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심리학 23. 피드백 루프
Feedback Loop(피드백 루프) : 결과(출력값)가 원인(입력값)에 반복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과를 강화 또는 유지한다.
평소에 어떤 현상 또는 어떤 일이 '어떻게', '왜' 벌어지는지 굳이 알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와 '왜'에 집중해보려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메커니즘을 전혀 다른 새로운 곳에서 똑같이 접목시켜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은, 아직 생소한 '피드백 루프'라는 개념이, 다양한 곳에서 '어떻게', '왜' 작동하고 있는지 간단히 알아보려 한다.
7가지 예시를 가져와봤는데, 천천히 잘 따라와 보셨으면 좋겠다.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시작은 사과나무다.
사과나무의 사과들 중 하나가 익기 시작한다.
사과는 익으면서 껍질을 통해 에틸렌이라는 가스를 방출한다.
에틸렌 가스는 근처에 있는 사과도 익게 만든다.
그렇게 익는 사과가 많아질수록, 방출되는 에틸렌 가스의 총량은 증가한다.
더 많은 에틸렌 가스는 더 많은 사과를 익게 만든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과나무의 모든 사과가 익게 된다.
이 예시에서 우리는, 결과가 원인에 반복적인 피드백을 전달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게 피드백 루프의 전부이긴 하다. 대신 이런 반복적인 피드백 과정이 결과를 어디로 흘려보내는지에 따라, 강화 피드백 루프와 밸런싱 피드백 루프로 나뉜다.
위 예시의 반복적인 피드백 과정은, '에틸렌 가스'라는 원인에 영향을 미쳤다. 사과나무의 모든 사과가 익을 때까지 이 과정은 계속된다.
이를 강화 피드백 루프(긍정적 피드백 루프)라고 한다. 강화 피드백 루프는 임계점이 없는 한, 결과를 양(+)의 방향 또는 음(-)의 방향으로 끊임없이 흘려보낸다.
사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일과 채소들도 익으면서 에틸렌 가스를 방출한다. 그러니 보관에 유의하자. 하룻밤 사이 같은 칸에 들어있는 모든 과일과 채소가 익어버릴지도 모른다!
민수는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이전에 인간관계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친구로부터 상처받았던 경험,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했던 경험... 그런 경험들이 지금 민수가 하고 있는 생각의 뿌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민수는 이제 누구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결국 저 사람도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 게 뻔한데, 내가 이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민수는 꽤 차가워 보였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건 무뚝뚝한 단답뿐이었다.
사람들은 민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뭔가 다가가기 어렵네', '괜히 건드리지 말자'
사람들은 점점 민수로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민수는 이런 상황들을 지켜보며 확신한다.
'그럼 그렇지.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사과나무 예시와 비슷한 구조를 발견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차가운 말투와 무뚝뚝한 행동으로 이어졌고, 그런 행동은 사람들이 민수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들었으며, 그런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민수는 자신이 가졌던 생각이 맞았다고 더 굳게 믿게 되었다.
이 또한 강화 피드백 루프의 예시 중 하나다. 위 예시의 반복적인 피드백 과정은, '민수의 생각'이라는 원인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될수록 민수의 생각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체온이 높아지면 우리 몸은 땀을 배출해내기 시작한다. 땀은 식으면서 증발 냉각 현상을 일으키고, 그렇게 체온을 낮추어 정상으로 유지시킨다.
반대로 체온이 낮아지면, 몸을 떨기(근육의 반복적인 수축과 이완) 시작한다. 몸을 떨면서 열에너지를 발생시키고, 그렇게 체온을 높이며 정상으로 유지시킨다.
이를 밸런싱 피드백 루프(부정적 피드백 루프)라고 한다. 밸런싱 피드백 루프는 결과가 양(+)의 방향으로 움직이면 음(-)의 방향으로, 음(-)의 방향으로 움직이면 양(+)의 방향으로 흘려보내, 밸런스를 유지한다.
수십 마리의 사슴이 드넓은 초원을 뛰노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사슴은 어린싹이나 풀을 먹고 산다. 만약 초원의 풀이 자라는 속도보다 사슴이 먹는 풀의 양이 더 많다면, 초원의 풀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반면 사슴은 열심히 먹고 번식을 해, 개체 수가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가 늘어난 사슴의 개체 수에 비해, 전체 풀의 양이 부족한 상황이 다가온다. 그럼 먹이를 먹지 못한 사슴의 개체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풀의 양은 다시 늘어난다. 그렇게 밸런스가 유지된다.
++지금까지 들었던 예시들은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화한 부분이 있습니다. 피드백 루프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기에, 다양한 요소들이 해당 루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생태계의 예시만 보더라도, 기후나 먹이사슬 및 기타 다양한 범지구적 요인이, 사슴과 풀의 개체 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본 글의 핵심 내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운동을 하겠단 마음을 먹긴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참 쉽지 않다. 운동을 하면 좋다는 걸 모두가 안다. 심지어 운동을 '일정 기간 꾸준히 하기만 하면' 몸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는 확신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운동을 지속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아래 사진을 보자.
하루 이틀 운동을 한다고, 몸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느껴지진 않는다. 이는 피드백을 받는 데까지(혹은 받았다고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땐 피드백 루프가 형성되기 어렵다.
