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샤말란, 언브레이커블

시대를 앞서 간 코믹스의 뒤틀림

by 도연호

이제 슈퍼히어로 장르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즐겁게 본 마블 영화들은 분명 일정한 퀄리티를 보장했지만 같은 수준의 영화가 다시 나온다고 해서 전처럼 흥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그렇기에 슈퍼히어로 영화들도 변화해야 하겠습니다. 리얼리즘이나 누벨바그 영화들이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변화해 왔듯이요. 이러한 장르의 뒤틀림을 미리 이끌고 있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지난주 리뷰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델마> 혹은 슈퍼히어로 장르라고 보기는 애매하지만 연출과 주제 면에서 위대한 영화인 <버드맨>,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아이 엠 어 히어로>라는 드라마도 그랬지요. 각각 여성, 공포, 성장 그리고 블랙 코미디를 슈퍼히어로 영화에 접목시킨 느낌이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언브레이커블>은 유난히 이른 시기에 탄생한 비운의 작품입니다.




반전의 왕


나이트 샤말란은 반전 영화계의 전설인 <식스 센스>를 시작으로 여러 반전 영화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사실 샤말란의 영화를 6편을 봤는데요. 3편은 <언브레이커블>, <23 아이덴티티>, <글래스>로 이어지는 이스트레일 177 트릴로지 작품이었고요. 남은 두 편은 <올드>와 <트랩>이었는데 둘다 쫄딱 망했습니다. 저도 <올드>는 괜찮았지만 <트랩>은 솔직히 부정적인 쪽으로 이게 대체 뭐지싶은 생각은 좀 있었어요. 그럼에도 그의 영화의 매력은 반전으로만 특정 지을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제가 봤을 떄는 그의 영화의 특징은 크게 세가지 정도 있었습니다. 하나는 모두가 알다싶이 반전, 혹은 플롯의 트위스트나 이에 수반되는 촘촘한 복선이구요. 두번째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그의 정신입니다. <언브레이커블>과 <글래스>에서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만들었구요. <23 아이덴티티>에서는 아예 극의 장르 자체가 반전인 좋은 의미로 어이없는 작품도 만들었습니다. <식스 센스>에서는 소설에서나 사용되던 서술 트릭을 상당히 섬세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극에 녹여냈지요. <올드>에서도 그러한 창의력이 돋보였습니다. 마지막은 어쩌면 너무 당연할 수 있는데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흡인력이 타 감독들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히어로 영화에만 한정하면 브라이언 싱어와도 저는 꽤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완성도의 기복이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요. 그리고 <언브레이커블>도 강렬한 반전이 있고 저는 그냥 다 스포해 버릴 것이기 때문에 혹시나 보실 분이 있다면 이제 그만 읽으셔야 됩니다.




반전


<언브레이커블>은 평범한 가장 데이빗 듈리스가 초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히어로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에게는 부서지지 않는 신체와 범죄자들의 범죄를 접촉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131명이 사망한 열차 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후 자신의 신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어요. 그리고 그의 이러한 능력을 인지할 수 있도록 엘리야 프라이스가 그를 돕는데요. 엘리야는 데이빗과는 완전히 반대로 선천적으로 뼈가 약해 쉽게 뼈가 골절되는 병을 앓고 있었지요. 데이빗 듈리스가 가정의 위기와 아들과의 갈등을 이겨냄과 동시에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자신의 히어로로서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따듯함을 느끼게 되지요.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장르의 구성을 따라가는데요. 그러니까 히어로가 능력을 자각하고 첫 악당을 만나며 약점을 이겨내고 악당을 처치하는 그 구성 말입니다. 하지만 반전이 드러납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허약하고 잘 부서지는 신체를 보며 절망해 왔습니다. 어머니가 준 코믹스를 계기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히어로를 통해 찾으려고 해왔지요. 그는 자신과 정확히 반대되는 히어로를 찾기 위해 일생을 바쳐 왔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재난이 필요했지요. 엘리야는 131명이 사망한 열차 사고를 일으킨 범인이었습니다. 데이빗이 히어로임이 밝혀지자 엘리야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별명을 밝힙니다. 그의 별명은 미스터 글래스였지요.




