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댄스, 댄스

할머니 댄서들에 대한 찬가

by 시우

“혹시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세요? 여가 활동 같은 거 말이죠.”

“뭐 특별한 것은 없고 읽고 그리고 쓰는 정도지요.”

“주로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정적인 취미네요. 이제는 몸을 좀 쓰는 것은 어떨까요? 안의 에너지를 밖으로 발산하는 운동 같은 거. 음... 운동도 재미가 있어야 되니까 음악과 함께 몸을 움직이는 춤 같은 게 좋겠네요.”

얼마 전 몸의 에너지 흐름에 조예가 깊다는 분과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들은 충고다. 나이가 들어가며 몸 여기저기 불편한 곳이 생기다 보니 운동의 필요성을 생각은 하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헬스장 등록을 하고도 며칠 나가다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만두는 게 고작이었는데 ‘춤이라....’ 그럴듯했고 재미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친구들이 라인댄스에 단체 등록을 해서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그때는 약국을 할 때라서 시간도 안 맞았지만 ‘어휴~ 몸치인 내가 어떻게!’라는 생각이 더 컸다.

한데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춤과 아주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니다. 졸업 후 곧바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친구의 꼬드김에 동조해서 소위 댄스 교습소에 다닌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교관 사모님이 꿈이었던 멋쟁이인 그 친구는 춤 정도는 기본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 마침 그 친구가 근무하는 중학교와 우리 병원의 중간쯤 자리한 곳에 아주 좋은 부부 춤선생이 있다고 삼촌에게 소개받았다며 나를 끌었다. 이끌림 반 호기심 반에 찾아간 그곳은 마당이 있는 한옥이었다. 안방을 개조해서 홀처럼 크게 만들어 교습소로 쓰고 있었다. 눈부실만큼 노오란 장판과 남편 되는 분의 진한 향수 냄새가 인상적인 그 집에 40은 족히 넘은 부부가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젊고 총기 좋은 아가씨들이니 금방 배울 것이라며 우리를 반겼다. 우리를 데리고 간 친구네 삼촌과 교습소 선생님의 권유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배우기로 했다.

오후 시간은 퇴근 후라서 사람도 많고 다들 나이 든 아저씨들이니 우리가 편치 않을 것이라던 그 선생님들 말대로 점심시간 짬을 내서 그 집에 가면 친구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친절하고 상냥한 그 부인 선생님에게 배우는 지르박, 차차차, 탱고, 부르스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재미있었다. 한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여섯, 한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여섯.... 손을 건네고 스텝을 밟고 돌고... 한데 가끔은 남편 선생님이 나를 가르칠 때가 있었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몸에 힘을 빼라고 해도 잔뜩 힘이 들어가고 어그적 거리며 아저씨와 거리를 두려는 통에 남편 선생님도 불편했던지 난 아예 아줌마 선생님이 전담했다. 그때 우리는 빨리 배운다고 늘 칭찬을 받았다.

그렇게 서너 달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점심 시간에 일이 있어 오후에 배워볼까 하고 별 생각없이 그곳에 갔다가 기함을 하고 나왔다. 4,50대 아저씨들이 다들 양말 위에 형형색색의 덧버선을 신고 그 한나두울세엣을 하고 있었다. 당황해서 곧바로 뒤돌아 나왔지만 아차 싶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덧버선을 신는 이유는 흰양말(당시에는 다들 양복에 흰양말을 신었다.) 바닥이 더러워져 오면 아내들에게 춤 배우는 것 들통이 나니 덧버선을 두고 신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곳이 바로 TV에서 보면 단속반에 걸려 우르르 점퍼를 뒤집어 쓰고 얼굴을 숨기던 음침하고 은밀한 곳, 바로 비밀 댄스교습소가 아닌가!

그제야 남편 선생님이 이런 건전한 스포츠를 정식 허가해주지 않는 이 나라의 무지한 행정에 분노를 표하며 곧 양성화 될 것이라며 수시로 관청에 탄원서를 낸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난 그 이후로 교습을 그만 두었고 그 친구는 서너달 더 다니며 “마스터”를 했다. 물론 나는 그때 배운 춤을 단 한 번도 써먹을 일이 없었다. 춤 같은 거와는 거리가 삼천리인 남편을 만나 춤자의 ㅊ도 생각할 겨를 없이 살았다.

이런 이력으로 보자면 내가 이 춤! 아니 이젠 “스포츠 댄스”랑 인연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스포츠 댄스를 몇 년째 개인 교습 받는 후배가 내 말을 듣더니만 이제라도 배운다는 것은 건강에 좋은 생각이라며 시에서 시민 생활체육 기금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마침 있다고 등록하라고 했다. 자신이 배우는 학원에서 같은 선생님이 시의 프로그램에 연계해서 하는 룸바 수업인데 시작해보라고 했다. 그 후배도 신청을 했다니 함께 다닐 생각에 든든했고 워낙 인기 프로그램이라 바로 마감된다는 말에 바로 신청을 했다.

첫날 학원의 인상은 깔끔했고 발레리노 출신의 나이드신 선생님도 친절하고 좋았다. 50여명의 수강생들도 평균 50대 정도는 되어 보여 안심했으나 간간이 남자들이 섞여 있었다. 가죽으로 만든 구두도 좋은 걸로 맞추고 후배랑 함께 수업에 임하는데, 이론부터 차근차근 일러주는 수업과 실전 연습으로 음악과 더불어 재미가 붙으려는 순간 집에 일이 생겨 몇 주를 빼먹었다. 한참 후에 가보니 진도도 진도지만 남녀가 한 팀으로 어울려서 추는 춤이라 파트너가 수시로 교대되며 하는 것이었다. 주변머리가 숫제 없는 나이 든 분에서부터 직업이 하수상한 제비같은 몸매의 수긋한 남자도 있다보니 영 어색했다. 후배야 그 학원 선생님의 수제자니 운동 삼아 나오며 부족한 남자 역할을 맡아서 하고 있었지만 난 영 껄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모르는 남자 파트너랑 손 잡는 게 영 불편하죠? 그것 때문에 그만 두는 분들도 있어요.”라는 후배의 말에 동의 하고는 이내 몸도 맘도 거기서 멀어졌다. 비싼 댄스 구두만 뎅그러니 남았다.

