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다운 Dec 02. 2022

꿈력운동

대단치 않은 꿈을 삶의 타임라인에 자꾸자꾸 포진해둬야 하는 이유

가끔 엉뚱한 질문하는 걸 좋아한다. 한 때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마다 “너는 지금 하는 일 안 했으면 뭐했을 거 같아?”라는 질문을 한 적 있다. 친구들은 사뭇 진지해진다. 누구는 전공을 살렸을 것 같다고 했고 또 누구는 지금 하고 있는 취미생활을 직업으로 삼았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잘 아는 친구들의 제2 직업 이야기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보통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에는 분명한 이유와 그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라든지, 상황적인 타이밍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든지 어쨌든 그런 이유만 아니라면 선택했을지 모르는 제2의 직업 이야기는 듣고 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선택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나의 기습 질문에 자기도 잊고 있던 꿈을 들춘 친구들은 괜히 부끄러운지 정적이 흐르기 전에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너는?”


대학교 1학년까지 내 꿈은 방송작가와 PD를 오갔다. 그런데 PD는 요구되는 능력치가 너무 높아서 일찌감치 꿈을 접었고, 방송작가는 대학에 다니며 현업 이야기를 종종 주워듣곤 했는데 열정 페이로 수년을 버텨야 한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돌아섰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엔 내가 어떤 일을 잘할지 도무지 알 기회가 없었다. 마케터라는 일도 우연히 마케팅 관련 대외활동을 재미 삼아 참여했다가 알게 된 세계였으니, 그 대외활동도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어떤 일이든 회사라는 조직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겨울엔 히터가 나오고 여름엔 에어컨이 나오는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사무직으로. 대학시절에 화장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의류 브랜드 매장직으로 일하면서 내겐 몸을 움직이며 하는 일이 맞지 않다는 걸 느꼈다. 또 프리랜서를 하는 친구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불규칙적인 업무 패턴과 수입 때문에 늘 불안함을 안고 사는 것도 나와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규칙적인 생활패턴의 월급쟁이가 딱 맞는 체질이다. 


그런 나에게 회사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여기서 말하는 회사는 나를 갉아먹는 회사가 아니다. 나를 소중한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조금 더 행복한 회사생활을 위해 전적으로 지원해주는 회사다. 요즘은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인재 유치를 위해 많은 중소기업에서 기업문화와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 구성원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회사에 들어갈수록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케어를 받으며 지낼 수 있다. 이를테면 복지카드로 내가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고 사내 피트니스를 이용한다든지 사내에서 정신과 상담 프로그램을 무료로 연계해준다든지 하는 것이다. 내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면 그런 소소한 것들을 직접 돈을 내고 누려야 하지만, 구성원을 가까이서 매니징 해주는 회사를 만나면 일상생활이 조금 더 윤택해진다.


직장인 친구들을 만나면 드물게 이런 얘기도 한 번쯤 나온다. 

“너는 몇 살까지 회사 다닐 거 같아?” 


대부분 내가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것인지 계획하지 않으므로 5초 안에 답하지 못한다. 나도 앞으로 내 미래 계획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대답을 오래 고민했다. 한 때는 45살 즈음 퇴직을 하고 산이나 바다가 있는 곳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리는 게 꿈이었지만 그게 계획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내 꿈은 늘 바뀌어왔으니까. 좋은 대학일 때도 있었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일 때도 있었다.


먼 미래의 꿈을 잘 꾸지 않으려고 한다. 아주 먼 미래의 계획을 세워도 늘 그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삶인 거 같다. 계획이 초심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해가 지날수록 ‘나’라는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의 경제상황이 달라지고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의 정도도, 내가 가진 마음의 여유도 다 제각각이라 원래 계획했던 일이 시시하게 보이기도 하고 전혀 관심 없는 일로 바뀌기도 한다. 꿈을 수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거다. 


예를 들어, 나는 원래 대학내일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콘텐츠 팀의 리더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5년 동안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기업의 콘텐츠를 경험하며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6년 차가 되던 해에 이직이라는 변수가 생겼다. 물론 대학내일 입사라는 꿈은 이뤘지만 대학내일에서 리더가 되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못 이루었다기보다 다른 꿈으로 수정했다는 표현이 더 가깝다. 꿈은 마치 여행 계획 같아서 계획을 세워놓아도 그대로 이행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날씨의 변수, 혹은 그때그때의 심경 변화로 원래 계획을 수정하게 되는 게 여행인 것처럼 꿈도 가변성을 띤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가까운 꿈을 꾼다. 한 달짜리 여행 계획보다 하루짜리 여행 계획이 더 지키기 쉬운 것처럼, 꿈도 너무 먼 꿈보다는 1개월, 6개월, 1년 단위의 가까운 꿈들을 내 타임라인에 군데군데 포진해둔다. 가까운 꿈을 포진해두면 45년에 퇴직하기 같은 꿈보다 더 빨리, 여러 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나의 경우, 이렇게 짧은 꿈을 하나 둘 이루면서 그때그때 나에게 맞는 또 재미난 일들을 계획하게 됐다.


우리는 왜 ‘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거창하고 위대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낄까. 어릴 때 꿈에 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또래 친구들이 대통령이나 과학자 같은 단어를 올렸다. 그런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왠지 내 꿈도 그렇게 원대하고 커야 할 것만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초라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다. 


그런데 초라한 꿈은 초라하지 않다. 하루에 물 1리터를 꾸준히 마시는 사람이 돼야지 같은 다짐이 과연 초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올해 5백만 원을 모아야지라고 꿈꾸는 사람과 월 20만 원씩 12개월을 꾸준히 적금해야지라고 꿈꾸는 사람 중 누가 그 꿈을 이룰 확률이 높을까. 나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실천 가능성이 있는 꿈을 세운 뒤 그걸 해내는 게 더 어렵다는 걸 안다. 월 20만 원씩 1년을 적금한 사람은 월 40만 원씩 적금할 수 있는 날도 오고, 나중에는 5백만 원이 그렇게 먼 숫자처럼 느껴지지 않는 날이 더 빨리 온다.


그래서 지금 내 꿈은 45살에 퇴직하고 게스트하우스 차리기가 아니라 ‘매달 수영이나 피아노처럼 내가 배우고 싶었던 취미 생활 꾸준히 하기’, ‘청약 공부하기’ 같은 것들을 포진해두었다. 45살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지 않고 지금부터 행복하도록. 몇 살에 1억 모으기, 청약 당첨되기처럼 거창한 꿈 대신 그런 순간이 오기까지 조금 더 빠르게 달려갈 수 있는 근육을 기르도록. 근력운동은 힘들지만 꿈력운동은 즐거우니까!





작가의 이전글 내께 가득한 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