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기에서
우리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랫동네가 매일 차례차례 헐려나가고 있다. 한참 낙후된 주택들이라 진즉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었다. 수년 전부터 동네에서 추진하던 재개발 승인이 나자 곧바로 개발 사업 착수가 될 듯했다. 그러나 보상비 문제로 개발 조합장들끼리 송사가 붙어 한때는 살벌했다. 겨우 해결이 되고 이제야 본격적인 철거 작업에 들어간 모양이다.
동네 노인 분들 단골인 두꺼비 목욕탕이 헐리고 **당 약국이랑 그 위의 가정의학과 건물이 헐리고 이발소, 미용실, 그 옆의 삼겹살집과 수선집도 졸지에 사라졌다. 딱 "그때를 아십니까?"의 배경일 법한 동네가 헐리면서 상고머리에 번진 도장밥처럼 빈터가 군데군데 드러나는 것을 아침마다 창밖으로 본다. 별다른 인연이나 애착을 가졌던 곳이 아니었음에도 맘 한구석이 휑하고 기분이 착잡하다.
이곳에 이제 곧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브랜드를 붙인 최신형 아파트란다. 우리 아파트 부근 상가도 앞으로는 이전과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벌써 발 빠른 업자들은 건물을 올리거나 리모델링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모임에서 간 음식점들이 나를 흔들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 있던, 평소 접하던 곳과는 다른 분위기의 술집.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익숙한 공간일 듯싶은 곳이었다. 또 정확히 35년 전에 우리 과에서 당시 유행하던 '과 파티'라는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창고형 음식점 역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곳이 지금도 헐리지 않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 그곳을 전혀 새롭게 리모델링해서 신세대 취향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는 것에 또 놀랐다. 늘 낮이나 저녁녘 차로 휙 지나치며 한물갔다고 여겼던 곳에 내가 모를 새로운 공간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늘 익숙하고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곳에 내가 전혀 짐작도 못한 모습이 숨어있었고 이미 내 세대를 진즉에 지나쳐서 신세대의 공간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다음날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멋진 음식점과 찻집을 봤다. 집에 가서 자랑을 하며 주말에 가보자고 한껏 부추겼더니 나만 모르지 죄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미국에서 최근에 다니러 온 시누이까지도. 심한 왕따를 당한 느낌이었다. 왠지 나만 창문 없는 귀퉁이에서 퀴퀴하니 살아가는 인간 같았다.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필리핀의 작은 섬에서 여전히 천황 폐하를 외치며 29년을 숨어 지냈던 오노다 히로오 같이 내가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의심이 순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나를 돌아보면 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하는 증상이 심해졌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약국에서 주로, 귀 어둡고 글씨를 모르거나 잘 안 보이고, 치매에 가까운 건망증을 가진 노인 분들을 많이 대하다 보니 그런 거 같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크게 몇 번씩 떠먹듯이 일러드려야 하고 지난번 어떻게 약을 드셨는지 재차 확인까지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노파심이 버릇이 되었나 보다. 그뿐인가, 근 일 년간 시댁과 친정의 80이 넘으신 부모님들을 살피며 지내다 보니 나 역시나 그런 쪽과 비슷해졌다. 게다가 주말도 아프신 엄마 곁에 있다 보니 타인과 어울릴 시간이 거의 없었다.
난 왜 항상 이미 이 지상에 없는 오래된 사람들의 글들과만 소통하며 지내고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만 빼고 죄다 싱싱해."라는 생각에 시무룩해졌다.
우울한 퇴근길, 차의 오디오에서 나오는 귀 익은 클래식 음악으로 그나마 위로를 받는다. 왜 클래식이 클래식이라 불리는지 그 의미를 실감했다. 이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원래 모습 그대로지만 시간을 초월한 가치를 인정받고 공감하는 그 무엇!
인간을 포함한 생물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클래식이 되지 못한다. 그저 노쇠함이 있을 뿐이다. 우리 아랫동네처럼 그저 시간이 지나면 추해져서 스러지고 나면 그 자리에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것이 들어선다. 사람도 그러하다. 나중을 기약할 수 없으니 그저 주어진 내 앞의 시간을 잡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내 주위의 오래된 것들이 옛 시간과 함께 스러져가고 있다. 한 때는 왕성했으나 이미 지나버린 계절처럼. 그러나 아직 새로운 계절이 내게는 다가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