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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Mar 27. 2020

<모노노케 히메>  : 근현대 일본 지식인의 자의식

① 아시타카와 타타라마을

개봉 후 23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 1997)를 해석해 온 주된 독법은 '인간과 자연의 대립'이었다. '산'을 비롯한 '모로 일족'과 산짐승들을 자연, '에보시'와 '타타라 마을'을 인간으로 묶고 서로를 대립항으로 설정하는 식이다. 나는 그러한 독해가 부적절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은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전후 일본 지식인으로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의식'이라는 다소 생소한 관점에서, 〈모노노케 히메〉를 독해하려 한다. 물론 위대한 영화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모노노케 히메〉는 한 줄짜리 키워드만으로 완독해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 글은 〈모노노케 히메〉의 모든 면면을 파헤치기엔 매우 부족할 것이다. 어쩌면 조금 편협한 독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이 글에서 새로운 흥미를 발견하길 바란다. 해석은 풍부할수록 재밌는 법이므로.






0.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년기~청년기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성장 배경을 간단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1941년 1월 5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버지와 그 형제들은 군용 전투기의 부품을 제조하는 '미야자키 항공 흥학'의 임원이었다. 미야자키 항공 흥학은 직원이 천 명이 넘을 만큼 큰 규모의 공장을 운영했는데, 이러한 연유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엘리트 엔지니어와 군인 출신 근로자들, 그리고 거대한 기계 시스템과 함께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미래소년 코난〉 등을 비롯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 전반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러한 유년기가 결코 자랑스럽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그는 가쿠슈인 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하게 된다. 당시만 하더라도 가쿠슈인 대학은 왕족들이 대대로 입학할 만큼 일본의 대표적인 상류층 학교였고, 이 탓에 60년대 당시 일본 대학가를 휩쓸었던 학생운동의 열풍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반전(反戰)과 전범 내각 사퇴를 주장한 1960년 안보투쟁 및 여타 진보 성향의 시민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곤 했다. 그의 이러한 정치적 성향은 직장(토에이 동화) 내 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하고 제2대 서기장을 역임하는 등의 이후 행보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宮崎 駿(Hayao Miyazaki, 1941~)


요컨대,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분히 군국주의적이고 우익적이며 동시에 부르주아적인 환경에서 자라났으면서도, 또한 반전주의적이고 좌익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미야자키 하야오는 우익 혹은 좌익 중 하나로 손쉽게 치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신좌파의 것과 유사한 정치적 이데아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부르주아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는 인간(間)이다. 그 사이의 중간자적 거리감은, 〈모노노케 히메〉를 독해함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1. 아시타카 : 근대 일본 지식인의 초상



'아시타카'는 야마토 정권을 피해 변방에 숨어 지내고 있는 '에미시 일족'의 전사로,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무예를 지닌 그는 원래대로라면 일족의 지도자가 될 인재였다. 그러나 그는 재앙신(祟神, 타타리가미)가 되어 마을을 습격한 멧돼지 신 '나고'를 죽인 대가로 저주를 받게 된다. 이후 그는 오른팔을 좀먹는 저주에 맞서기 위해 서쪽으로 길을 떠난다.


작중 인물들은 아시타카의 고향이 위치한 곳을 '동쪽' 혹은 '동북쪽'이라 말한다. 또한 그들 일족은 점을 쳐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씨족의 우두머리가 모여 회의를 여는 등, 전형적인 전근대적 부족사회(혹은 은유적인 봉건사회)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반면 아시타카에게 저주를 내린 나고 신은 서쪽에서 온 존재다. 나고 신의 저주는 아시타카의 팔을 좀먹고 생명을 앗아가려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화살 한 발로 장정의 두 팔을 절단해버릴 만큼의 초인적인 힘을 부여한다. 다시 말해 아시타카의 오른팔에 깃든 것은 저주이자 힘이다. 이후 나고 신은 에보시가 이끄는 타타라마을 근처에서 온 것으로 밝혀진다. 이후에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타타라마을은 에미시 일족과 달리 관료화된 근대 사회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요컨대 정리하면 이렇다. 타타라마을(서쪽, 근대 사회)의 총알이 나고를 재앙신으로 만들었다. 폭주한 재앙신은 에미시 일족(동쪽, 전근대 사회)의 아시타카에게 생명을 갉아먹는 저주를 내렸는데, 그것은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이것을 메이지 유신으로 대표되는 19세기 말 일본 서구화의 은유로 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재앙신의 시커멓고 거대한 모습은 미국의 개항 압력이 가시화된 '쿠로후네(검은 군함) 사건'을 연상케 한다. 일본은 이후 급속도로 서구화되었고, 그것은 강력한 무력(제국주의)이 되었다.


