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심리학 : 21. 프레이밍 효과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 : 똑같은 정보도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폰 사용자라면, 언제부턴가 앱을 설치했을 때 이러한 팝업이 뜨는 걸 보신 적이 있으실 것이다.
이는 iOS 14.5 업데이트에 새로 추가된 보안 정책인데, 당시 앱 추적을 허용한 미국 내 아이폰 사용자 수는 250만 명 중 4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를 보고 일각에서는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평소에 앱이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분석하는 것에 사람들도 불만을 가지고 있었구나!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정말 나머지 96퍼센트의 사람들은, 보안상 이유 때문에 추적 금지 버튼을 눌렀을까?'
추적의 사전적 뜻은 '도망하는 사람의 뒤를 쫓음'이다. 정확한 사전적 뜻을 모르더라도, 추적이라는 단어가 긴장감, 불안함, 급박함 같이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내 행동을 '추적'한다는 데, 그걸 누가 좋아라 할까? '추적을 허용하겠습니까?' 앞에 어떤 문구가 써져있었더라도, 사람들은 추적 금지 요청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까?
이런 애플의 정책 때문에, 맞춤형 광고 서비스로 큰 수익을 거두고 있었던 페이스북은 위기를 맞았다. 만약 다른 문구였으면 어땠을까? 아래와 같이 말이다.
이러면 훨씬 중립적인 질문이 된다. 사용자에게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편향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맞춤형 광고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으면 활동 정보를 제공하면 되고, 그래도 활동 정보를 제공하고 싶지 않으면 허용하지 않으면 된다.
이것이 바로 프레이밍 효과다. 같은 것도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은 달라진다. 프레이밍 효과는 실생활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같은 제품 A이지만, 오른쪽을 선택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아래와 같은 이성적인 판단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이거 원래 12,000원인데?
혹시 더 팔려고 일부러 이렇게 해놓은 거 아닐까?
제품에 하자가 있는 건 아닐까? 한 번 다른 제품들이랑 비교해보자.
하지만 매번 이렇게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면 정말 피곤하지 않을까? 그래서 대부분은 직관에 의존한 선택을 내리곤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직관에 의존할 때, 프레이밍 효과는 빛을 발한다.
다시 아까 애플의 예시로 돌아가 보자. '어떻게 하면 추적 허용 버튼을 누르게 만들 수 있을까?'란 과제에 직면하게 된 기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추적 허용 버튼의 클릭률을 높이고자 했다.
왼쪽은 인스타그램의 팝업, 오른쪽은 핀터레스트의 팝업이다. 이 문구들을 읽고 난 다음, 해당 서비스들의 '추적'을 허용할 의향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인스타그램에선 추적 금지 버튼을, 핀터레스트에선 허용 버튼을 눌렀다. 사실 광고를 어떻게 보여주어도 상관없었다. 평소에 광고를 통해 정보를 얻거나 소비 결정을 내리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선택이 달라진 건, 아래와 같은 차이점 때문이었다.
핀터레스트의 경우 내가 '추적'이란 단어로부터 느끼는 불안감, 긴장감에 공감하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추적'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며, 추적 권한 요청 팝업에 대한 인식을 재구성하고 있다.
즉, 프레이밍 효과를 다시 적용시켜서,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 뒤 핀터레스트는 나를 안심시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언제나 변경 가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추적 허용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리스크를 짊어지는 행위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반면 인스타그램은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추적 금지 버튼을 누르면, 인스타그램을 무료로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암시하는 문장이 있다(!).
이는 공감이나 설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추적'이라는 단어가 만들어낸 부정적인 프레임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프레임 밖을 벗어나는 건 어렵다. 사실 내가 그 프레임 속에 갇혀있는지 자각하는 것조차 어렵다.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이 있으실 진 모르겠지만, 언제는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해도, 자꾸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더라. 얼핏 들은 안 좋은 소문이, 나도 모르게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설문조사를 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설문조사에선 '이 서비스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또는 '이 서비스의 어떤 점이 불편했나요?' 같은 질문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질문 자체가 이미 긍정적,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고 있기에, 답변은 어느 한쪽으로 편향될 수 밖에 없다. 그럼 어떤 문제가 과소평가, 또는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뜻이고, 결국 부정확하고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만 남게 된다.
그 대신 '이 서비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같이 중립적인 질문을 던지면, 더 정확하고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의사결정엔 이성적 판단과 감정적 판단이 공존한다. 따라서 사람의 행동은 물리학적으로 수치화되어, 하나의 결과로 딱 이어지지 않는다.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다니엘 카너먼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선 이러한 내용들을 더욱 재미있게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관심있는 독자분들은 읽어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