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
나는 이 세상 전에도 후에도 없을 유일의 존재입니다.
존재로서 살아가는 영웅들도 자신의 삶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바람직하게 살아갔을 뿐입니다.
나는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존재 양식’으로 살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들 각자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고
그로 인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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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유혹적이다.
우리는 그것에 의존함으로써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실패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자유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비전을 가진 사람들,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전진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찬양한다. 신화에서 이러한 삶의 양식을 상징적의로 나타내는 자는 ‘영웅’이다. 그들이 가진 것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다.
불교에서는 모든 소유물, 사회적 지위, 가족 그리고 전통적인 모든 사상을 버리고 집착을 갖지 않는 삶을 향해서 나간 부처가 영웅이다. 기독교의 영웅은 예수다. 그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모든 인류에 대한 충만한 사랑에서 행동한 영웅인 것이다. 그들의 생활태도를 우리들은 바라지만, 두려움 때문에 그러한 것은 영웅에게만 가능하고 우리에게는 불가능하다고 믿어버린다.
소유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지만 필연적으로 매우 불안한 처지에 있다. 생명, 돈, 위신, 자아와 같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항상 소멸할 가능성을 갖는다. 그것들을 언제라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항시 걱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걱정과 불안은 ‘존재 양식’에는 없다. 존재는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표현하고 발휘함으로써 성장한다. 이성의 힘, 사랑의 힘, 예술적 지적 창조의 힘 등 모든 본질적인 힘은 표현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존재양식에서 안정에 대한 유일한 위협은 나 자신 속에 있다. 즉 생명과 자기의 생산적인 힘에 대한 신념의 결여, 내적인 나태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자신을 예속시키려는 심리 속에 위협이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양식에서는 사람들이 같은 대상을 함께 즐길 수가 있다. 그 조건으로 아무도 그것을 ‘소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투쟁을 피하도록 해줄 뿐 아니라 즐거움을 나누어 갖는다는 가장 심원한 인간의 행복의 항 형태를 창조한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중 p.103-p.106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