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부를 찌르는, 고딕 호러와 가여운 이들에 대한 조롱이자 헌사
저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한 고등학교 때부터는 순수문학을 읽었는데 초등학교 때는 판타지 소설만 읽었습니다. 그때 제가 읽었던 책이 해리포터 시리즈였는데요. 아예 매일매일 읽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말도 안하고 하루종일 그것만 읽었습니다. 왜 그랬냐하면 저도 왜 그렇게 사회성 떨어지게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집착적이었습니다. 인물 하나 대사 하나 다 외우고 싶었습니다. 어느날부터 의문이 들었습니다. 동건이는 게임 좋아하고, 승윤이는 축구 좋아하는데. 난 왜 이따구지?
그런데 이게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중학교 올라가니까 사람이 점점 책도 안보고 놀기도 좋아하는 평범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화 볼때나 소설 읽을때 집착적인 면모는 여전했습니다. 제가 가졌던 질문은 지금의 제가 생각해도 일반 사람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해리 포터를 읽을 때는 어떤 의문을 가졌느냐하면 볼드모트는 패하고 왜 알바니아로 도망쳤을까?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아니 덤블도어 피하려면 프랑스까지만 가면 되는데 왜 먼 알바니아까지 튀었느냔 말입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가 덕선이를 결국 놓치고 택이와 덕선이가 함께 영화관에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지금 쟤네가 보고 있는 저 영화는 뭐지? 왜 하필 저 영화지?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얼마 전에 기예르모 델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크리처가 서까래 위에 매달려서 하루종일 책을 읽잖아요. 그 책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그 장면에 삽입되었는지도요.
지금은 솔직히 책도 많이 읽지 않고 예전처럼 몽상할 시간도 없고 대학교 들어가서는 논다고 밴드한다고 바빴지만 제가 왜 그렇게 허구의 창작물들에 매료되었는지는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소설과 영화를 공부했습니다. 개중에 하나가 제가 프롤로그에 언급했듯이 고딕 호러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영화로 달려오기 위해서 제 브런치북에 직접 수많은 복선을 깔았습니다. 제 브런치북을 읽어주신 몇 안되는 독자분들을 위한 작은 선물입니다. 물론 별로 받고 싶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요. 아마 이 글은 제가 쓴 글 중에서 가장 장문이 될 것이고 그리고 가장 마음을 많이 쏟은 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나은 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위에 제가 던진 세 질문들은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가여운 것들>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질문들입니다. 글의 말미에 제가 답을 공개하면서 이유도 함께 적겠습니다.
<가여운 것들>은 <노스페라투>, <프랑켄슈타인>과 함께 최근 개봉한 고딕 호러 장르의 영화 가운데서 가장 훌륭했던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영화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상당히 어렵습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가여운 것들>에 대해 쓴 글을 모두 다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가여운 것들>을 일정 부분 오독하고 있다고 백퍼센트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모두는 평론가님들 포함입니다.
<가여운 것들>의 어려움은 제가 앞서 리뷰했던 <버닝>의 어려움과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무라카미 하루키, 윌리엄 포크너, 이청준 그리고 이창동의 소설과 1960년대 한국의 소설 기반 영화들 그리고 이창동 감독님의 필모그래피에 있는 모든 영화를 다 본다고 해서 <버닝>이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버닝>의 어려움은 현학적인 주관식 질문을 풀 때 느끼는 어려움입니다. 하지만 <가여운 것들>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모든 영화와 원작 소설을 다 보셨고 이해하셨으며 더 나아가 유럽 특히 러시아와 슬라브계의 문화와 고딕 호러 장르의 탄생에 대해 알고 계시고 그리고 또 더 나아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보셨고 또또 더 나아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작품 세계와 이탈리아의 리얼리즘에 대해 알고 계시고 여기서 또또또 더 나아가 여성의 인권과 영화의 연관성에 대해 빠삭하시고 마지막으로 이를 <가여운 것들>과 연결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면 구구단 풀듯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없지요. 그래서 제가 이 글을 통해서 요약해 이해시켜 드리겠습니다. <붉은 수수밭>을 리뷰할 때 만약 이해하실 능력만 되시다면 저의 글보다는 다른 평론가분들의 글이나 논문을 읽는 것이 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여운 것들>은 다릅니다. 제 글을 읽는 것이 그분들의 글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자신합니다. 다만 시작할 때도 언급드렸듯이 분량이 좀 많습니다. 그럼 이제야 시작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벨라를 수식할 때 여자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칭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벨라의 행적이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인 메리 셸리를 연상케하기도 하구요. 벨라를 창조한 인물은 윌럼 대포가 연기한 갓윈 백스터인데 공교롭게도 메리 셸리의 아버지 성이 갓윈입니다. 이를 몰라도 벨라의 초기 행적을 보시면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여자 프랑켄슈타인 벨라의 성장기라고 영화를 해석하셨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면 영화 곳곳에 원하지 않는 빈틈이 너무나 많이 생깁니다. 벨라가 미국의 변호사 던컨 워더번과 떠나는 부분부터는 어떻게 해석하려고 해도 프랑켄슈타인과 연결시키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럼 이 부분부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결론으로 바로 가자면 벨라가 여자 프랑켄슈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해석이 안되는 겁니다. 아니 아까는 여자 프랑켄슈타인 맞다면서 왜 아니라는 건데. 근거도 들었잖아. 이렇게 생각이 드실 겁니다.
