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미닉 Oct 31. 2017

연애상담일기 - 자존심 강한 남자친구





학생일 때 연인이 되는 기준은 비교적 단순하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고, 보고만 있어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외모로 연인이 된다. 현실의 객관적인 지표나 경제력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캠퍼스 커플이 달콤한 연애를 즐기다 학교를 벗어나게 되면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변함없는 장밋빛 사랑을 꿈꾸지만 상황이 변하면 사랑의 모습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인상적인 캠퍼스 커플이었다. 보통의 캠퍼스 커플답지 않게 오래된 연인처럼 자연스럽고 다정했다. 사소한 다툼이나 갈등도 없었다. 여자가 먼저 졸업을 했고, 백화점 엠디로 취업이 됐다. 남자는 제대 후부터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남자는 졸업한 뒤에도 1년 넘게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쯤이었다. 그녀가 나를 찾아온 건...



"점점 더 이뻐진다. 백화점에서 일해서 그런가?"


"세련되게 보여야 해요. 그것도 제 일이에요!"


"그렇구나 그것도 일이겠구나. 그것 때문에도 스트레스받겠구나."


"그럼요.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 입을 옷을 챙겨 놓고 자곤 해요. 아침에 고생하지 않게요."


"직장인이 다됐구나. 남자친구는 어때?"


"여전하죠. 언론고시 준비 중이에요."


"올 해는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이번에도 안 되면... 많이 힘들 거 같아요."


"공부하는 애인을 감당하기가 힘들지?"


"이상하죠. 학생 때는 다 같이 공부하니까 공부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멋져 보였어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졸업을 하고도 계속 공부를 하는 남자친구를 받아주기 힘들 때가 있어요. 오늘 찾아온 것도 그 문제를 상의하려 온 거예요."


"그랬구나. 어떤 점이 가장 힘드니?"


"남자친구가 자존심이 강해요. 그 자존심 때문에 힘들 때가 있어요." 


"자존심이 얼마나 강하길래?"


"학교 다닐 때도 제가 어학연수 같이 가자고 한 적이 있었어요. 무심코 한 말이었어요. 남자친구가 같이 가자며 몇 달만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함께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나서야 알았어요. 남자친구가 어학연수 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사실을요. 돈이 없으면 무시당한다고 생각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도요. 요즘도 데이트할 때 제가 밥이나 차를 산다고 하면 지갑도 못 열게 해요."


"경제적 능력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맞아요. 그래서 가끔 눈치가 보여요."


"눈치까지 보이니? 언제 눈치가 보이는데?"


"그 사람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먹는 것도 먹을 수 없고, 여행 가자는 말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서요. 내가 낸다고 하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어요. 그런 게 신경 쓰여서 말 한마디 하는 게 눈치가 보여요."


"남자친구도 힘들겠구나. 그 친구 말은 안 해도 스트레스받고 있을 거야."


"어쩔 땐 서로가 스트레스받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둘 다 학생일 때는 몰랐어요. 한 사람이 먼저 취업을 한 게 불편한 일이 될 줄은 몰랐어요. 제가 취업했을 때 저보다 더 기뻐해 준 것도 남자친구였는데... 저희가 사귄 지 벌써 5년이 넘었어요. 그동안 사소한 일로 다투거나 싸운 적이 없었어요. 사랑하는 마음이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만 알았는데 요즘은 쉽지가 않아요."


"뭐가 가장 걱정되니?"


"남자친구가 취업할 때까지 계속 이런 상태가 되는 게 가장 걱정스러워요."


"언론고시를 준비한다면 당연히 큰 언론사에 가고 싶겠네?"


"아무래도 이름 있는 곳에 취업하고 싶은 것 같아요."


"작은 곳은 리스트에도 없는 건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알지도 못하는 곳에 들어가면 남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다고..."


"그것도 자존심의 문제구나."


"저는 꼭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누구나 다 좋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처음부터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누구나 다 좋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


"알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사랑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잖아요. 며칠 전에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다가 저도 모르게 친구가 취업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도 원하는 직장에 취직했다는 소식이었는데 남자친구 표정이 굳어 버렸어요. 별 뜻 없이 한 말이었는데... 자존심 상했나 봐요."


