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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청년 Apr 13. 2023

자청, 역행자

현우가 카톡으로 책 표지 사진을 떡 날렸다. '역행자'. 스무 살 즈음에 관심 있던 책들의 주제는 대부분 이런 것들이었다. 나는 역행자가 되고 싶었다.


순리자로 살 것인가, 역행자로 살 것인가.

알을 깰 것인가, 그것을 방패로 삼을 것인가.

눈을 꼭 감을 것인가, 부릅뜨고 주변을 살필 것인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인가. 아니면 비현실을 현실이라고 우기며 살 것인가.


장단을 맞추지 못하고 삐걱거리는 한쪽 날개. 그로 인해 날아오르지 못하는 닭장 속의 삶. 분명 이 한쪽 날개의 기어비만 잘 맞추면 날갯짓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이 참 어려워, 나 또한 쓸모없는 날갯죽지를 접고 그 속에 얼굴을 파묻은 순리자의 삶을 살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갈증이 해갈됐다. 한 모금 삼키니, 더욱 목이 말라 한 권의 책을 탄산음료처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한 편으로는 소설책이길 바랐다. 머릿속에 구구절절 설명문으로 입력하는 것보다는 상상의 서사 속에 작가의 손을 잡고 따라가다가 마주치는 여러 갈래 길에서 갈등하고 선택하는, 무미건조한 삶에 그런 자극을 찾고 있던 것 같다.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이 죄와벌, 이방인이었으니까. 그렇게 심오하면서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고민, 그런 것들에 대해 쓰인 소설을 좋아한다.


이 책은 자수성가한 청년이 쓴 자기 개발서다. 그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 어쩌면 피해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작가도 그 부분을 건드린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곰곰이 살펴보다가 또 뻔한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책을 놓지 못한 이유는, 작가가 말한 '자의식 해체'를 실현하기 위함이다.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반항적인 생각,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내 생각을 부정하는 것. 그것은 내가 책을 읽는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삶을 살아가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해보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무궁무진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고 경계가 있으며, 그래서 자꾸 그 영역 너머에 있는 것에 기웃거리는 것.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기로 했다. 작가의 말대로 나의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자의식 해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해왔던 생각을 무너트리는 것. 무수히 쌓아 올린 성을, 파고든 신념을, 기둥을 부숴버리는 것. 흥미롭지만 그만큼 어렵고 충격적이다. 나는 그것을 쌓아 올리며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다 없던 것으로 여겨보자고.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


그래서 해봤다. 먼저,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부정해 본다. 

떠오르는 생각 1) 이런 자기 계발서는 어찌어찌 운이 좋아서 성공한 다음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작가와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은 세상에 많고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이다. 왜냐면 그 시대의, 상황의, 수요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나는 그 수요에 맞지 않을 뿐. 자수성가했다고 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유전자가 있고 그게 발현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공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잘 돼 볼게라고 먼저 글을 쓰고 그것을 입증해 보던지. 결국엔 책 많이 읽으라는 이야기 아니야. 무슨 법칙, 이런 것들은 다 상술이고 작가는 마케터야.


이 생각은 책을 읽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생각임에 틀림이 없다. 이 생각을 의심해 보자.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한 것인가. 내 마음에도 어떤 알고리즘이 있을 텐데, 어떤 코드가 이런 생각을 출력했나.


주로 스무 살 때 했던 생각들, 특정 경험에서 발현된 안 좋은 감정이, 그 경험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으로 쌓아간 것 같다. 부정적? 비판적이나 회의적인 태도 말이다. 예를 들어, 취업 준비. PD 준비를 하면서 운칠기삼이라고 생각했고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와 다양한 자기 계발 서적, 특히 유시민 아저씨가 쓴 책이었나. 그 책을 통해서 느낀 것은, 결국 국가를 꾸려나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많은 군중에서 시대에 적합하고 국가의 부흥에 이바지할 인물을 찾기 위한 여러 필터들이 교육, 책과 같은 매체를 통해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필터에 통과되지 못하면 우울했고 그래서 내가 아니라 이 필터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 경험과 당시의 처절한 상황들이 나의 알고리즘 형성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 죄와벌의 라스콜니코프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점점 더 굳어졌다.


최근 데이터 분석 전문가 시험을 공부하면서 접한 내용이 있다. 분석을 할 때 데이터의 양이 적으면 과소적합, 그 반대로 너무 많으면 과대적합이라고 한다. 그렇게 형성된 모델은 새로운 데이터가 입력될 때 예측력이 떨어진다. 퀀트투자에서도 이 점을 주의하라고 한다. 나의 생각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경험들이 알고리즘을 형성하였으나, 그것이 정말 설명력이 높은 모델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게 입력된 DATA는 나의 눈이라는 입력장치 자체로 BIAS(편향)를 갖고 있기 때문에 모집단을 추정하기엔 한계가 있다. 


만약 그것이 오로지 나와 관련되어있는 것이라면, 나만의 데이터를 가지고 추정해도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상황 속에서 관찰한 나의 행동. 우리 가족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과 사랑. 그것은 나만의 알고리즘을 꾸준히 쌓아가도 된다. 검증은 남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비교해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생각이 다른 누군가도 할 수 있는 생각이라면, 함부로 내 생각을 옳다고 판단할 순 없다. 책에서 봤던 그래프를 떠올리며 선입견과 자의식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2) 다음으로, 책 밖에 있는 생각. 아 이야기를 하자면 길다.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 회사에서 적응해나가고 있는 직무, 타성에 젖어 안정적으로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내가 있는 회사 안에서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그것을 업으로 삼아야 할까. 아니면 회사를 떠나는 것까지도 생각해봐야 할까. 하지만, 그러나 가정의 안정은 보장을 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이 생각의 결론을 섣불리 내릴 수 없다. 나에게 DATA가 많지 않기 때문에 모델을 생성할 수 없다. 역행자라는 책 한 권을 바탕으로 모델링하는 것은 말 그대로 과소적합(Underfitting)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어갈 것은, 나의 생각을 해체하고 새로운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해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순 없을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수십 권의 책은 읽어야지.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나의 생각을 무너트려보는 태도. 그것을 얻어간다고 생각하자. 나라는 울타리를 허물고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자.


책을 많이 읽자. 경계를 넘어서, 아무 책이나 다 읽어보자. 그리고 독후감을 쓴다. 내가 해보지 않은 생각 위주로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에서 또다시 나에게 줄 숙제를 찾아낼 것. 그렇게 DATA를 쌓아서, Accuracy, Precision, Recall 값이 높은 모델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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