자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얹어 드리자면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기 전, 최초의 페미니스트 가운데 한 명이었던 메리 셸리의 어머니와 무정부주의자였던 메리 셸리의 아버지 갓윈 그리고 폴리도리라는 한 소설가는 유령 이야기를 쓰기로 약속했습니다. 이후 바이런과 폴리도리 메리 셸리와 남편 피터 셸리는 한 오두막에서 만나 각자 하나씩 소설을 쓰게 됩니다. 이때 메리 셸리가 쓴 작품이 프랑켄슈타인 폴리도리가 쓴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뱀파이어입니다. 뱀파이어와 프랑켄슈타인은 그렇게 고딕 호러의 뿌리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폴리도리가 제시한 뱀파이어는 여러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결국 여러 이형의 뱀파이어들이 탄생합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기원과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요. 이 여러 이형의 뱀파이어들을 묶어 뱀파이어의 원형을 정립한 이가 브램 스토커입니다. 브램 스토커가 쓴 뱀파이어 소설을 우리는 드라큘라라고 부르지요. 그리고 드라큘라는 결국 영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대부>를 만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당시 신인이었던 위노나 라이더와 우리들의 영원한 존 윅,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만든 영화가 바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입니다.
그럼 이게 벨라를 이해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벨라는 프랑켄슈타인과 메리 셸리에게서는 30% 정도의 유전자밖에 받지 못한 캐릭터입니다. 나머지 30%는 소설 드라큘라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등장인물인 미나 머레이와 웨시 웨스턴라에게서 따왔습니다. 미나 머레이에게서는 진취적이고 호기심많은 성격을, 웨시 워스턴라에게서는 행적의 일부를 가져왔지요. 구체적으로 설명드리자면 벨라는 극이 지나며 3명의 남자에게서 청혼을 받습니다. 한 명은 의사 갓윈의 조수 맥스, 한 명은 미국의 변호사 던컨 웨더번, 그리고 마지막은 벨라의 어머니의 남편이었던 알피 블레싱턴입니다. 드라큘라의 웨시 워스턴라도 3명의 남자에게 청혼을 받습니다. 의사 존 시워드, 미국 텍사스의 모험가 퀸시 모리스, 영국의 귀족 아서 홈우드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이후 해석에 또 등장할 겁니다. 여기까지가 제 주장이고 근거를 들어드리자면 그냥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라는 영화 자체가 근거입니다. 앞서 언급한 세 인물들과 벨라 그리고 드라큘라의 웨시 워스턴라와 세 청혼자의 의상이 동일합니다. 연출도 코폴라 감독이 고소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일치하구요.
