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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 May 16. 2022

정말 심플한 게 최고일까?

디자인과 심리학 22. 테슬러의 복잡성 보존 법칙

Tesler's Law (테슬러의 복잡성 보존 법칙) : 모든 시스템에는 더 줄일 수 없는 일정 수준의 복잡성이 존재한다.


디터 람스

'Less But Better'


조너선 아이브

'미니멀리즘(Minimalism)'


하라 켄야

'공(Emptiness)'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디자이너들은 한결같이 '심플하게!'를 외친다. 그리고 이들의 디자인 철학은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나도 어느 순간부턴 항상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무엇을 더 덜어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단순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게 꼭 필요할까?'

...


"어디까지가 심플함의 영역일까?"

적어도 디자인에선 기준이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얼마든지 중심이 될 수 있는 예술의 영역에선, 심플함이 추상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도 상관이 없다. 예술에선 근본적으로, 나의 생각, 나의 욕구의 표출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얼마든지 자기 인생의 우여곡절을, 현란한 곡선으로 표현할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곡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해와 수용은 예술가가 1순위로 고려해야  요소가 아니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 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까?


하지만 디자인에선 대중과 소비자, 유저가 중심이 된다. 그래서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디자인을 하면 이런 말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게 난데, 왜 이해를 못 해줄까?"

"우리 제품이 이렇게 훌륭한데, 왜 쓰질 않을까?"


안타깝게도 그런 목소리는 사람들의 귀에 닿지 않는다.




디자인을 할 땐, 심플함이 추상적인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지 않은지 항상 체크해야 한다. 아래 예시를 보자.


트위터의 인터렉션 버튼 섹션


위 이미지는 트위터의 인터렉션 버튼 섹션이다. 여기서 두 번째 아이콘은 어떤 기능을 할까?


트위터를 이용하시는 분이라면 바로 알 수 있었겠지만, 처음 접한다면 '새로고침'과 비슷한 기능을 떠올리셨을 것이다. 아니면 교환이나 교류를 하는 장면이 떠오르셨을 수도 있다.


정답은 '리트윗'이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리그램이라고도 한다. 다른 사람의 게시물을, 내 피드에 출처를 남기고 올리는 것과 비슷한 기능이다.


추상적인 아이콘, 그러니까 어떤 기능을 할지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를 클릭하는 건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유튜브처럼 아래에 레이블을 표시해줬다면, 그 부담을 없앨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복잡성은 에너지와 같아서, 생성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보존된다. 심플함이 추상적인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 다른 영역에선 그만큼의 복잡성이 더해진다는 것이다. 아까 같은 경우는, 유저에게 그 복잡성이 할당된 경우이다. 그럼 반대의 경우도 있을까?


구글에서 검색을 하면, 특정 단어를 입력하는 도중에 관련된 단어나 문장이 추천된다. 덕분에 사용자는 단어를 일일이 입력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고, 관련된 다른 정보까지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경우에선 유저에게 할당되는 복잡성(검색어 입력, 관련 정보 찾기)이 줄어든 만큼,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 할당되는 복잡성(해당 기능을 위한 플로우와 알고리즘 개발 및 디자인 과정)이 늘어났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그 복잡성을 최대한 많이 부담하면, 사용자는 최대한 심플하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온라인 예약 플랫폼 Expedia에서는 항공편 예약 과정을 더욱 심플하게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사용자가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는 순간부터, 백그라운드에서 검색이 진행되도록 했다. 검색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말이다.


덕분에 사용자는 검색 버튼을 누르면 그 즉시 검색 결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오히려 사용자의 이탈률을 높였다. 왜 그랬을까?


검색 대기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사용자는 Expedia가 최상의 검색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것은 식당에서 음식이 주문하자마자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음식이 곧바로 나오면,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더 좋아할 거야'

'검색이 곧바로 되면,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더 좋아할 거야'


목표 달성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일은,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을 할 때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맥락을 고려하지 못 한 지나친 단순화가 오히려 사용자의 심적인 부분에 복잡성을 더해버린 케이스다.


이후 Expedia는 의도적으로 검색에 2초 정도의 딜레이를 주어(복잡성을 더해) 사용자 경험을 개선시켰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추구하는 '심플'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복잡성이 보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조건 심플하게 만든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과정이나 시스템을 단순하게 했을 때, 복잡성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반드시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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