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물의 유행, 꽉 막혀버린 사회에서 찾다.
2022년 들어서 약속이나 한 듯이 영화, 드라마에서 법정물이 쏟아지듯 나오고 있다.《왜 오수재인가》, 《닥터 로이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랑도 법대로》, 《블라인드》, 《천 원짜리 변호사》,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등 2022년 방영되는 드라마만 해도 약 10편에 이른다. 법정물 유행 시작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였다. 시청률 0.9%(전국 시청률)에서 시작해 시청률 17%로 마무리하며 우영우 신드롬을 만들었다. 그 뒤를 이어 《천 원짜리 변호사》 또한 8.1%에서 시작한 시청률이 15%(2022.10.15일 방영 기준)로 올라오면서 무서운 추세로 그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법정물 특징을 보면 변호사, 검사, 판사 형사 등이 주조연으로 피해자나 피고인(용의자) 등이 주연인 경우도 있다. 구도는 크게 '변호사 vs 변호사', '변호사 vs 검사' '검사 vs 피고인(용의자)'가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사건 조사 과정에서 형사물, 탐정물, 수사물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렇기에 사건 하나를 작품 전체로 다루기보단 한 작품 안에 사건 여러 개들이 옴니버스 혹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나눠져 있는 게 대부분이다. 특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후자의 방식으로 작품이 전개하고 있기에 OTT 드라마의 특성을 잘 보여주어 기존에서 보인 악당에 맞서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구현하는 식의 플롯과는 달라서 그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제목을 따라가듯이 이상하리만큼 그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에서도 방영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2013년 1월부터 시작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통계의 2022년 7월 조사에서 지상파와 비지상파를 통틀어 드라마 선호도 13.1%로 최고치를 경신했고, 이후 8월 조사에서는 전 채널, 모든 장르의 TV 프로그램을 통틀어 16.4%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기록을 세우며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는 우영우 신드롬을 만들어 냈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매 회 다른 사건을 다루며 노인, 지역개발, 어린이, 장애인, 탈북민, 여성 처우 개선 등 사회적 약자에 관한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여러 가지 사회 문제 또는 사회상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우영우라는 사회적 약자가 이들을 대변하는 상징 역할을 하며 작품의 주제의식과 연출 방식이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애인을 동등한 객체로 인정하는 취지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를 대할 때 조심스러워야 하는 부분들까지 우영우의 대사와 행동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대놓고 강요하는 방법보다는 시청자로 하여금 스스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되돌아보면서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작품을 만든 작가와 감독의 조심스러움을 볼 수 있다. 그 조심스러움이 깨우침으로 우리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가, 우리 사회는 과연 이 문제들을 모른 척 지나가고 있지만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져준다.
법정물의 유행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에도 이미 있었던 현상이었다. 이 당시에는 KBS 《슈츠》, MBC 《검법남녀》, tvN《무법변호사》, JTBC《미스 함무라비》등 일주일 내내 법정물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법을 다루는 방식들은 다양했다. 판사에 대한 전문성, 시체 해부 등 기존의 법정다툼, 사랑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전문성과 장르의 다양성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같은 법정물이라 하더라도 일주일 내내 다른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이런 법정물을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는 이런 절대악을 물리치는 통쾌함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늘 그렇듯 횡령, 음주운전, 폭행 등 큰 사건에서 재벌이나 정치인, 유명인의 재판은 항상 그들의 승리였다. 2018년은 국정농단으로 인한 정권 교체로 혼란했던 시기였고 혼돈의 시간이었다. 사회,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였기에 그것이 법정물로 표출되며 잘못한 이들이 벌을 받는 것을 드라마나 영화에서나마 보고 싶은 욕구를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2018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사회적 약자 변호사 이야기를 다루거나 로스쿨 속 권력 다툼을 보여주기도 하고, 형사와 판사의 추리물을 같이 보여주는 등 법정물이라는 한 가지 장르에만 국한되지 않고 추리, 스릴러, 정치, 로맨스의 다양한 장르를 섞어 복합적인 이야기를 다루어낸다. 이는 법정물이라는 장르가 가진 획일화된 스토리 전개와 연출 방식에 질려버린 시청자들로 하여금 뻔한 드라마가 아니라고 호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는 사람이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구분되지 않고 그런 흑백논리로 나누어지지 않는 복합적인 존재임을 안다. 그렇기에 절대악을 물리치려는 선의 뻔한 우여곡절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문제점을 인지하고 인물을 보다 입체적이고 복잡하게 구성해 이야기를 전개했고 보다 전문적인 법정 씬이나 재판 과정에서도 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보통 일어나는 재판이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송사들은 대부분 절대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누가 분명하게 잘못한 일이 아니더라도 재판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해 법리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그 통쾌함을 볼 수 있다. 이렇듯 2018년의 절대악과 싸우는 모습이 주로 였다면 2022년은 일상에서 이뤄진 재판을 보여주고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그 과정에서 통해 우리에게 사유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런 법정물이 많이 나오는 2018년과 마찬가지로 2022년에 이 장르가 유행하는 것에는 잘못한 이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부재, 그리고 혼란한 사회를 다잡아줄 존재의 부재가 그 요인으로 꼽힐 것이다. 공자의 윤리 사상에 따르면 사회 혼란의 원인은 인간 개개인의 도덕성의 타락이었다. 그렇기에 이상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직분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 혼란을 회복하기 위해서 덕치를 강조했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덕으로 정치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그들이 먼저 인격수양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유교 사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공자의 말은 현재 혼란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말인 듯싶다. 법은 약자의 편이 아니다. 이런 인식이 우리 사회의 꽉 막힌 상황을 뚫어주는 사이다 역할로서 법정물이 대체되었다. 도덕성이 타락한 사람들로 인하여 대중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그것이 드라마, 영화로 표출된 것은 아닐까? 특정 한 장르가 유행하는 것은 그 사회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는 예술의 큰 힘 중 하나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 법정물이 아예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씁쓸한 희망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법정물의 유행은 우리 사회의 불만이 극에 달해 그 해소가 필요하다는 위험 지표가 된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본다. 마지막으로 공자가 말했듯 혼란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모두의 도덕성 회복과 덕치의 중요성이 우리 사회로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