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베치스, 개러지 올림포

QUO VADIS?

by 도연호

혹시 <사운드 오브 인터레스트> 보셨나요. 저는 그 작품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악의 평범성과 구조적 폭력에 대해서 이토록 독창적으로 파고든 작품이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소리를 이용하는 방식이나 폭력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폭력에 집중하게 하는 연출 방식들이 대단했었습니다. 어쩌면 감독이 뮤직비디오를 만들던 사람이라 그런가하는 생각도 들었었구요.


<액트 오브 킬링> 그리고 <남영동 1985>도 같은 계열의 작품들입니다. 둘다 훌륭하구요. 전자의 경우에는 기록영화인데 보시면 단전에서부터 기분 나쁜 소름이 밀고 올라오는 영화입니다. 특히 후반부의 구토 장면에서요. 후자의 경우에는 박평식 평론가가 8점을 준 아주 흔치 않은 한국영화입니다. 물론 그분이 8점을 주신 이면에는 영화 완성도뿐만 아니라 스승에 대한 개인적 기억과 그로 인한 독재정권에 대한 뿌리 깊은 반발심도 포함이 되어있었다고 생각하지만요. 마침 이 영화의 모티브인 이근안이 며칠 전에 드디어 뒤져버렸기 때문에 기념으로 이 글을 쓴 것도 있습니다.


같은 계열의 작품 가운데 유명하지 않으면서도 <사운드 오브 인터레스트>만큼 훌륭하면서 볼때 재미도 있는 영화를 추천드리고 싶었구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조사를 거쳤습니다. 결과가 <개러지 올림포>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 OTT 서비스에서도 지원하지 않구요. 개봉한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 영어 자막으로 보시는 방법밖에는 없고 찾아보시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천하려고 썼지만 아무도 보지 않았고 보지 않을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궁금하신 분들이 있다면 저는 VIMEO라는 앱을 통해서 보았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더러운 전쟁


<개러지 올림포>는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합작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의 더러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곧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이 열리지요. 지난 2022년 아르헨티나는 역사적인 월드컵 결승전에서 킬리안 음바페를 무찌르고 메시의 대관식을 완성했는데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자국 월드컵에서 첫번째 우승을 이루어냅니다. 하지만 이 첫번째 우승은 아르헨티나의 세번째 우승과는 달리 전혀 영광스럽지 않았습니다. 그 이면에 군부 독재의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었고 당시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우승하지 못하면 총살당한다는 말까지 듣고 경기에 임했다고 합니다. 월드컵의 함성이 도시를 덮은 동안 독재 정권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하의 차고에서 수많은 정치범들과 정치와 상관없는 일반인까지 고문하고 학살했습니다. <개러지 올림포>는 올림픽 경기장의 지하의 고문장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지하의 고문자들과 권력자들이 올림포스의 신들처럼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중의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영화는 더러운 전쟁을 배경으로 18살의 소녀 마리아와 소년 펠릭스가 겪는 일들을 다루고 있지요.




연출력


앞서 나열한 영화와 이 영화의 차별점을 가르자면 감독 마르코 베치스가 실제 고문 피해자였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어냈지요. 그리고 영화의 톤이 일정하고 칙칙합니다. 정적인 카메라 구도는 이탈리아 초기 네오 리얼리즘 영화의 그것을 닮아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영화이지만 이탈리아 합작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연출이지요. 영화의 중간중간 줄거리와 전혀 상관없는 월드컵 경기와 걸어가는 행인들이 무작위로 촬영된 점도 이탈리아 영화의 향기를 강하게 풍깁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군부독재 시절에도 인기를 끌었던 버즈 아이 숏과 과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숏도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각각 거대한 폭력 앞에 개인이 개미처럼 작아지는 모습과 심리적 불안정함을 나타내는 연출이지요. 이 영화에서는 평화로워 보이는 거대한 도시의 지하에서 끔찍한 인간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의 연출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저는 한국영화와 가장 영화 역사나 스타일이 비슷한 나라를 하나 꼽자면 이탈리아라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네오리얼리즘 영화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자전거 도둑>이구요. 봉준호는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리얼리즘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지요. 봉준호 그 자신도 칸 영화제에서 마틴 스콜세지에 대한 존경과 더불어 이탈리아 영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낸 적이 있는데요. 봉준호가 굉장한 시네필인만큼 저는 그 인터뷰가 단순한 립서비스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와 한국이 지구 반대편에 존재해 거의 문화적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막힌 우연이지요.



