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뷰티인사이드>가 쏘아올린 공
10년 전, 영화 <뷰티인사이드>를 봤다. 영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뀐다. 그런 스스로를 이해하고자 남자는 매일 영상편지를 찍기 시작하는데, 그 장면이 인상 깊었던 나는 어느 날 문득 카메라를 켰다. 그때 내 나이는 스물 넷이었다.
스물넷의 나는 유니클로를 다니고 있었다. 출근 전에 잠깐 시간이 남아서 카메라를 켰고, 그때 영상 속의 난 승급시험을 준비하느라 바쁜 일상에 대해 재잘재잘 이야기하기 바빴다. 직장 얘기 외에도 가족 얘기나 요즘 내 고민에 대해서도 담겨 있었는데, 당시에 쌍둥이인 아름이가 내 가방을 허락도 안 받고 가지고 나가서 화가 났었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내 모습에 빵 터졌다. 그래, 저때는 저게 화가 나는 일이었지.
10년 전 영상 속 나와 지금의 내가 아직도 닮은 점이 있다면, 나는 스스로에 대한 알아차림이 부지런하다. "요즘 자꾸 뭐가 먹고 싶다?"라는 말에서 흠칫 놀랐다. "외로움을 먹는 걸로 채우나 봐"라는 말에서 저 어린 나이의 나도 지금하고 똑같았구나 깨달았다. 또 외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이를테면 하체비만 같은 고민도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내가 같은 고민을 10년째 하고 있다는 거지? 하며 자조적인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10년간 내가 찍은 영상편지를 다시 봤다. 적게는 1년에 2회, 많게는 4~5회씩 기록했던 영상에서 만난 나는 늘 할 말이 많았다.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고, 요즘 내 가족들의 근황은 어떻고, 내가 요즘 푹 빠진 건 무엇인지 등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커피숍에서 수다 떨면 할 법한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졌다.
사실 내 영상편지는 예쁘지 않다.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못난 생각도 적나라하게 다 이야기한다. 내가 지금 느끼는 고통, 외로움, 누군가를 시기질투하는 마음, 이기적인 마음 같은 것도 거르지 않고 모두 말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거짓말하기 싫었다. 내가 나에게조차 솔직할 수 없다면 세상 그 어디에도 내 편이 없는 거니까. 그래서일까? 내 영상엔 유독 우는 장면이 많다. 어떨 땐 고맙고 감동이라서 울고 어떨 땐 화가 치밀어서 엉엉 운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났지만, 영상을 켤 때마다 그 시간에 그대로 박제된 내 감정은 볼 때마다 놀랍다. 어쩌면 이렇게 내 감정에 솔직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건강한 마음으로 한 해 한 해 성장할 수 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지막엔 늘 미래의 이 영상을 보고 있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겼다. "이 영상을 보는 다운이는 몇 살일까? 서른? 마흔? 결혼했을까?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든 너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의 난 이 영상을 보고 있는 네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거야." 깜짝 놀랐다. 내가 이런 말을 남겼다는 사실조차 기억이 잘 안 났기 때문에다. 망각이라는 신의 축복 덕분인지 나는 영상을 볼 때마다 과거의 나와 만나서 대화를 하는 기분을 느꼈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찍을 때마다 조금씩 바뀌었다. 아주 어릴 때는 "지금은 좋은 사람 만났지? 그렇지? 행복하지?"하고 안부를 물었다면 뒤로 갈수록 "행복하지 않아도 돼. 힘들어도 돼. 진짜 사랑하는 사람 못 만났어도 돼. 괜찮아."라며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위로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니, 10년이라는 세월은 강산도 바꾸고 사람도 바꾸는구나.
나는 살면서 ‘너 자신을 좀 사랑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이 없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 영상편지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매 순간 나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다했다. 영상편지를 찍는 행위 자체가 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 일이다. 그리고 그걸 시간이 지나 열어볼 때면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전하는 사랑을 배달받을 수 있다.
영화 <클로저>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랑이 어디 있어?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어. 몇 마디 말은 들리지만.. 그렇게 쉬운 말들은 공허할 뿐이야”(쉬운 말이란 사랑해를 의미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두 번째 볼 때도 참 공감이 안 됐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이렇게 열심히 손수 촬영한 영상편지들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상편지는 가장 능동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만질 순 없지만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박제된 생생한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 과거의 내가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 시공간을 초월한 이 소통법은 단연코 눈에 보이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