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나버린 제국의 한 수
얼마 전에 왕좌의 게임 스핀오프가 공개되었습니다. 제목은 세븐킹덤의 기사구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제가 원래 왕좌의 게임을 도서와 드라마 모두 즐기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완성도가 상당히 뛰어난 드라마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통틀어서 본 드라마 중에 더 펭귄 다음으로 좋았어요. IMDB 평점도 5화 같은 경우에는 10점 만점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브레이킹 배드의 오지만디아스가 지금까지 드라마 중에서는 유일하게 IMDB 10점 만점이었거든요. 그 브레이킹 배드의 대형 팬덤들이 몰려와서 평점 테러를 시작한 겁니다. 이에 지지 않고 왕좌의 게임 팬덤들도 맞불을 놓는 바람에 양 드라마의 평점이 지금 개판이 나버렸습니다. IMDB 평론 사이트의 명성 또한 금이 가버렸지요. 개인적으로는 오지만디아스가 더 훌륭한 화이고 전체 드라마로만 봐도 저는 브레이킹 배드가 더 낫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다른 작품을 까내리는 행위는 팬으로써 해서는 안되는 몰상식한 행위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이와는 다르지만 평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영화가 한편 생각나 들고 와봤습니다. 라이언 존슨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입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영화 역사상 전례 없이 평론가와 관객의 평이 갈렸던 영화이자 평론가를 향한 관객의 불신이 점화된 계기가 된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의 역사를 장식한 영화입니다. 로튼 토마토 점수를 예로 보시면 평론가 점수가 91%인데, 관객 점수가 41%입니다. 대외적으로 유명하고 영화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스타워즈 영화가 이렇게까지 평이 갈리는 일은 흔치가 않지요. 줄거리와 결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니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해석과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 영화는 이미 욕은 많이 먹었으니까, 저는 장점 위주로 리뷰해보고 원래 감독의 의도는 무엇이었을지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관객과 평론가의 평이 갈렸던 결정적 이유를 말하면요. 두 집단이 영화를 보는 시각이 달라서도 있겠지만 스타워즈라는 영화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스타워즈는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리 거대한 프랜차이즈이자 하나의 신드롬, 문화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드는 감독은 영화에 대한 자유도를 일반적으로 더 제한받게 되며 하나의 문화에 가까운 이전의 시리즈들에 어긋나지 않게 영화를 만들 일종의 의무를 가지게 되지요. 라이언 존슨 감독은 이를 조금 간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의 주축이었던 정의로운 제다이 루크를 부족한 과거 회상 장면 하나로 제자에게 살인 충동을 느끼는 괴팍한 할아버지로 만들어 버리고 만 것이지요. 이 외에도 최고지도자 스노크는 허무하게 퇴장해 버리고, 영화의 최종 악역이었던 카일로 렌은 다스베이더와는 달리 미성숙하고 어린 악당으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클리셰 비틀기와 반전은 평론가에게는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로 다가왔겠지만, 수십년간의 설정이 몇 초만에 박살나는 괴상한 경험을 한 관객에게는 도무지 좋은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우수한 평점을 준 뒤 비판에 직면했지만요. 이 영화가 본인들이 말한 것처럼 우수하다는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영화 감상평이란 주관적인 생산 활동이지만, 평론가들은 평을 쓰고 돈을 받으므로 어느 정도의 객관성과 미적 기준, 신념을 지녀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은 저도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평론가는 사실 이동진 평론가이시잖아요. 그때 그해에 너무 빠쁘셔서 이 영화를 못보았다고 말씀하셨었거든요. 근데 스타워즈는 그해에 공개된 작품 중에서 가장 볼륨이 큰 작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물론 그때 여론이 너무나 과열이 되어있어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조심스러울 수도 있지만 결국은 평론가들의 태도가 사건을 더 키웠다는 생각도 저는 조금은 있어요. 제가 당시에 평론 글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꽤 뒤졌는데 평론가님들 글이 평소와 다르게 참 안 보였었거든요. 제가 추후 이동진 평론가 님의 평론 유튜브 채널에서 평론가들은 영화를 하나의 영화로만 봤지만, 관객은 영화를 시리즈의 일부로 보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하시는 걸 본 적이 있는데요. 