심리극


이제 영화의 줄거리를 말씀드리자면 빈민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활동하던 소녀 마리아는 혼자 사는 이웃집의 소년 펠릭스와 연애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지하의 고문장에 끌려가고 맙니다. 빈민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은 그녀는 모진 전기고문을 당하다 문득 고개를 들고 고문자의 얼굴을 보게 되고 말없던 고문자도 처음으로 마리아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고문자는 펠릭스였지요.


이 영화는 그때부터 심리극으로 변모합니다. 펠릭스는 순진한 소년이지요. 하지만 그는 고아이고 갈곳이 없습니다. 동시에 그는 잔인한 고문기술자입니다. 그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피해자들을 죽기 직전까지만 고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조건적인 악인이 아닙니다. 일과 현실의 경계를 유지하고 이중적인 모습을 하고 살아가던 그는 마리아를 고문하면서 변화를 겪습니다. 미묘하게 흔들리지요. 피해자를 실수로 죽여버리면서 차고의 최고권력자인 타이거에게 타박을 받기도 하고 마리아를 지키기 위해서 평소에 하지 않던 권력자의 심기에 어긋나는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타이거는 펠릭스가 실수를 할 때마다 사무실로!라고 냉정하고 사무적으로 소리치는데요. 차고 입구의 출근 기록부와 더불어 고문장이 단지 일상과 직장에 불과한 구조적인 폭력의 견고함을 나타내는 하나의 소재입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시점부터 마리아가 펠릭스를 사랑하는지의 여부도 영화를 보는 하나의 초점이 됩니다. 고아이고 소유욕과 사랑을 갈구하는 펠릭스에게 마리아가 다정히 대하는 것이 정말 그를 사랑해서인지, 혹은 살아나가기 위한 필사의 연기인지, 혹은 둘다인지 관객이 알수가 없도록 연출이 됩니다. 결국 결말부 펠릭스는 마리아를 차고에서 데리고 나갑니다. 둘은 고민하지요. 카메라가 흔들립니다. 차고로 돌아가 펠릭스가 타이거를 설득해 그녀를 풀어줄 때까지 기다릴지. 혹은 탈출해 평생 쫒기면서 살아갈지. 마리아는 탈출하고 싶어하지만 두려웠던 펠릭스는 강제로 그녀를 다시 차고로 데리고 갑니다.





오프닝과 엔딩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살펴보면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특이하고 탁월합니다. 오프닝은 한 학생이 집의 침대에 폭탄을 심는 장면이구요. 엔딩은 거대한 비행기가 바다 위로 비행하는 장면입니다. 물론 오프닝에도 잠깐은 엔딩과 같은 장면이 삽입되기도 하지만요. 정황상 오프닝의 집은 타이거의 집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전쟁 당시 권력자들은 피해자들의 시신을 비행기에 태워 바다에 수장시켜 버렸다고 하지요. 그래서 엔딩은 마리아의 죽음을 암시하는 하나의 비유적인 장치이자 현실에 대한 거울로서 기능합니다. 그녀가 왜 죽게 되었냐는 이유를 살펴보면 펠릭스가 그녀를 다시 차고로 데리고 왔을때 동료 고문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타이거가 죽어서 더 엄격한 관리자가 왔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타이거 때문에 펠릭스가 마리아를 풀어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타이거가 유도리있게 마리아가 죽지 않기를 원하는 펠릭스를 맞추어준 것이었고 새로운 관리자가 그녀를 바로 죽여버렸음이 암시가 됩니다. 권력은 사람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드러내주는 탁월한 결말이지요.


다른 훌륭한 장면들을 꼽아보자면 창고의 CCTV 하나에 나체로 사지가 묶여 고문당하는 피해자가 다른 하나의 CCTV에는 펠릭스와 고문자들이 탁구를 치며 월드컵을 시청하는 장면이 분할화면처럼 담긴 부분이 있습니다. 펠릭스는 자결하려는 정치범의 입에서 알약을 꺼내어 CCTV 화면에 비추는데 이때 탁구공과 알약이 겹쳐집니다. 이 장면 직후에 펠릭스가 마리아를 고문하는 장면이 나왔음을 생각해보면 이는 펠릭스의 일과 일상이 곧 충돌할 것임을 나타내는 장면이기도 한 것이죠. 혹은 행인이 지나가며 멈칫하다가 하수구에 귀를 가져다대는데 희미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장면. 그리고 피해자들의 신발을 고문자가 벗겨 치워버리는 장면도 자주 등장하는데 후반부에는 신발이 산처럼 쌓여있는 비유적인 장면도 훌륭했습니다.


구조적 폭력. 피해자들의 무기력함. 소유욕과 집착 그리고 사랑과 생존욕구. 이 모든 소재들을 정적인 연출과 흔들리는 카메라로 담은 기록영화.


<개러지 올림포>입니다.




평점 5/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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