"자존심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지금은 취업 준비하느라고 예민해져서 일거야."


"군대에 갔을 때 기다리는 것보다 더 힘든 거 같아요."


"세상에 쉬운 일이 없으니까."


"전 어떻게 하면 되죠?"


"넌 남자친구랑 어떻게 하고 싶니?"


"캠퍼스 커플일 때는 막연하게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평생을 함께 할 짝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잘 모르겠어요."


"지금도 잘해 보고 싶은 거지?"


"당연하죠. 잘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예전처럼 안 돼서 문제예요."


"사람이 어떻게 항상 똑같을 순 없잖아. 상황이 바뀌면 마음도 달라지기 마련이야.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지금은 이런 마음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면 되는 거야."


"지금 제 마음이 어떤 건데요?"


"지금 네 마음은 남자친구가 빨리 언론고시에 합격하길 바라는 거지. 그것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언론사에 합격하는 거고. 그래서 너에게 맛있는 것도 척척 사주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언제든지 여행도 가는 거지. 그래서 학생 때처럼 좋은 커플로 행복해지고 싶은 게 네 마음이지?"


"틀리다고 말은 못 하지만..."


"남자친구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하지? 게다가 자존심도 센 남자니까 그 자존심으로 해내길 바라고 있을 테고."


"맞아요. 인정해요. 그 자존심 때문이라도 더 빨리 더 좋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그런 제가 잘못된 건 가요?"


"아니. 그럴 수 있어. 다만 더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아까 네가 말 한대로 지금은 내가 이런 마음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면 돼."


"지금 맞는 행동이 뭐죠?"


"기대하는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해. 알게 모르게 기대하는 게 많았고 기다리는 게 힘들었다고."


"그럼 저에게 실망할 거예요..."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고 응원하면 되지. 그게 실망할 문제도 미안한 것도 아니잖아. 남자친구도 힘들고 부담스럽겠지만 이 정도의 문제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나중엔 더 힘들어져."


"모든 걸 솔직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잖아요."


"나도 동의해. 모든 걸 솔직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단지 솔직하지 못한 것 때문에 관계가 멀어지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야. 마음에 쌓아두면 분명히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되고 말 거야. 지금이라도 이야기해서 남자친구가 네 마음을 알게 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야. 그리고 자존심을 살려주려고 남자친구가 돈 쓰게 놔두는 것도 방식을 바꿔보면 좋을 거 같아. 기념일을 선포하면서 한턱내서나, 가끔은 네가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해서 데이트할 수도 있잖아."


"둘 다 취업을 해도 다른 문제가 생기겠죠?"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겠지. 문제가 안 생기길 바라는 것보다 문제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도 않는 것처럼."


"맞아요. 실은 캠퍼스 커플일 때 거의 싸우지 않았던 이유도 제가 솔직하지 못해서였어요. 싫은 게 있어도 마음에 담아두는 편이라서요. 쓸데없이 문제를 만들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계속 마음에 담아두다 보니까 나쁜 감정이 산처럼 쌓여서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지금이라도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말처럼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어.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을 전부 말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래도 마음을 표현해야 할 땐 하지 못하면 큰 짐이 될 거야. 당장은 힘들 더라도 네 마음을 꼭 전해. 그럼 전보다 더 좋은 연인이 될 거야."


"저는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나 봐요. 연애할 때 아무 탈이 없어야 좋은 관계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제부터 그러지 말아야겠어요. 어떤 면에선 그 알량한 자존심은 남자친구보다 제가 더 심했던 것 같아요."


"적당한 자존심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줘. 과하지만 않으면 아주 좋은 거야. 적당한 자존심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줄 수 있으니까 좋다고 생각해."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젠 그렇게 될 거야! 조금만 노력하면!"



※ 이 매거진의 모든 글을 보려면 #연애상담일기 를 검색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연애상담일기 - 빚 있는 남자의 프러포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