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gelo & the Vanguard, “Another Life"
음악의 치료적 효능을 믿는가? 음악 칼럼을 쓰는 준우형과 긴장성 두통과 목디스크, 일자목 등 최근 서로를 괴롭힌 병증 이야기를 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긴장을 풀고 싶을 때는 디안젤로를 듣자고. 딱 그 정도 느긋한 그루브로 살자고.
올해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누가 뭐래도 디안젤로의 “Another Life”다. 10년에 한 장 꼴로 앨범을 내는 이 과작의 음악가는 2000년대 이후 최고의 네오 소울 가수이자 모두의 찬사를 받은 작곡가이며 본인이 능숙한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Another Life”는 그의 가장 최근 앨범(이래봤자 벌써 8년 전이지만) <Black Messiah>의 마지막 곡인데, 네오 소울과 재즈의 중간 지대 어디에서 피어난 것 같은 이 노래에서 무엇보다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건 그루브다. 첫 음부터 끝 음까지, 몸을 흔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그루브가 넘실댄다. 전혀 급할 것이 없는, 여유로운 발걸음 같은 템포인데도 그렇다.
놀라운 건 그 그루브가 칼같이 정확한 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악기들이 저마다의 박자로, 조금씩 어긋난 소리를 낸다. 드럼보다 피아노와 베이스가 살짝 늦고, 그보다 목소리가 더 늦게 나온다. 처음 들었을 때는 녹음 실수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실제로는 이런 어긋남에서 매우 쫄깃한 그루브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찾아보니 정박보다 느리게 연주하는 주법을 레이드백(Laidback)이라 한다고 했다(그렇다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맨날 레이드백을 구사하며 피아노 연습을 해온 셈이다).
유튜브와 구글을 뒤져가며 곡의 코드를 찾고 쳐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재즈 코드도 생소했지만, 느릿느릿하면서도 끈적거리는 이 곡의 그루브는 아무리 연습해도 몸에 익지 않았다. 사실 내게 제대로 연주하기 어려운 곡은 항상 빠른 곡보다는 느린 곡이었다. 아무래도 쉽게 불안하고 긴장하는 성격 때문인 듯했다.
나는 모든 사람은 각자의 BPM을 타고난다고 믿는다. 그 템포는 발걸음에서, 머리 까딱임에서, 심장의 두근거림이나 건반을 만지작거리는 손끝의 움직임에서 드러나서 누군가를 대범하거나 미련하거나 좀생이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추측이 맞다면, 나는 분명 심장 한켠에 불안하고 빠르게 떨리는 메트로놈을 가진 좀생이일 테다. 평소에도 강박적으로 떨리는 이 메트로놈은 주인이 피아노 앞에 앉으면 훨씬 빠르게 똑딱인다. 그렇게 해서 연주를 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학부생 시절 몸담은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끌로드 볼링의 클래식 기타를 위한 모음곡 중 하나를 연주회에 올린 적이 있다. 내가 피아노를 맡고 클래식 기타를 치는 선배 한 명과 옆 밴드 동아리에서 베이스 연주자를 불러와 셋이서 호흡을 맞췄다. 정말 멋진 곡이고 다들 끝내주게 연주했는데, 다만 내 피아노가 갈수록 빨라진다는 게 문제였다. 시작할 때만 해도 여유롭던 템포가 곡의 막바지 즈음엔 단거리 달리기 수준으로 빨라졌다. 듣는 사람들은 뭔가 상황이 급박해졌다고 느꼈고(피아노가 화장실이 급한가?), 합을 맞추던 연주자들은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악기를 치지 못할 정도라고 불평했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연습만 시작하면 속도가 자꾸 빨라졌고, 결국 연주회 당일에는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우황청심환을 먹었다. 한알을 깨먹으니 거짓말처럼 심장박동이 느려지는 건 정말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맥주를 한 잔 들이켜고 진정을 찾은 상태와 비슷하달까. 그리고 무슨 만화 클리셰처럼, 피아노를 느리게 쳐서 연주를 망친 건 더 웃기는 경험이었다. 평소와는 반대로 갈수록 피아노가 느려지더니 피날레에서의 합이 완전히 어그러진 것이다. 너무 웃겨서 연주를 망친 게 아쉽지도 않았다.
동아리 연주회를 망친 이후로 10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급하게 살고, 그런 마음은 건반 위에 그대로 쏟아져 듣는 사람마저 불안하고 급하게 만드는 연주로 화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일이 많아서? 자세가 나빠서? 얼마 전 찾았던 재활의학과 의사 선생님은 완전히 곧게 펴진 내 경추 엑스레이를 보여주면서 일자목이 심하다고, 어깨와 목 근육이 긴장하지 않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글쎄요, 선생님. 그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을 한 그만두고 열대 바닷가에 누워 노을 바라보는 일을 한 2년 정도 하면 되려나요?
맥주나 우황청심환의 개입 없이도 긴장을 풀고 여유를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의 걱정에 쫓기지 않고 오늘 지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깨와 목을 포함한 전신 근육이 말랑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BPM 72 언저리를 왔다갔다 하는 디안젤로의 소울도 느긋하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준우형과 이런 이야기들을 주워섬겼다. 디안젤로 정도의 그루브에 몸을 맡기면 적어도 뒷목을 당기는 근육의 긴장 정도는 풀리지 않겠냐고.
하지만 어쩌면 반대로, 느긋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연습이 내 안의 메트로놈을 늦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어울리는 그루브를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습이 모든 걸 이뤄주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원하는 걸 맛보게 해 준다는 것이 피아노가 내게 알려준 가장 큰 교훈 아니었던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좀 더 여유로운 그루브를 연습하는 건 그래서이다. 어쩌면 디안젤로를 그럴듯하게 칠 수 있는 날, 긴장성 두통도 일자목도 나을지 모르는 일이다.
음악의 치료적 효능을 믿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