얼마전 이사를 했다. 오래된 낡은 아파트와 구 주택지 가운데에 가장 면저 최근에 재개발 되어 고층으로 지은 새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 외의 나머지 커다란 블록은 오십년도 넘은 오래되고 후줄근한 동네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1980년대를 재현한 듯한 동네 풍경에 맞게 거의가 나이들어 보이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아파트 바로 옆에는 주민센터가 있었다.

어느날 얼마전 안면을 튼 70이 넘은 아주머니 한 분이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주민센터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다. 반년에 수업료 1만원만 내면되는 여러 가지 강의가 있고 집에서 가까우니 참여해보라는 권유였다. 검색해보니 요가, 라인댄스, 캘리그라피 같은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그중에 라인댄스가 운동도 될 거 같고 제일 만만해 보였다. 70 가까운 분들이 하는 라인댄스라면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뭐 파트너가 필요하지도 않을거고 느릿느릿 진도도 나갈거니 이거야말로 내게 딱이다 싶었다.

곧바로 등록을 하고 첫 수업에 맞춰 나갔다. 3월 첫주 개강인데 내가 시간을 착각한 바람에 5분 정도 늦었다. 내심 첫시간이니 준비물이며 주의사항 같은 거 듣고 앉아있겠거니 했는데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가다 깜짝 놀랐다. 수업 시작 5분 지났을뿐인데 강당을 빽빽하니 가득 채운 아주머니들이 신나게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고 있는 거 아닌가! 순간 눈을 의심했다. 다른 반에 잘못왔나? 그러나 그 시간에 강당에서 하는 수업은 이게 유일했다. 키가 크고 늘씬한 강사는 초미니 빨간 플레어스커트에 마이크를 장착하고 구령을 넣으며 리듬을 타고, 각기 라인댄스복을 갖춰입은 아주머니들이 무아지경인 듯 신나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엉거주춤, 맨 뒤에 서서 구경을 하며 있는데 스텝 방향들이 확확 90도씩 바뀌며 죄다 나를 보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그 민망함이라니!

쉬는 시간에 강사분께 등록하며 알아보니 말만 초급이지 이미 시작한지 5년이 넘었고 다 그때 하시던분들이 쭈욱 들고나며 계속하는 거라고 했다. 그래도 별로 어렵지 않으니 패턴만 익히면 금방 따라 잡으니 빠지지만 말고 나오라고 했다. 그래도 밴드에 들어오면 수업 동영상을 올려놓으니 복습을 하면 될거란다.

쉬는 시간에 70은 훌쩍 넘어 보이는 분이 스팽글이 많이 달린 파란색 댄스복을 입고 마이크를 들고 앞에 나섰다. “나 인자, 회장 같은 거 안헐라고 혔는디 다들 기언시 나더러 다시 허라고 혀서 헐수 없이 회장을 맡었응게 앞으로 내말 잘 들으라고~.” 다들 열화와 같은 박수로 맞으며 “언니 멋있어~”를 외쳤다. 서로가 언니고 동생이었다. 내게도 다들 나눠먹는 요구르트를 하나 건네주며 빠지지 말고 나오라고 했다. 춤 그것 별거 아니니 집에서 밴드 보며 스텝 복습하면 된다고.

다시 수업은 이어졌고 가만 보니 개중에는 늘씬하니 선수 같은 몸매의 젊은 40대도 있었는데 스텝이 능수능란했다. 스텝이 익으면 상체의 리듬은 절로 따라붙어 유연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따라하기 어려운 올드팝 보다는 요즘 유행하는 가요에 대한 반응은 더 뜨거워 헤이~!나 헛~! 같은 구령을 넣기도 하며 다들 땀이 나게 즐기고 있었다. 스텝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아 겨우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까짓것 하는 마음으로 동영상을 보다가는 멀미가 났다. 여럿이 단체로 춤을 추는 영상인데 도저히 그 스텝을 내 재간으로는 익힐 수 없었다. 게다가 노래도 한두곡이 아니니 어쩌랴.

그 후 두어번 더 그 수업에 나가봤지만 그리 만만히 알았던 배 나오고 나이드신 아주머니들의 시간이 다져준 기본기가 확실한 스텝, 리듬을 즐기는 마음, 사소한 것이지만 엄청 대단한 의미를 두며 즐기는 싱싱한 모습에는 기가 죽었다. 항상 춤추는 시간이 제일 기다려지고 집에서도 이거 틀어두고 매일 몇시간씩 추면 맘이 확 풀린다며 웃는 그들의 모습에 나타난 춤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수업을 포기했다. 아파트 헬스장의 자전거 타기나 근처의 천변을 걷기를 하기로 마음을 돌렸다. 요즘도 그 수업시간 무렵 주민센터를 지나다보면 수업이 끝나고 발그레하니 상기된 모습으로 흥겹게 그곳을 나서는 아주머니, 할머니 수강생들을 볼 때마다 나도 같이 흥겹고 즐거워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언젠가 라인댄스 초급반이 생긴다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맘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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