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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Sep 16. 2019

'Doxa Vol.2 한켠' 맛보기

#1 한켠 작가와의 인터뷰

삶이 너무 팍팍할 때가 있다. 작은 일에도 쉽게 피곤할 때. 내일을 상상하는 게 고단할 때. 힘든 게 오래갈 때. 잠이 늘 때. 사소한 할 일들을 미뤄 두면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 밤에 잠이 안 올 때. 무기력할 때. 당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이런 증상을 뭐라 부르면 좋을까. 글쎄, '만성낭만결핍증'은 어떨까.


그래서일까. 『탐정 전일도 사건집』의 한켠 작가와의 인터뷰 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필자는 매우 기쁘고 또 설렜다. 이토록 낭만적인 소설을 써내는 작가라면 뭔가 특별하지 않을까. 보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 누구보다도 멋들어진 사람이 아닐까. 그가 지금의 무기력한 나를, 나아가 우리를 어떻게든 바꾸어 주지 않을까.


그런데 웬걸. 유리문을 열고 들어온 작가는 아주 평범한, 오히려 조금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수록, 소설에서 느꼈던 바로 그 매력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만의 낭만을 좇아 조선, 경성, 현대까지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작가 한켠의 이야기를 DOXA가 직접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한켠 작가님!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한켠이라고 합니다. 요새 트렌드가, 자기소개할 때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말하기’라던데요. 저는 밥보다는 면과 빵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혹시 누군가 사주지 않을까요(웃음). 그 외에도 저는 인간적인 비인간들을, 인어나 늑대인간 같은 괴물들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로또에 당첨되어서 편안하게 ‘부업 작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어떤 독자님들께는 한켠 작가님의 소설이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이 쓰는 소설을 간략히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일단 제 모든 소설은 로맨스예요. 이 팍팍한 세상에 딱 하나 낭만을 넣는다면 그건 사랑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재나 장르를 중심으로 분류하자면 역사물, 그중에서도 일제 강점기의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물들이 많습니다. 가끔은 조선, 신라 시대의 이야기를 쓰기도 해요. 가상의 동양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들도 여러 편 있죠.

그리고 현대를 사는 직장인들의 ‘삶의 X같음’을 승화시키는 소설들도 많이 썼습니다. 대표적으로는 20대 고졸 여자 탐정이 의뢰인과 함께 사소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전일도 시리즈’가 있어요.



브릿G에 공개하셨던 작품 중, 작가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이고, 독자님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언제나 최신작을 가장 좋아해요. 지금으로서는 「어둔 밤은 우주로 통하고」가 되겠네요. ‘안전가옥 작가체험 프로젝트’와 함께 진행한 소설인데요.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예요.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기를 원하는 조선인 생체실험자와 그를 어떻게든 치료해서 살리고 싶어 하는 뱀파이어 의사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재나 요소들을 거의 다 때려 넣었죠. 괴물도 나오고, 뱀파이어랑 좀비도 나오고, 억압적인 사회에서 어떻게든 낭만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고,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빛나는 별 이야기도 있고요.

독자 여러분께 가장 반응이 좋았던 작품은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이었어요. 아까 얘기한 ‘전일도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인데요. 착하고 어리숙한 남자가 자신을 FSM교도이자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셰프라고 주장하는 여자와 계약 결혼을 하게 돼요. 그러다 이 남자가 정말 사랑에 빠져버려서 프러포즈를 준비하는데, 여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죠. 이 남자에게 의뢰를 받은 탐정 ‘전일도’가 여자를 추적하며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예요.







한켠 작가님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문체가 인상적이라고 느꼈어요. 감성적이랄까, 시적이랄까, 여러 번 곱씹게 되는 문장들을 즐겨 쓰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주위에서 ‘장르 문학에 어울리는 문체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가끔 하세요. 그래도 뭐랄까, 습관 같아요. 제가 10대 때 『혼불』하고 『토지』 전권을 아주 재밌게 읽었거든요. 그때 접했던 최명희 작가님과 박경리 작가님의 문장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뭐 그런 거죠.

그리고 이건 약간 다른 이유인데요. 저는 퇴고할 때 스스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연기하듯 퇴고를 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운율을 맞추곤 해요.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넣는다든가, 단어의 글자 수를 맞춘다든가 하면서요. ‘문체가 시적이다’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 같아요.