미국의 군함을 묘사한 일본 풍속화와 영화 속 재앙신의 모습


아시타카가 고향을 떠나기 전 올려 묶은 머리를 짧게 잘라낸 장면에 이르면 은유는 더욱 노골화된다. 한국의 상투나 일본의 촌마게처럼 모양 내 묶은 머리는 전근대적 통과의례의 대표적 증표인데, 서쪽으로 가기 전 이를 잘라냄으로써 아시타카는 전근대적 생활방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시타카의 오른팔을 어디까지나 '저주'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오른팔의 초인적인 힘은 극 중 여러 활약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외부로부터 부여받은 저주다. 단발 장면도 비슷하다. 아시타카는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마을을 떠나나, 그것은 점괘라는 거스를 수 없는 힘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동북아의 맹주 청나라마저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패배한 상황에서 일본이 근대화를 선택했던 것처럼 말이다.



요컨대 아시타카는 전통적 관습과 결별하고 서구화를 택한 근대 일본 지식인의 초상인 셈이다. 서쪽으로부터의 저주이자 힘을 부여받은 채, 머리를 자르고 서쪽으로 떠나는 그의 모습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구화를 택한 일본의 지식인과 닮아 있다. 이제 그의 행보를 따라가며 〈모노노케 히메〉의 세계를 살펴보도록 하자.


※물론 일본의 과거 식민지였던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의 서구화를 외부로부터 부여받은 '저주'라고 부르는 데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군국화를 이루어 식민 전쟁을 벌인 게 일본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논의의 전개를 위해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포스트로 미뤄 두자.






2. 에보시와 타타라마을 : 서구적 근대화를 이룩한 산업사회


여정 중 아시타카는 강가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중 살아있는 사람을 구해 마을로 데려다준다. 그들은 타타라마을의 소몰이꾼으로, 마을에서 생산한 철을 팔고 돌아오던 중 산과 들개들의 습격을 받아 낙오되었던 이들이다. 아시타카는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잠시 머무르게 된다.


타타라마을이 아시타카의 고향에 비해 훨씬 근대화·산업화된 사회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는 기존의 인간-자연 대립 구도의 독해에서도 여러 번 되풀이된 해석이다. 이 글 또한 그러한 해석을 다소 되풀이할 예정이나, 우리는 그것을 역사적 관점에서 돌이켜보기로 하자.



타타라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품질 좋은 철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때 눈여겨볼 점은 철을 생산하는 그들의 시스템이다. 타타라마을은 며칠 밤낮 가릴 것 없이 풀무질을 해야 하는 공장식 제철소를 운영한다. 또한 그들이 이용하는 시설은 수십수백 명이 매달려 다 함께 풀무를 밟아야 하는 기계식 시설이다. 이와 같은 공장제 기계공업의 도래는 산업사회 돌입 여부를 가르는 주요한 역사적 기준 중 하나다.


