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싶은 집

6번째 이사를 앞두며

by 설다운

어릴 땐 이사하는 걸 좋아했다. 그 자체로 재미있는 이벤트, 어떤 놀이라고 생각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하루, 일주일의 일과가 학교 시간표처럼 늘 예측 가능했다. 그런 일상에서 집으로 가는 길이 바뀌고, 집이 바뀌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보는 집의 구조가 바뀐다는 건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궁금하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몇 년에 한 번씩 엄마 입에서 이사라는 단어가 나오면 아직 정해진 것도 없는데 언제 어디로 가는지 물으며 쫓아다녔다. 절대로 이삿날 먹는 짜장면 같은 게 기대되서는 아니다.(물론 기대하기는 했다.)


"엄마는 이제 이사 좀 그만하고 싶어." 순진하게 즐거워하는 나와는 달리 엄마는 심란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새로운 집에 가는 게 설레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럴만했다. 그때의 난 대출 한도나 출퇴근 거리, 동네 분위기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었으니까. 이사란 내가 가진 돈, 내가 빌릴 수 있는 돈, 내가 벌 수 있는 돈과 지독하게 엮여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될 즈음에서야 엄마의 얼굴을 이해했다.


독립 후 5번째 이사를 결심하던 때는 그동안 겪었던 집의 고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조건까지 따라붙었다. 첫 집은 햇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북향이었고, 두 번째 집은 전형적인 복층 오피스텔로 오르내리기를 수없이 해야 했던 집이었다. 세 번째 집은 창문을 열면 다른 건물이 가리고 있어 답답했다. 남향인 집, 복층이 아닌 집, 창 밖이 탁 트인 집, 또... 살던 집의 계약기간이 끝나갈 즈음이 다가오면 이사를 준비도 하기 전에 마음이 아찔해졌다. 그즈음 난 회사에서 자리를 옮기는 것조차 귀찮은 나이가 되었다.


엄마집을 나온 이래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성수집이다. 뚝섬역과 성수역 딱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어느 역이든 10분이면 갈 수 있다. 집에서 나와 20분만 걸으면 지금 서울에서 가장 핫하다는 성수 거리를 갈 수 있고, 마을버스만 타면 서울숲도 금방이다.


위치도 위치지만 집 컨디션도 지금까지 살았던 집 중 가장 좋았다. 투룸 구조에 작은 거실까지 있는 지상층 신축빌라인데 말도 안 되게 저렴하다. 직방에서 우리 집 월세를 검색하면 투룸은커녕 반지하 원룸밖에 안 나온다. 친구들도 놀러 올 때마다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 꼭 알려달라고 할 정도였으니, 계약기간이 끝나갈 때 2년 더! 를 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렇게 3년 넘게 머문 성수동은 희한한 동네였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화덕피자집이 들어서고, 현대백화점에 팝업스토어를 열 정도로 유명한 커피숍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지금 한국에서 모르면 안 된다는 맛집, 브랜드가 앞다투어 들어오니 이런 광경을 내 집 주변에서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최근 같이 살던 자매의 결혼 날짜가 정해졌다. 최근 새로 들어간 직장도 재택으로만 근무하는 곳이라 더 이상 지금의 집을 고집할 이유도 없어졌다. 느닷없이 성수를 떠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은행에서 전세대출 상담을 받았다. 보수적으로 2억이라는 예산을 잡고 직방, 당근, 네이버부동산에서 ‘내가 원하는 조건의 전셋집’을 찾기 시작했다.


2억이라는 예산에 내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는 집은 없었다. 그 돈으로는 다시 북향집에 들어가거나, 좁아터진 오피스텔 복층을 매일 오르내리거나, 깨끗해도 어쨌든 반지하인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이사는 더 이상 새 현관문을 여는 이벤트가 아니라는 걸. 이사는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의 순서를 정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늘어난 살림살이와 오랜 자취경력으로 명확해진 주거공간에 대한 가치관 때문에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의 순서는 좀처럼 타협되지 않았다. 지상층 주거공간, 깨끗한 화장실, 옷방과 침실을 구분할 수 있는 투룸, 답답하지 않은 부엌 조리대, 햇볕이 들어오는 방향. 어느 하나 양보하기 어려운 조건들 뿐이었다.


‘이제 이사 좀 그만하고 싶다’ 엄마가 했던 생각을 똑같이 떠올리며, 나는 다시 처음부터 집을 찾기 시작했다. 이번엔 지역 필터에 서울 대신 익숙한 고향 동네를 넣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