이런 이야기도 일리는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금은 말에 어폐가 있다고 생각해요. 당장 호평한 수많은 평론가들이 기존의 스타워즈 영화에 비해 이 영화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개인적인 라스트 제다이에 대한 평을 덧대 보자면요. 스타워즈 4편이나 5편보다는 부족하지만 이전의 <스타워즈:새로운 희망>보다는 새롭고 유익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스노크의 퇴장은 개인적으로는 납득이 되었고요. 카일로 렌은 제련된 다스 베이더의 위압감보다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은 떨림으로 다가왔어요. 스타워즈라면 빠질 수 없는 레이의 출생의 비밀을 다루면서도 출생은 아무 의미 없다는 실로 허무하면서도 관객에게 경종을 울리는 반전도 좋았습니다. 스타워즈가 평범한 오락 영화에서 해석과 깊이 있는 생각을 요하는 영화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감독이 안전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각본과 구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제국의 역습을 바라보는 야심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지나치게 엉성해서 아쉬웠지만, 그 반전 자체가 폄하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후반부 루크와 카일로 렌의 독대도 대단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면서도요. 전작처럼 안주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 형상이 뚜렷했어요. 앞에서 저보다 훨 영화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실 평론가 분들을 욕해놓고 똑같은 이야기를 하니 좀 그렇지만,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느낌을 최대한 편견없이 떠올려 보자면 그랬습니다. 이견 없이 혹평으로 모아진 부분은 핀과 티코의 분량들과 퇴보한 액션신인데 이 부분은 저도 좀 아쉬웠어요. 특히 저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스타워즈 시리즈의 팬이라 꽤 실망도 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훌륭한 점을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겠습니다. 하나는 각본의 구조입니다. 각본의 구조를 요약하자면 반전주의 그리고 실패와 성공의 이미지화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프닝과 엔딩에서 포 다메론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지요. 오프닝을 보실까요. 잘 기억이 나실런지 모르겠지만 오프닝에서는 포 다메론이 제국의 스타 드레드노트를 격침시키기 위해 수많은 폭격기들을 보냅니다. 레아는 반대하지만 포는 이를 강행하고 결국 페이지 티코는 제국의 스타 드레드노트를 부수는데 성공하지요. 그러나 연출적으로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페이지 티코를 제외한 반군의 폭격기들은 하나같이 박살이 나서 죽어가는 대원들을 비추어줄 뿐만 아니라 페이지 티코 또한 사망하고 말죠. 이때 그녀는 폭탄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스위치가 매달려있는 사다리를 발로 차게 되는데 스위치가 떨어지고 그녀가 이를 잡자 폭탄이 아래로 떨어지고 그녀와 폭격기가 함께 추락하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니까 승리의 순간을 죽음과 추락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겁니다.
이후의 각본을 세세히 들여다보시면 반군은 오프닝에 승리를 거두지만 엔딩까지 패하고 후퇴하기를 반복합니다. 따라서 보통 스타워즈 영화에서 마지막을 장식해야 할 제다이의 액션신 또한 중반에 잠깐 나오는 것으로 그치지요. 1편에서는 리암 니슨의 광선검 액션이 2편과 3편에서는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광선검 액션이 4편과 5편 6편에서는 마크 해밀의 액션이 들어있었던 공간이 비어있는 겁니다. 그 자리를 루크의 환영과 카일로 렌의 독대가 채우고 있지요. 이는 제가 <컨택트> 리뷰에서 언급드렸듯이 흥행을 목표로 하는 상업 영화에게는 상당히 위험한 선택입니다. 그럼 이런 위험한 선택을 통해 감독이 목표한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저는 반전주의라고 보는 것입니다. 결말에서 반군은 제국군에 맞서지 않고 후퇴하지만 그래서 결론적으로 실패하지만 그 후퇴는 결과적으로 수많은 생명을 구했기에 실패가 아니다. 그렇게 감독은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와도 궤를 같이 하고 있지요. 그래서 포 다메론이 마지막에 캐논을 파괴하는 것을 포기하고 스피더를 타고 자살돌격하는 반군들에게 후퇴를 명령하는 장면과 이를 무시하고 돌진하는 핀을 로즈가 막아서는 장면이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이 변화한 이후에야 그는 레아에게도 리더로 인정받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사소하지만 크레이트 행성은 흰 소금 아래에 시뻘건 적색의 미네랄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투가 시작되어 스피더가 돌진하자 흰 소금이 걷히고 적색의 미네랄이 피처럼 흩날리는데 이것도 의미심장합니다.
