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콘텐츠마케터의 유튜브 도전기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 1만 시간의 훈련을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 직업은 콘텐츠마케터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는데, 그럼 난 지금까지 몇 시간을 일했을까?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 “20,000시간입니다. 정말 대단한 기록이네요!“
내가 하는 일은 특정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거나 상품, 서비스를 세일즈 하는 일이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고 배너광고나 상세페이지를 기획해 사람들이 돈을 쓰고 싶게 만든다. 이 일을 10년쯤 하면 제목을 어떻게 써야 클릭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사람들이 공유하고 구독버튼을 누르는지 꿰뚫는다. 1만 시간의 법칙에서 하는 말처럼, 정말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버리는 거다. 그런데 2만 시간이라니. 2개 분야에 전문가가 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대단한 스킬을 왜 평생 남 좋은 일 하는데만 썼을까? 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시대인데 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데는 써볼 생각을 못 했을까. 나를 브랜드로 내세우기에는 보잘것없다고 과소평가하고 있던 건 아닐까. 갑자기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리스트업 하고 콘텐츠 대본을 작성했다. 늘 내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쓰며 살았는데, 갑자기 내 이야기를 꺼내려니 어색하고 이상했다. 내가 가진 이야기 중 사람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이야기는 뭘까, 어떤 게 가장 시선을 끌 수 있을까 고르고 골라 첫콘텐츠를 준비했다.
첫 콘텐츠는 대기업 다니던 직장인이 퇴사 후 프라하에 다녀온 이야기를 담았다. 영상이 올라가고 하루동안 조회수는 2에서 멈췄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1씩 찔끔 올라갈 뿐 10을 채 넘기지 못했다. 2시간 넘게 힘주어 기획한 콘텐츠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저조해서 기운이 빠졌다. 애꿎은 새로고침만 계속했다.
그런데 일주일즈음 지나자 유튜브에 처음으로 빨간 배지와 함께 알림이 떴다. 들어가 보니 갑자기 조회수가 1천을 넘었다. 아무것도 없어 휑하던 댓글창에 갑자기 사람들의 이런저런 감상평이 남겨져 있었다. “용기가 좋아요 힘내세요”같은 짤막한 응원부터, 어쩌다 알고리즘에 떠서 보게 됐는데 본인도 퇴사하고 배낭여행을 다녀왔다며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까지.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빨리 허황된 꿈 속에서 깨어나시길" 대기업을 제 발로 걸어 나왔다는 사실을 철없는 MZ의 허영처럼 느끼는 댓글이었다. 처음부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퉁명스러운 댓글이 달리니 생각처럼 담담할 수는 없었다. 나름 둥글게 쓰인 악플에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두 번째 영상이 올라갔다. 이번에는 퇴사하고 갭이어를 가지며 무얼 했는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담은 콘텐츠였다. 역시나 초기에는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3~4일 즈음 지났을 때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갭이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덕분에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긴 댓글이었다. 또 첫 영상 악플에 내 편을 들어주는 대댓글도 달렸다. “본인의 인생은 본인이 책임지는 거죠. 타인의 인생을 쉽게 말하지 맙시다.”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의 나는, 사실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2만 시간을 갈고닦은 콘텐츠 전문가라도 내 이야기를 꺼내본 적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 있어할지 자신 없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응원을 받다니. 얼떨떨하고 감사해서 이미 본 댓글을 몇 번이고 다시 들어가 읽었다. 구독자 30명도 안 되는 이 작은 채널을 우연히 발견해서, 내 다음 콘텐츠를 보겠다고 구독을 누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봤다. 글을 쓰는 지금 다시 확인해 보니 구독자는 22명이다.
내가 브랜드가 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22명은 내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 유튜브 생태계에서 22라는 숫자는 보잘것없지만, 오프라인에서 이만큼의 사람을 모은다고 생각하면 엄두도 안 나는 숫자다. 그런 사람들이 나를 응원한다고 직접 구독을 눌렀다.
새삼 다시 생각했다. 마케팅의 본질은 연결이다. 그 연결은 거창한 브랜드에서만 시작되는 게 아니다. 유튜브를 개설하고 3주 동안 경험한 것처럼 한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이젠 남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잘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데 1만 시간을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