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켠 작가님의 최신작, 「용의 아이」를 함께 만나보세요.
비평, 일러스트 리뷰, 작가 인터뷰와 단독 공개되는 단편 소설 등을 밀도 있게 채운 'Doxa Vol.2 한켠'을 텀블벅에서 만나보세요. 15,000원(얼리버드 적용 시 12,000원)을 후원하시면 매거진 1권이 리워드로 제공됩니다. 펀딩은 10월 14일까지 진행되며, 리워드는 11월 1일에 배송될 예정입니다.
'Doxa Vol.2 한켠'에는 앞서 3주간 소개해 드렸던 인터뷰, 비평. 그래픽 아트 외에도 한켠 작가님의 신작 소설 「용의 아이」가 단독 공개됩니다. 펀딩 시작을 기념하며, 한켠 작가님의 새로운 이야기를 DOXA 브런치에서 미리 만나보세요.
꼭 돌아와, 소용아. 그 애를 구하러. 왕을, 토우를, 용의 아이를, 누구든. 꼭.
“아가, 발바닥을 간질이면 웃는 아가, 옹송그린 작은 짐승처럼 보송한 복숭아를 주마. 울지 마라, 동글고 말랑한 아가야.”
싸락눈이 복사꽃잎처럼 날렸다. 등에 업힌 아기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아기를 추어 올리고 할머니가 들려줬던 자장가를 불렀다.
“아가, 달고 물큰한 복숭아를 물려주마. 한가득 손에 쥐고 얼굴 가득 오물거려라. 잠들어라, 집 잃은 아가야."
아기가 점점 무거워졌다. 거짓말. 빈 입을 앙다물었다. 나는 복숭아 맛을 모른다. 본 적도 없다. 너무 오래된 옛날이야기다. 아기가 축 늘어졌다. 아가, 우리가 갈 산너머에 복숭아는 없어. 그건 우리가 떠나온 곳에 있단다.
아가, 너와 나는 용감한 용의 아이들. 용의 등을 타고 설산을 넘으면 너는 울음을 그치고 이름을 받고 사람의 말을 배우겠지. 사람들이 네게 이야기해 줄 거야. 거대한 쇠호랑이들이 불을 뿜으며 진군해오던 그 밤을. 호랑이에 잡아 먹힌 귀신인 창귀들이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사람을 죽이던 그 밤을.
용이 지켜준다는 평화로운 용(龍)족의 나라. 불 뿜는 호랑이를 몰고 쳐들어온 호(虎)족은 용족의 나라를 점령하고 왕을 참수했을 뿐만 아니라 꼭두각시 왕까지 세웠습니다. 그들은 용족의 언어와 문화를 금지하고 저항하는 이들을 죽이며, 용족의 왕을 참수했습니다. 이에 용족 사람들은, 용의 시신이 굳어 만들어졌다는 설산을 넘어 아이들을 망명시킵니다.
발을 자른 아기는 새가 되었다. 아기의 가슴에 손을 대 본다. 고요하다. 아기를 바위 위에 혼자 남겨 두었다. 새들이 아기를 먹으면 아기는 새로 태어날 것이다. 다 거짓말.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들. 꽁꽁 얼어붙은 눈 위에 힘껏 발을 굴렀다. 용은 깨어나지 않아. 아직 제대로 걸어본 적도 없는 작은 발이 잘렸는데도 산을 넘겨주지 못하는 용이 어딨어.
발 밑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희미하게 우르릉 거리는 용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왜 이제야. 아기의 심장에선 이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우뚝 멈춰 서서 살갗에 닿는 진동을 느낀다. 할머니가 그랬다. 용은 절대로 후손들을 외면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제는 용에게 여의주 대신 물려줄 복숭아가 없는데. 할머니는 왕에게 갓난아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 아기는 길잡이를 만나지 못했다. 창귀들이 아기를 어딘가에 유폐시켰다. 지금 궁에 있는 왕은 창귀들이 내세운 가짜라고 했다. 진짜 왕이 용을 깨우고 창귀들을 쳐부술 거라고 했다. 거짓말. 할머니들은 왕이 죽고 나서는 용이 깨어날 거라고 했고 용이 깨어나지 않자 다시 왕의 후손을 찾았다. 이미 지난 옛날이야기.