경제와 행정, 군사 등 타타라마을의 모든 노동은 이 공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떤 이들은 공장에서 철을 만들고, 어떤 이들은 그 철을 가져다 팔며, 어떤 이들은 만들어진 철로 총포를 제작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 총포로 마을을 지킨다. 이때 눈여겨볼만한 점은, '(아시타카처럼)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한센병 환자들까지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평상시 격리되어 살아가고 있긴 하나, 그들은 지도자인 에보시를 믿고 따르며 총포를 제작하고, 마을 사람들은 환자들이 만든 총포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똑같이 신의 저주를 받았다는 아시타카가 에미시 일족에서 퇴출된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타타라마을의 이러한 모습은 구성원 간 유사성에 의해 사회가 결속되는 전근대 사회와 달리, 노동의 분화와 역할의 전문화가 고도화된 산업사회에서는 기능적 상호의존성에 의하여 사회가 결속된다고 지적한  E. 뒤르켐의 유기체적 사회 이해와 유사하다. 타타라마을에서는 절대다수의 구성원과 유사하다고 보기 어려운 나병 환자들마저 추방되지 않는다. 그만큼 전문적인 기술을 익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추방되는 대신 관리되는데, 이는 M.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지적한 근대화의 경향과 일치하기도 한다. 한센병(혹은 광기)을 신의 저주나 분노 등 영적인 세계관에서 이해했던 전근대 사회와 달리, 근대 사회는 그것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리하여 신의 저주였던 것은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속화된다.



한센병 환자들 말고도 이목을 끄는 존재는 또 있다. 마을의 여성들이다. 타타라마을을 논할 때 마을 내 여성들의 지위를 논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타타라마을의 제철과 경비를 담당하는 것은 여성들이다. 타타라마을 여성 특유의 지위는 이러한 노동 참여에 기반한다. "우리가 목숨 걸고 가져온 쌀을 먹고살면서 뭔 말이 많아?"라는 소몰이꾼에게 "그 쌀을 살 철은 누가 만들었는데?"라고 받아치는 아낙의 모습은, 산업화 이후, 특히 전쟁이 가속화되며 노동 참여 및 권리 보장이 확대된 실제 역사 속 여성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여기서 짚어보아야 할 인물이 바로  에보시 고젠이다. 그는 타타라마을의 수장으로,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마을을 통솔하는 지도자다. 그는 들개들의 습격으로 낙오된 일행을 가차 없이 버리면서도, 동시에 팔려 나온 여성들과 한센병 환자들을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는 등 다소 양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에보시의 행보를 설명하기 가장 알맞은 단어는 '국가주의'다. 영화는 단 한 번도 에보시 고젠 개인의 목표나 욕망이 무엇인지 제시하지 않는다. 에보시는 온전히 마을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헌신적 지도자이자 정치적 아이콘으로 그려진다. 그가 왕의 부하들과 손을 잡고 신을 죽이려 한 것도 전부 마을의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가. '인물화된 국가'처럼 보이는 에보시의 모습에 처칠이나 히틀러, 루스벨트 등 20세기 열강을 이끈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아시타카가 근대화된 지식인이라면, 타타라마을은 근대화된 산업사회, 정확히는 제국주의 국가의 은유인 셈이다.



이때 에보시 고젠이 여성으로 설정되었다는 사실은 극에 미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아시타카는 에보시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거나 적대하지 않는다. 그는 에보시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대립한다. 둘 사이에는 애매한 긴장감이 흐른다. 즉, 남성 주체인 아시타카에게 있어 에보시는 복종하고 내면화해야 할 아버지적 질서(Non du père)가 아니라 여성의 신체라는 기호로 대상화된 외부적 질서에 가깝다.


아시타카가 타타라마을을 떠나는 것은 그래서다. 서구화를 겪으며 일본의 지식인들이 근대적·제국주의적 존재로 거듭났다면,  저주처럼 남은 패전의 상처 앞에서 그들은 또 한 번의 존재론적 전환을 겪어야만 한다. 이는 그간의 제국주의적 질서를 회의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수반한다. 그래서 아시타카-미야자키 하야오는 타타라마을로 상징되는 (자신이 뿌리내리고 살아온) 근대 사회의 긍정적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잔인한 그림자를 자각하고 이에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다. 이제 그는 숲으로 떠나 새로운 인물과 만난다.


로 원령공주(もののけ姫, 모노노케히메), 산이다.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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