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오늘 안가면 안돼?
이른 새벽부터 아들이 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따금 찾아오는 감기겠지 생각하고 해열제를 먹였다. 아이가 불그레한 얼굴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엄마, 오늘 출근 안 가면 안돼?”
두 시간 출근길이었기에 아이를 달래면서도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친정엄마의 한숨 소리를 뒤로하고 차에 급히 시동을 걸었다. 워킹맘은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출근 시간은 칼 같이 지키고 싶었다. 그날은 모델하우스 품평회가 있는 날이었다. 시행사의 고위 간부가 참석하는 주요 행사였기에 시공사와 분양 대행사 모두 신경이 날카로운 날이기도 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수시로 문자를 확인하며 ‘괜찮을 거야.’.
마음을 추슬렀다.
11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친정엄마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열이 내리지 않고 경기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부들부들 손이 떨려 두 손으로 전화기를 간신히 붙들었다. 오 분 후면 1시. 품평회 리허설에서 내가 브리핑을 해야 했다. 정식 오픈이 아니니 관리자에게 이야기하고 조퇴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지금 출발한들 두 시간 이상 걸릴 게 아닌가. 친정엄마는 자책하며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내가 미쳤지, 집안일 한다고 이제 알았다. 약 먹고 잠들어 그런 줄 알았지.”
나는 오히려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엄마, 잘 들어요. 지금 119에 전화해서 구급차를 부를꺼야. 그 차를 타고 병원에 가요. 치료받고 결과 알려 주는거 꼭 잊지말고.”
엄마 마음을 다독이려고 한마디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엄마 탓 아니야.”
차분한 내 목소리에 엄마는 “독한 년”이라며 화를 내셨다.
전화를 끊고 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행여나 아이가 잘못될까 봐 무섭고, 이렇게 밖에 해 주지 못하는 엄마라 미안했다. 내 울음소리를 누가 들을까 입을 막고 울었다. 충혈된 눈을 찬물로 씻어내고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브리핑을 위해 무대로 올라갔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급하게 병원에 가니 아들의 조막만한 손등에 링거가 꽂혀 있었다. 두 시간 내내 피 뽑고, 엑스레이 찍고, 심전도 검사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독감이란다. 나쁜 년.”
엄마가 집에 가시고서야 아들 곁에 앉았다. 작은 손 위로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