'소용' 역시 용족의 아이입니다. '소용' 역시 어릴 적 산을 넘어 망명했고, 이제는 자신보다 어린아이들의 망명을 돕는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쪽 땅에서 저쪽 땅을 오가며, 호족의 손이 닿지 않는 설산 너머로 아이들을 옮깁니다. 그러나 설산의 추위는 냉혹합니다. 옮기던 아이가 죽자 소용은 분개합니다. 용이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전설은 모두 거짓말이라며.
귀를 막고 주위를 둘러본다. 창귀들이 드글댄다. 호랑이의 나라는 땅도 넓고 창귀들도 많댔다. 창귀들은 매일매일 호랑이를 타고 들이닥쳤다. 사람들을 내쫓고 그 집을 차지하고 눌러앉았다. 창귀들은 사람의 말을 금했다. 담벼락에도 문패에도 창귀들의 글자가 적혀 있다. 거리에도 마당에도 복숭아나무가 없다. 창귀들은 복숭아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썼다. 모두들 창귀의 옷을 입고 있다. 차림새 만으로는 사람과 귀신을 구별할 수 없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떠들면 창귀, 입을 꾹 닫고 땅만 보며 종종걸음 하면 사람이었다.
창귀들이 나를 막아서더니 다짜고짜 뺨을 후려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쳤다. 나도 사람의 말로 마주 소리쳤다.
“나는 왕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용을 깨우려고 돌아왔다.”
분개한 '소용'은 산 아래, 이제는 남의 땅이 되어버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난생처음 고향 땅을 밟는다는 감회도 잠시, 호족의 창귀들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다짜고짜 따귀를 때리며 그녀를 우롱하는 창귀들에게, '소용'은 당당하게 소리칩니다. 나는 진짜 왕과 함께 전설 속의 용을 깨우러 왔노라고.
왕은 자기 몸보다 너무 큰 옷을 입고 있느라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무겁고 큰 금관에 눌려 그렇지 않아도 옷에 비해 왜소한 몸이 더 움츠러들었다. 왕의 옷은 금실로 빼곡하게 수가 놓였다. 왕은 용의 후손이라 은실로 수놓은 흰옷을 입었다고 했는데. 너무 먼 옛날이야기다. 왕의 옷은 목깃이 목보다 높고 소매가 팔보다 길었다. 꼭 남의 옷을 억지로 입혀 놓은 것 같았다. 터무니없이 과장되고 호화로워서 광대들의 공연의상 같았다.
망막한 방 안에 홀로 앉은 왕은 갓난아기가 아니라 내 또래의 소년이었다. 할머니들에게는 시간이 멈춰 있었다. 그걸 늘 잊는다. 왕이 아기였을 땐 너무 먼 옛날이다.
“산너머에서 온 사람은 처음이야.”
뜻밖에도 왕은 선명한 사람의 말을 했다. 아주 잠깐 왕의 눈이 초승달처럼 살포시 가늘어졌다. 소년의 얼굴에 노인의 눈이었다. 그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는 ‘진짜 왕’을 찾으러 왔어.”
왕은 창귀들에게 귀신의 말로 공손히 뭔가를 사뢰었다. 창귀들은 내 결박을 풀어주고 떠났다.
“네가 내 불면증을 치료해 줄 거라고 했어.”
그러나 당당함도 잠시, 창귀들이 '소용'을 끌고 왕궁으로 향하자 그녀는 당황합니다. 기세 등등하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고향 땅을 밟은 것조차 처음이니까요. 그녀는 진짜 왕은커녕 꼭두각시 왕조차 본 적 없습니다. 과연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두려움에 휩싸인 채 그녀는 왕궁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웬걸, '소용'이 만난 사람은 한 아이였습니다. 창귀들이 세운 꼭두각시 왕이 겨우 '소용'의 또래 정도나 되는 아이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창귀들에게 일러 '소용'의 결박을 풀어 주고 그녀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주기까지 합니다.
과연 꼭두각시 왕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소용'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그녀는 진짜 왕을 찾아 용을 깨워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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