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출근날이었다. 사내 인트라넷에 이런 공지가 올라왔다.
<새해를 맞아 전 직원 의자에 헤드레스트를 설치했습니다>
아.. 헤드레스트가 원래 없었나 싶어 머리를 뒤로 기대 봤다. 뒤돌아 헤드레스트를 확인해 봐도 구면인지 초면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기억조차 없을 만큼 크게 불편함을 겪고 있지 않았다. 그런가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일과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가온 점심시간, 동료들과 새로 생긴 헤드레스트에 대해 얘기하다 깜짝 놀랐다. 한 동료의 말 때문이었다. "헤드레스트 생긴 거 봤어요? 그거 인터넷에서 따로 사려면 20만 원은 줘야 하던데" 무슨 헤드레스트가 그 정도나 하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의자가 허먼밀러잖아요" "그게 허먼밀러라고요?" 나는 과장되게 놀란 리액션으로 같은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아봤다. 알고 앉아도 잘 모르겠다. 이게..?
놀랄만한 이유가 있다. 하나, 그렇게 좋은 의자가 회사 복지였는데 입사 후 1년이 다 돼 가는 찰나에 처음 알아서. 둘, 2백만 원 가까이하는 고가 의자라는데 그만큼 대단한 착좌감 못 느껴서다. 고급의자라면 앉자마자 오~ 하는 감탄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허먼밀러가 농담일 거라고 생각하는 게 쉬울 정도였다. 잘 나간다는 회사의 채용 공고를 보면 심심치 않게 [전 직원 허먼밀러 의자 제공]이라는 복지를 볼 수 있는데 그때마다 도대체 어떤 의자일까 궁금했다. 그랬던 내가 그 의자를 매일 앉으면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코미디였다.
몇 년 전 재택근무 때문에 집에서 쓸 업무용 의자를 찾았던 때가 있다. 허리 통증 때문에 고민이 있어서 오래 앉아도 허리가 편하다는 의자를 필사적으로 찾았다. 고르고 골라 30만 원대 시디즈 의자를 샀다.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되었다는 그 의자는 정말로 허리가 편안하게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30만 원이라는 돈을 쓰면서 의자 하나에 이렇게 돈을 쓰는 게 맞나 싶었지만, 앉자마자 역시 브랜드값 하는구나 생각했고 너무 잘 샀다며 스스로 칭찬했다. 그러니 그 의자의 6배가 넘는 가격의 의자를 앉고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 나로서는 충격일 수밖에.(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만족감은 다르므로, 내가 느낀 착좌감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효용성 한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어떤 물건이든 그 쓸모나 보람이 있다고 느끼는 정도는 한계치가 있는 것 같다. 5만 원짜리보다 30만 원짜리 물건, 100만원짜리 물건이 더 효용성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몇백 몇천만 원대의 제품과의 비교는 제외다) 최근 구입한 고가의 물건들을 떠올려봤다. 마샬 스피커를 샀을 때도, 아이폰 15를 샀을 때도, 보스 헤드폰을 샀을 때도 그 돈을 지불할 만큼의 효용성이 있었다고 느끼지 못했다. 마샬 스피커가 5만 원짜리 스피커와 비교했을 때 뻐렁칠 만큼 감동적인 사운드를 내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딴짓하지 않고 스피커 앞에 앉아 소리에만 집중해서 들었을 때 디테일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이폰 10을 쓰던 내가 아이폰 15의 사진 결과물에 감격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색감은 10이 더 낫다. 보스 헤드폰(qc 울트라)도 마찬가지다. 사운드만 놓고 비교하면 에어팟 프로보다 비싼 값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최근 고가의 브랜드 물건을 여러 개 구입했던 나는 그동안 허먼밀러 의자에 앉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엉뚱하게 물욕이 사라졌다. 그 비싼 물건들을 다 경험하고도 별 거 없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젠 마샬 대신 JBL을, 보스 대신 국내 중소브랜드 헤드폰을 써도 내가 만족하겠구나는 생각이 든다. 새해 첫날 목건강을 챙겨준, 느닷없이 나의 소비욕을 회고하게 해 준 회사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