No Woman"


내겐 삶의 리듬보다 소중한 건 없다. 물론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테고, 여유로운 대학원의 문턱을 벗어나게 되는 앞날에는 '중요한'으로 포장된 일들이 내 리듬을 방해하는 이런 일이 백배는 많아질 것이다. 아마도 내가 세상의 리듬에 적응해야 될것이고, 그런 식으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겠지. 그래도 나를 나인 것으로 유지시켜 주는 모습들을 송두리째 잃고 싶진 않다. 음악은 그 중 가장 굳건하고 오래 남을 모습이겠지.

싯팔, 아무것도 내가 음악 듣는걸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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