정리해 드리면 이렇습니다. 벨라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프랑켄슈타인에 정신적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고, 프랑켄슈타인이 속해 있는 컬트 혹은 판타지 장르인 고딕 호러에서 따온 캐릭터입니다. 그중에서도 30% 정도는 프랑켄슈타인에서 30% 정도는 드라큘라에서 나머지 30%는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회색 뇌세포에서 나왔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해석하기 어려워하시는 부분이 <가여운 것들>이 여성 영화인가 아닌가하는 부분입니다. 참고로 부끄럽지만 저는 여성 인권에 대해 큰 관심이 없구요. 그냥 이 영화 공부하기 위해서 일부분만 배웠습니다. 여러분들이 해석하신 방법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누어보자면 <가여운 것들>은 여성 성장 영화이자 여성 인권에 대해 탐구한 영화다!라고 말씀하신 분들이 있었고 이 영화는 여성 영화의 탈을 쓰고 있는 여성 혐오 영화다!라고 정반대로 말씀하신 분들이 있었고 이 영화가 여성 영화인지 아닌지에 집중하지 말고 벨라의 성장기로 보면 된다!라고 말씀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브런치에서 유명하신 홍수정 평론가님같은 경우는 세번째 의견이셨고 그중에서도 반복되는 신체의 훼손에 집중하자는 의견 내주셨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답은 <가여운 것들>은 여성 성장과 인권에 대해 다룬 영화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전반부 순진하고 무고한 존재였던 벨라가 아버지 갓윈의 곁을 떠나 여러 일들을 겪으며 성장하는 성장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는 윤리학과 사회주의에 대해 배우며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신과 같은 가여운 이인 펠리시티를 보호할 수 있게 되지요. 당연한 겁니다. 애초에 벨라의 성장기라는 말에 여성 성장 영화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으니까요. 다만 간과하시면 안되는 것이 벨라는 여성만은 아닙니다. 벨라는 여성이자 아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제 주장에 굉장히 큰 거부감이 드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큰 줄기는 저게 맞는데. 아무리 봐도 기괴하고 불쾌하게 여성을 다루는 장면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세 장면만 예로 들어드리자면 하나는 벨라가 던컨 웨더번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벨라가 여성이자 아이이며 던컨 웨더번은 중년의 남성임을 떠올려 보신다면 이 장면은 여성 인권을 떠나 인간의 권리를 다루는 영화에서는 들어가서는 안 될 장면입니다. 또 한 장면은 알피 블레싱턴이 벨라의 음핵을 들어낸다고 말한 장면이 있습니다. 굳이 저렇게 과한 대사를 넣지 않아도 알피 블레싱턴이 벨라의 어머니를 학대했음을 드러낸 시점에서 그가 악인이라는 설정에 이미 개연성은 부여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벨라는 윤리학과 사회주의를 그냥 배운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몸을 팔아 공부를 했지요. 자 그럼 이 장면들은 영화의 주제와 연출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말로만 벨라의 인권과 성장에 대해 떠들고 연출적으로는 오히려 유명 배우인 엠마 스톤의 나신이 가져다주는 효과를 감독은 노리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까?
여기서 새로운 배경지식이 또 필요합니다. 아까 메리 셸리의 어머니는 최초의 페미니스트이자 프랑스 혁명에 참여한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말씀드렸을 겁니다. 벨라의 아버지도 무정부주의자이니까 진보를 한참 넘어서도 넘어섰죠. 당연히 폴리도리와 메리 셸리도 여성 인권 더 나아가 가여운 이들의 인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들의 행적과는 정반대로 그들의 작품들은 여성 차별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아까 밝히지 않은 드라큘라의 내용을 더 밝혀드리자면 루시 웨스턴라는 세 청혼자 가운데 알피 블레싱턴에 해당하는 아서 홈우드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루시 웨스턴라는 사실 세 청혼자를 다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벨라처럼 자유롭게 세 남자와 뒹굴고 싶다는 어이없는 내용도 암시가 됩니다. 그리고 훗날 그녀가 드라큘라에게 물려 여성 드라큘라가 되자 아서 홈우드는 심장에 말뚝을 박아 그녀를 죽입니다. 제가 문학사 교수님께 배우기로는 이 말뚝을 박는다는 행위가 순결하지 못한 여성의 성을 앗아가는 의미라고 합니다. 사실 저도 이 연관성은 이해가 잘 안되지만요. 자 이 성을 앗아간다는 대사 아까 봤었죠. 알피 블레싱턴의 대사입니다. 프랑켄슈타인도 여성 인물들은 아예 극에 반영이 안되고 등장하는 단 한 명의 주연은 크리처에게 살해당합니다. 그래서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은 이 한 명의 주연 비중을 극단적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각본을 수정했지요.
왜 여성 인권운동가였던 그들의 작품이 여성 차별적인가?라고 물어보신다면 이는 시대적 한계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생을 <가여운 이들>의 배경인 빅토리아 시대에 살아왔습니다. 제가 행복연구의 권위자 서은국 교수님께 들은 바로는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보이지 않게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을 정립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의 소설이 여성 차별적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이를 신랄하게 풍자합니다. 벨라가 던컨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과 알피의 음핵을 들어낸다는 토 나오는 대사는 드라큘라에서, 몸을 팔아 공부를 한다는 설정은 바람을 피운 메리 셸리에게서 가져와 이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장면들과 연출들은 영화의 주제와 상충되지 않습니다. 한편 이러한 모순들을 드러내기 위한 기괴한 상징이 또 있는데 바로 돼지닭과 인간염소입니다.
