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 프로젝트 헤일메리

용감하게 뻗어나간 과학적 상상력의 페트로바선

by 도연호

SF라는 장르를 상대적으로 덜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앤디 위어의 소설을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과학적 지식은 제 문학적 지식에 비해 모자라지만 앤디 위어의 소설은 전문적이고 어려운 과학 용어들로 가득차 있음에도 유머와 필력으로 이를 일반 대중들에게도 납득시키는 힘이 있어서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어요. 마션과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모두 읽었구요. 영화 <마션>과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보았습니다. 책은 마션을 가장 좋아하구요. 여러 독자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마션의 첫 문장을 가장 좋아합니다. 시험 기간이 되면 항상 생각하고 종종 입으로도 뱉는 문장이기도 하지요. 영화의 경우에는 이 영화가 가장 좋았어요. 영화 <마션>도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들어낸 수작이지만 저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침 저번주에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라는 또다른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를 리뷰했었는데 그 영화도 나쁘지는 않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 정도는 아닙니다.




과학적 창의력


어차피 이 영화의 과학적 창의력은 대부분 앤디 위어의 도서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 문단은 앤디 위어를 중심으로 서술하겠습니다. 이 영화의 첫번째 장점은 정말이지 과학적인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건데요. 저는 SF 영화의 판타지 영화와는 다른 필수 요소이자 가장 어려운 핵심을 꼽는다면 상상력이 기발하기도 해야하는데 또 반대로 현실과 완전히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어요. 예를 들자면 <인터스텔라>의 4차원 공간 장면이 있지요. 4차원 공간이 당연히 구현이 불가능할 것임에도 이를 영화 반전의 핵심 요소이자 쿠퍼의 감정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구조물로 전달한 장면 말입니다. 이게 뭐가 어렵다고?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과학 소설로 정말 유명하잖아요. 거의 그 분야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요. 저는 그의 소설 가운데 뇌를 제일 좋아하는데요. 뇌의 전작인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인간의 조상에 돼지 DNA가 들어있다는 가설을 핵심 설정으로 활용해 그야말로 쫄딱 망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과학적인 상상만 하고 사는 사람들도 실수할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이 영화는 다릅니다. 과학적인 상상력을 마음껏 활용하는데 하나같이 설득력이 상당해요. 예를 들어서 탄소와 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주장하는 그레이스 박사의 이론이나 <마션>과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모두 강조되었던 항성이나 행성의 공전 궤도와 중력에 대한 상식도 그렇습니다. 이제는 워낙 다양한 영화에서 활용되어 진부하기도 하지만 우주 여행을 할 때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활용되었지요. 이러한 과학적인 상상력들이 단순히 흥미 유발 요소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개와 복선으로 이어지는 것도 좋았어요. 그레이스는 탄소와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생명체를 결국 발견하게 되구요. 영화의 오프닝에서 그레이스는 학생들에게 소리의 주파수에 대해 가르치잖아요. 그 장면이 로키의 종족이 인간의 언어와는 달리 주파수 차이를 이용해 소통한다는 설정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있었지요. 로키의 종족인 에러디언은 가시광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빛과 상대성 이론에 대한 연구가 늦었고 따라서 여분의 에스트로파지를 의도치 않게 연료로 더 많이 들고 오고 말았지요. 그래서 그가 그레이스가 집으로 돌아갈만큼 연료를 나누어줄 수 있었던 겁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설정은 따로 있습니다. 빛을 소모하며 운동하는 에스트로파지와 로키라는 또다른 외계인의 설정이었는데요. 보통의 SF 영화에 나온 외계인을 떠올려 볼까요. 스필버그 감독의 ET나 혹은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을 떠올려 보시면 외계인은 못생기고 친근한 쪽이든 잘생기고 완벽한 쪽이든 대부분 얼굴이 있습니다. 그런데 로키는 얼굴이 없고 그냥 돌처럼 생긴데다 고온고압에서 생존해 아예 지구의 대기에서는 숨도 못쉽니다. 물론 귀엽게 묘사되기는 하지만요. 에스트로파지는 아예 세포의 형태이지요. 이렇게 관객이 공감하기 힘든 그래서 그동안 활용되지 않은 형태의 외계생명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 영화의 차별점이자 장점이었습니다.




연출적 창의력


그리고 연출도 훌륭합니다. 그레이스가 처음 깨어나고부터 이어지는 영화의 초반부 30분 정도는 참 놀라웠습니다. 좋은 SF 영화라면 어떤 영화든지 그렇기는 하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떠오르게 할 정도였습니다. 기억을 잃고 우주선을 헤메이는 그레이스를 다양한 각도로 담으며 그의 심적 혼란을 표현한 점도 좋았지만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사건으로 이어지는 산만한 전개를 자연스럽게 잇는 매치컷들이 눈에 띄었어요. 우주선의 가상공간의 바다에 앉은 그레이스 발에 찰랑이는 바다가 지구의 바다로 이어지면서 스트라트와의 대화를 보여준다든지 우주선의 의자를 그레이스가 빙글빙글 회전시키자 화면이 함께 회전하며 지구의 연구실에서 의자를 돌리다가 스트라트와 부딫히는 그레이스로 전환되는 장면들이 예시입니다. 로키와 처음 마주할때의 장면이 <미지와의 조우>를 오마주했다는 점도 그 영화를 보신 관객분들에게는 분명한 울림을 가져다주었을 것 같아요. 녹색으로 빛나는 타우세티의 항성과 로키의 우주선도 영상미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주제


굳이 영화의 주제를 따지자면 인간은 누구를 위해 용기를 내는가. 더 나아가 인간은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가로 함축할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자의적으로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선택지가 없었던 스트라트의 강제적인 제압과 마취로 끌려가게 되었죠. 그럼에도 로키는 그레이스를 용감하다고 칭하고 스트라트도 그레이스에게 인류의 운명을 맡길만큼 그를 믿고 있습니다. 스스로 이 자살 미션에 합류해 뭘로 자살할지 농담하는 강심장 야오에게 그레이스는 존경한다면서, 자신은 그런 용기를 가지지 못했을 거라고 인사하는데, 야오는 용기를 낼만한 누군가가 없었을 뿐이지 그레이스도 똑같은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일축합니다. 후에 야오와 올레샤의 시신을 우주로 방출하던 그레이스는 친구와 가족들과 찍은 둘의 사진을 보게 되지요. 그리고 야오의 이 말은 복선처럼 작용해 결국 결말부 그레이스도 로키를 위해 목숨을 무릅쓰는 용기있는 인간으로 거듭납니다. 사실 그 이전에 연구실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때 그 폭발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질주하던 스트라트와 그레이스를 떠올려 본다면 이미 그레이스는 본인만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지 용기있는 인간이었을지도 모르지요.


마지막으로 <드라이버>와 <라라 랜드>의 무게감 있고 과묵한 모습에서 벗어나 유머가 가득하고 찌질한 과학자를 연기한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도 좋았지만 저는 잠깐 나온 산드라 휠러의 연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농담을 알아듣지를 못하는 독일인 개그나 그레이스의 말을 끊어먹고 따박따박 면박주는 장면. 그리고 그레이스를 냉정히 마취시켜 자살 미션에 투입시키면서도 죄책감에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와 글썽이는 눈물. 그리고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벌이는 파티의 한가운데에서 환호를 받으며 Sign of the times를 부르는 그녀의 연기는 정말이지 대단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나 <추락의 해부>를 보아도 현시점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과학적 상상력과 뛰어난 연출력 그리고 영상미, 배우들의 연기까지 수많은 무기로 무장한 훌륭한 SF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입니다.




평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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