코믹스 트위스트


이 반전에는 여러 개의 복선이 있습니다. 그 복선들은 반전을 자연스럽게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일뿐 아니라 장르의 클리셰를 뒤트는 요소이기도 하죠. 하나는 코믹스를 이용한 복선입니다. 영화에는 두개의 코믹스가 주로 강조되어 나오는데요. 첫번째는 엘리야가 어머니에게서 건네받은 첫 코믹스로 영웅과 얼룩무늬 짐승처럼 보이는 악역이 강조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데이빗이 얼룩무늬 상의를 입은 남성이 총을 가지고 있음을 파악하는 모습을 보고 데이빗이 히어로임을 확신하지요. 두번째는 엘리야가 만화가게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발견한 코믹스인데요. 이 코믹스를 보고 엘리야는 데이빗과 자신이 아치 에너미임을 확신합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악역과 히어로가 맞서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코믹스이지요. 엘리야는 항상 보라색 옷을 입고 다닙니다. 이외에도 엘리야의 눈이 강조되어 나오는 장면과 지능형 악역들의 눈은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고 있기에 강조되어 그려진다는 엘리야의 어머니의 대사도 이어집니다. 그리고 데이빗 듈리스는 피터 파커와 브루스 배너처럼 성과 이름의 앞 글자가 같습니다.


연출적으로도 복선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 장르임을 처음에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연출적으로 엘리야와 데이빗을 프레임에 가두는 장면이 반복됩니다. 인물을 프레임에 가두는 연출은 부정적이거나 불길한 면모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처음에는 마치 스릴러 영화인 것처럼 해당 연출을 사용하지만 후반부로 가보시면 이 연출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데이빗의 아들이 티비를 보는 장면과 코믹스의 네모난 프레임을 강조하는 엘리야의 대사 엘리야에게 코믹스를 건네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티비의 네모난 프레임에 갇혀 있는 연출. 이 연출들을 보시면 해당 장면들은 데이빗 듈리스와 엘리야 프라이스가 코믹스의 등장인물들임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습니다.


뒤집히고 왜곡된 화면들도 그렇습니다. 엘리야가 코믹스를 거꾸로 들고 있는 장면과 듈리스의 아들이 티비를 거꾸로 보고 있는 장면은 그들이 세상을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마침 엘리야의 말을 믿어준 유일한 사람은 듈리스의 아들이었습니다.




기타


다른 연출적이나 연기력적인 매력을 보자면 데이빗이 살인마를 죽이는 과정이 일종의 성스러운 효과와 음영으로 강조된다는 점. 그리고 우비를 마치 히어로의 코스튬처럼 사용한 창의력과 폭우가 쏟아질 때 당당히 서 있는 데이빗의 히어로로서의 매력. 그리고 현실적인 연출도 돋보입니다. 이 영화가 <다크나이트>보다 10년 앞서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시대를 한참 앞서간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데이빗이 범죄자의 범죄를 인식할 때 범죄자만 컬러로 배경과 주변인물들은 흑백으로 빚어지는 연출도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데이빗이 자신을 히어로라고 믿어왔던 아들에게 조용히 자신의 영웅담이 적힌 신문을 건네며 입모양으로 네가 맞았어라고 중얼거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도 기억에 남네요. 후속작인 <23 아이덴티티>와 <글래스>도 재미있으니 추천드립니다.


<언브레이커블>은 당시만 해도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영화도 흥행한 영화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히어로 영화라는 장르에 기념비적인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 되었습니다. 마침 <왕과 사는 남자>가 드디어 천만을 넘어버렸는데요. 이전 한국의 천만 영화인 <극한직업>에서도 <언브레이커블>을 오마주한 장면이 등장하지요.


시대를 앞서간 샤말란의 히어로 영화.


<언브레이커블>입니다.




평점 3/5점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23화요아킴 트리에, 센티멘탈 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