물론 피드백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운동을 마치자마자 성취감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근육이 자극을 받았다는 느낌, 뿌듯함 등)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은 일시적이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운동을 해야 할 시점까지 영향을 미치기가 쉽지 않다. 그 시점엔 오히려 피곤함이나 귀찮음 같은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연결고리가 필요한데... 의도적으로 새로운 피드백을 만들어낼 순 없을까?
그렇게 등장한 게 NIKE RUN CLUB(이하 NRC) 같은 운동 앱이다.
NRC와 함께 하루만(!) 운동해도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그러한 직관적인 피드백이 다음 운동 시점까지 영향을 미치며 강화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내고 있다.
사실 몸에 일어나는 변화와, NRC가 주는 피드백 사이에는 어떠한 인과 관계도 없다. 익은 사과 껍질이 에틸렌 가스를 방출해서 다른 사과들이 더 빠르게 익는 것관 달리, 내가 이만큼의 뱃지를 얻어내서 몸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할 순 없다.
대신 이러한 피드백은 '운동을 한다'라는 원인에는 확실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운동을 지속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몸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경주나 레이싱 게임이라고 하면 넥슨의 카트라이더가 떠오른다. 플레이를 해보진 않았어도,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레이싱 게임에선 당연히 '1등'이 최고의 보상을 받고, 최고의 성취감을 얻는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0.01초 더 빠른 기록을 위해 같은 트랙을 수십 번 수백 번 주행하기도 한다.
게임이 시작됐는데, 스타트가 좋지 않다. 8명 중 8등으로 트랙을 달리기 시작한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8등 플레이어가 1등 플레이어를 영영 따라잡을 수 없도록 게임 시스템이 구성되어있다면, 게임은 더 이상 흥미진진해지지 않는다. 반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은 트랙을 꾸역꾸역 달리는 것만큼 지루한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게임 디자이너는, 1등 플레이어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하기 위해, 꼴등 플레이어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 밸런싱 피드백 루프를 디자인했다. 예를 들면 순위가 뒤로 밀릴수록 기본 속도가 증가한다든지, 더 강력한 아이템이 주어질 확률이 높아진다든지 말이다.
밸런싱 피드백 루프가 게임을 흥미진진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반드시 정밀하게 디자인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 피드백 루프가 1등 플레이어의 실력까지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면, 아무도 게임 실력을 늘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숏 비디오 서비스(틱톡, 릴스, 숏츠 등) 시장이 빠른 시간 내에 급속도로 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자가 서비스에 빠져드는 시점은, 그 서비스를 통해 무언가를 얻어낸 시점이다. 해당 서비스에서 어떠한 목표도 달성할 수 없고, 어떠한 것도 얻어낼 수 없다면, 더 이상 이용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사용자는 바로 그 무언가(정보나 지식 또는 재미)를 최대한 쉽고 빠르게 얻길 원한다. 검색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그런 사용자의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는 요소일 뿐이다. 따라서 더욱 정밀한 추천 알고리즘 구성은 서비스의 성패에 영향을 미쳤다.
숏 비디오는 사용자가 원하는 보상을 빠르게 반복적으로 전달했다. 이러한 반복적인 피드백 과정은, '새로운 컨텐츠 탐색'이라는 원인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될수록 사용자는 점점 더 많은 컨텐츠를 소비하게 될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새로운 정보나 지식 또는 재미'라는 피드백을 얻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러한 피드백 루프가 형성되기 어렵다.
잘 설계된 피드백 루프들을 살펴보면 4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속도 - 빠르게 피드백이 이루어져야 한다
측정 가능성 - 추상적인 피드백을 수치화해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맥락 - 흐름에 맞는 피드백이 주어져야 한다
동기 - 본능적이거나, 내가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NRC는 운동을 마치자마자 피드백(달성 기록, 뱃지, 순위)을 제공한다(속도). 또한 데이터 차트를 통해 저번 주의 기록과 이번 주의 기록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측정 가능성).
뱃지같은 피드백은 단순히 '앱 실행 횟수', '친구 10명 만들기' 같이 운동과 관련 없는 게 아니다. 모두 이때까지 내가 했던 운동과 관련이 있다(맥락). 또한 그 기저엔 건강한 신체에 대한 나의 욕구가 있다(동기).
숏 비디오 컨텐츠는 15초에서 1분 사이에 피드백(새로운 정보, 지식 또는 재미)을 제공한다(속도). 또한 조회수나 좋아요, 댓글 수를 통해 내가 인기 있는 컨텐츠를 소비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게 한다(측정 가능성).
정밀하게 설계된 추천 알고리즘은, 내가 관심 있게 시청한 주제의 영상들을 더 많이 보여준다(맥락). 또한 그 기저엔 더 많은 정보와 더 큰 재미를 추구하는 뇌의 보상체계가 있다(동기).
피드백을 받는 속도가 빠를수록, 비교와 측정이 직관적일수록, 더 자연스러울수록, 본능을 자극할수록, 더 끈끈한 피드백 루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자연스럽게 특정 목표나 결과를 향해 나아가게 하기 위해, 이러한 피드백 루프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내가 평소에 반복하고 있는 행동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지향하고 있는지 한 번쯤 떠올려보셨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결과를 지향하고 있다면, 그 피드백 루프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반대로 지향하고자 하는 결과가 있지만 반복적으로 행동하기 힘들다면, 어떻게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떠올려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