물론 감독은 고딕 호러 장르만을 풍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많이 보신 관객분들은 배경지식이 없어도 <가여운 것들>과 유사한 배경에서 여성의 배드신이 나오는 것에 거부감을 못 느끼셨을 수도 있습니다. 위노나 라이더부터 김옥빈까지 고딕 호러 장르는 여성을 소비하는 것에 특화된 장르입니다. 그러니까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이 영화를 아무 생각없이 여성에 대한 영화 혹은 여성 혐오 영화라고 오독할 여러분들을 혹은 이미 익숙해져서 이상함을 못 느끼셨을 관객 분들을 함께 비판하고 있습니다. <가여운 것들>은 독특하게도 관객의 오독을 사실상 유도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이 배경지식을 통해 알 수 있는 또 한가지 사실은 이 영화는 결론적으로 고딕 호러 영화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성 인권과 성장에 대해 다룬 영화이기도 하지만 결국 여성 인권이 등장한 이유는 여성 인권이 고딕 호러 장르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등장한 겁니다.
이제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 세계를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내용을 정리해드리자면 벨라와 <가여운 것들>은 고딕 호러를 다룬 작품이며 프랑켄슈타인과 여성 인권은 고딕 호러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왜 란티모스 감독이 그 하고 많은 고딕 호러의 소주제 가운데 여성 인권을 선택했는지 알아볼 시간입니다. 하고 많은 소주제가 뭐가 있는지 궁금해 하실 분들 있으실까봐 알려드리면 이 영화는 공포 영화로 갈 수도 있었고 로맨스 영화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전자의 예는 <노스페라투> 후자의 예로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있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세계를 굳이 단어 몇개로 정리하자면 저는 모순과 불합리를 들고 싶습니다. <송곳니>에서는 가부장제의 불합리와 모순, <더 랍스터>에서는 사랑에 대한 모순, <킬링 디어>에서는 신화의 모순과 가부장제의 모순을 섞어서, 그리고 이후의 <부고니아>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모순을 다루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고딕 호러에 대해 다루면서 여성 인권 운동의 불합리와 모순을 다룬 것은 이제 자연스럽고 당연한 선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연출적인 부분과 추가 상징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가여운 것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마무리 정리를 하겠습니다. <가여운 것들>의 초반부 연출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연출을 대부분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인물을 부자연스럽게 확대하는 연출을 야외 촬영에서 사용하는 광각 렌즈를 활용해 구현합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화면비가 좀더 차분해지고 기존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에 활용되었던 것처럼 정적이고 현실적인 톤으로 변화합니다. 벨라가 성장했다는 이야기이겠죠.
그리고 중반부에 하나 말씀 안 드린 내용이 있습니다. 던컨 웨더번과 함께 탄 배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 배는 촬영감독이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페데리코 펠리니의 <그리고 배는 항해한다>를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배는 전반부와 후반부를 잇는 교두보이기도 합니다. 배에는 두 명의 인물이 타고 있습니다. 하나는 흑인 냉소주의자 해리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할머니 마사입니다. 이들은 제가 생각해기에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작품 세계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리얼리즘을 통해 철저히 현실적인 그의 영화는 <8과 1/2>이 그랬듯이 이후는 현실적인 비판을 환상적인 연출을 통해 전달하는 독특한 방식을 가졌습니다. 이는 <가여운 것들>과 일치하지요. 고딕 호러와 스팀펑크가 혼재하는 환상적인 설정과 연출을 이용해 안권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를 던지니까요. 한편 알렉산드리아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냥 단순히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계급 사회를 비유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을 통해 벨라는 후반부의 지식인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이때 벨라가 영향 받은 것으로 보이는 사상가가 바로 마사가 준 책의 저자, 에머슨입니다. 제가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검색해보니 기독교의 교리에 집착하지 않으며 내재적 자율성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가 주장한 철학을 초월주의라고 하고 초월주의를 통해 자기 신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하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란티모스가 고딕 호러 소설의 자기 모순을 마냥 비판하고 있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셸리와 폴리도리 소설은 시대적 한계로 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결국 그들이 자발적으로 내디딘 발자취는 인권이 한걸음 더 나아가게 했으니까요. 온갖 부끄러운 행동을 일삼던 가여운 벨라가 그 경험들을 통해서 다른 이를 지킬 수 있는 주체적인 지식인으로 결말부 거듭난 것처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맨 처음에 던진 세 질문에 대한 답 달아드리겠습니다. 볼드모트가 알바니아까지 도주한 이유는 그가 뱀의 피를 빨아먹는 설정에서 알 수 있듯이 뱀파이어에게서 일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볼드모트가 동유럼으로 도주하는 설정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프랑켄슈타인>에서 크리처가 읽고 있던 글은 피터 셸리의 시 오지만디아스입니다. 이는 오스카 아이작이 연기한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연상시키지요. 크리처가 결말부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이해하는 장면에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설정입니다. 택이와 덕선이가 보러간 영화는 콤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 주연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입니다. 늙지 않는 두 뱀파이어가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길고 번잡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딕 호러에 대한 폐부를 찌르는 풍자이자 헌사를 담은 영화. 가여운 벨라의 성장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입니다.
평점 4/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