한켠 작가님의 소설에는 20세기 초의 경성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은데요. 역사적으로 꽤나 문제적인 시기와 장소였던 경성을 소설에 활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뭐랄까, 매력을 느꼈어요. ‘경성’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먼 과거 얘기 같지만, 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와 통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여자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하루에 최대 8시간까지만 일하게 해 달라!’ 이런 요구들이 이미 그때부터 나왔어요. 만약 배경이 20세기 이전이라면 ‘시대적 한계’라는 이유로 매몰되어버렸을 문제들이죠. 하지만 20세기부터는 그런 ‘핑계’를 대기가 어려워요. 이미 충분히 근대니까. 신분제 같은 봉건적 제도들이 공식적으로 사라진 시대니까, 이전까지 억눌려 왔던 개인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시대인 거예요.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사회의 새로운 억압은 존재하고. 지금과 똑같죠.


현대의 문제들을 계속해서 소급해 들어가면 20세기 초의 경성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가 일제강점기 경성에 대한 소설을 쓴다기보다는 근대에 대해서, 피식민지가 겪는 근대에 관해서 쓴다고 생각해요.







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아주 흥미로워요. 여러 장르를 오가면서 아주 당대적인 이슈들을 녹여내시는데, 최근 관심 가지고 있는 사건이나 사안이 있나요?


제 주변인 중에 일을 잠깐 쉬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아요. 길게는 1년이나, 짧게는 한 달이라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한 달을 쉬려면 사실상 퇴사를 해야 하고, 그러면 결국 소득이 없으니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하락하게 되죠. 즉 번아웃과 무소득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최근 기본소득, 갭이어, 안식년, 사회보장, 주거 보장 등의 복지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소설에서도 그런 얘기들을 하고 있죠. ‘전일도 시리즈’에 등장하는 불륜탐정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해요. “젊은이들한테 집 하나씩 줘야지. 그래야 청년들이 결혼도 하고, 결혼을 해야 불륜을 해서 우리가 일거리가 생기지.”


많은 소설에서 ‘혁명’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해요.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요. 혁명이라는 소재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사회 탓을 하는 사람이거든요(웃음). 스스로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저는 ‘이게 내 노오력 부족 탓이야? 사회 탓이지!’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잖아요? 가부장제가 없으면 며느리랑 시부모가 싸우지 않아도 돼요. 그런 것처럼, 저는 우리 삶의 문제가 결국 시스템의 결과물이라고 봐요.

또 잘못된 시스템을 해결할 때에도, 어떤 영웅적인 인물이 나타나서 모든 걸 해결하는 건 싫어요. 불안정하거든요. 영웅이 죽거나 변하면 어떻게 할 건데요? 결국 가장 안정적인 해결책은 자유롭고 평등한 주권자들의 민주적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얘긴데, 제 로맨스의 기준이 조금 특이한 것도 있어요. 누군가는 신데렐라의 신분이 상승해서 왕자랑 결혼하는 걸 로맨틱하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왕자가 신데렐라를 사랑해서 자기가 가진 권력과 부를 포기하는 게 로맨틱하죠. 얼마나 로맨틱해요? 사랑 때문에 다 버린다는데! 그러면, 답은 하나죠. 왕정을 폐지하고 왕자를 평민으로 만들자. 네, 혁명이죠(웃음).







소설, 왜 쓰시나요?     


관심 받고 싶어서요(웃음). 사실 누구나 사랑과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잖아요. 저한테는 그 수단이 소설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남한테 이야기를 할 때 사소하고 악의 없는 거짓말을 자주 했어요. 엄마한테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놀았다고 이야기해도, 그냥 “학교에서 누구누구랑 뭐 하고 놀았어.”가 아니라,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놀았는데, 누구 하나가 넘어져서 다쳐서…….” 이런 식으로요. 사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웃음). 따지고 보면 소설은 재밌는 거짓말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크죠. 굳이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더라도, 나 같은 인물들을 등장시킨 이야기가 공감을 받으면 기뻐요. ‘나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나도 이해와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하고요. 그게 제일 큰 이유예요.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그러니까 제가……, 항상 소설을 쓸 때면, 비극을 쓰든 희극을 쓰든 계속 등장인물한테 해 주는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많이 사랑하고, 넌 꼭 행복해져야 한다.”     


―라고요. 비극적인 이야기를 쓰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 독자 여러분도 제가 많이 사랑하고요. 일상에서나, 제 글을 읽는 동안에나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행복한 개인들이 모여서 우리 사회도 조금 더 진보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네요.     






본 인터뷰는 'DOXA vol.2 한켠'에 수록한켠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인터뷰 전문은 'DOXA vol.2 한켠'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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