그리고 반전주의를 전달하기 위한 또다른 시퀀스가 그토록 비판받았던 핀과 로즈의 카지노 시퀀스입니다. 베네치오 델토로의 배역이 밝혔듯이 카지노의 무기상들은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 악질들입니다. 그들은 천국에 살고 있어요. 그들은 대부분의 무기를 제국군에 팔아치워 돈을 벌었지만 동시에 반군에게도 무기를 판매합니다. 이 카지노는 지금의 미국에 대한 은유로도 기능하지요. 현재 이란과 미국의 분쟁 그리고 이스라엘까지 생각해본다면 이 시퀀스는 완성도에 문제가 있어서 비판받을 뿐이지 다른 비판하시는 분들의 생각처럼 뺄 필요는 없다고 저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단지 여기에 동물 학대와 미래 세대로의 희망 전달까지 끼워넣어서 시퀀스와 극이 난잡해진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두번째 장점은 포스에 대한 묘사입니다. 다른 클리셰 파괴는 제가 안 좋거나 큰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었는데 이 영화의 포스에 대한 묘사는 훌륭했습니다. 그동안 시리즈에서 포스는 어떻게 묘사되었는가를 떠올려 보면 제다이가 사용하는 일종의 초능력이라고 묘사되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정신의 단련 마음의 평온과 연관이 있기도 하구요. 이 포스를 라이언 존슨은 굉장히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루크가 레이에게 포스를 가르치며 한 대사는 유명하지요. 이제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포스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무형의 기억이자 소통 능력 더 나아가 세계의 이치를 드러내는 무언가로 다시 정의됩니다.
이게 뭔 소린가. 이런 말도 한국어라고 한 건가싶은 생각이 드실 수도 있는데 제가 능력이 딸려서 저렇게밖에 못 썼구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런 장면들이 있습니다. 로즈가 죽은 언니 페이지의 유품을 망설임 없이 델토로에게 건네는 장면과 루크가 라이트세이버를 던져버리는 장면, 요다가 제다이 고서가 보관된 고목을 불태우자 루크가 경악하는 장면을 되돌려 볼까요. 이 장면들은 하나같이 포스가 죽은 언니의 유품에 담긴 것도 제다이의 포스에 대한 정보가 담긴 고서에도 라이트세이버에도 담겨져 있지 않은 것, 따라서 유형의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신에 포스는 레이와 카일로의 원격 소통에 활용되기도 하고, 루크가 환영을 조종하는데 활용되기도 합니다. 특히 결정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루크는 죽기 직전 레아에게 다가가 환영으로 만든 한의 주사위를 건넵니다. 이 주사위는 당연히 만질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겠지요. 그리고 그는 카일로 렌과의 마지막 독대에서 자신은 죽어도 렌의 아버지 한 솔로처럼 네 곁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라고 비꼬지요. 루크가 진짜로 죽고 나자 렌은 크레이트의 반군 진지로 들어오는데 바닥에는 한의 주사위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존 캐릭터 특히 루크가 렌을 살해하려는 장면과 그의 캐릭터 해석 그리고 예우를 팬들이 문제 삼는 경우가 많은데요. 당연히 그럴 수 있고 근거도 충분합니다. 마크 해밀도 못 받아들일 정도의 신랄한 루크를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크 해밀이 루크를 연기하지 않은 그 오랜 기간 동안 킬링 조크의 조커를 훌륭히 연기했듯이 루크의 캐릭터 또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변화한 성격이 저에게는 매력도 있었습니다. 렌을 살해하려는 장면도 연출과 설명만 더 잘했다면 관객에게 납득될만한 서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설명을 안했으니 의미는 없지만요. 이 모든 요소들을 요약하자면 결론적으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는 디테일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지 큰 줄기에는 문제가 없는 영화이지만 그 디테일의 문제가 스타워즈라는 세계관에게는 치명적이었던 작품입니다.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스타워즈 영화이자 가장 이질적인 스타워즈 영화.
라이언 존슨의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였습니다.
평점 3/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