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리정원(2017)
영화 <유리정원>의 재연(문근영)은 한쪽 다리가 12살 이후로 자라지 않아 가늘고 짧은 다리를 지닌 장애인입니다. 그녀는 생명공학도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인간을 연구하죠.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연인이자 스승인 정교수(서태화)와 후배(박지수)에게 연구실적을 모두 빼앗깁니다.
자신이 믿었던 정교수에게 배신당하고 재연은 연구실을 나와 어린 시절 살던 숲으로 들어갑니다. 숲에서 연구를 계속하던 재연에게 지훈(김태훈)이 찾아옵니다. 지훈은 재연이 살던 집에 새로 이사 온 남자로 그녀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지훈은 그녀의 삶을 훔쳐보고 초록의 피가 흐르는 여자에 대한 소설을 연재해 순식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영화 <유리정원>의 재연(문근영)이 사랑하는 사람인 정교수(서태화)를 대하는 태도와 행동을 보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재연은 장애를 가진 자신에게 보폭을 맞춰줬던 정교수를 사랑합니다. 그와 후배가 연구실적을 가로채도 크게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정교수가 자신을 배신하고 후배와 연인이 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를 더 사랑합니다. 정말 바보 같죠? 대체 왜 그럴까요? 그녀는 집착이 강한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집착과 사랑을 혼동합니다. 사랑은 소유하려 하지 않지만 집착은 소유하려 합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자유롭지만 집착은 모든 것이 일방통행입니다. 서로 소통하지 않습니다.
영화 <유리정원>의 재연을 통해 집착이 강한 여자의 특징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재연(문근영)에게 정교수(서태화)가 첫사랑입니다. 아버지 이후로는 어떤 남자에게도 호감을 주지 않다가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남자인 겁니다. 재연은 정교수를 만나기 전엔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영화 <유리정원>의 재연은 장애를 가진 여자입니다. 한쪽 다리가 12살 이후로 자라지 않아 절룩거리며 걷습니다. 그런 자신과 보폭을 맞춰준 정교수에게 그녀는 마음을 줍니다.
집착이 강하다고 해서 무작정 집착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내가 원하는 느낌을 주는 사람과 만나게 됐을 때 강하게 작동하게 됩니다. 재연처럼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이상형을 만나게 되는 경우겠죠.
재연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어서 아버지와 같은 남자가 이상형이었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정교수와 같은 남자죠. 게다가 그는 처음으로 내 보폭에 맞춰 걸어준 남자였습니다. 그녀가 가진 이상형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됐기에 그에게 마음을 준 것입니다.
특정 조건과 느낌의 남자를 만나야 연애의 감정이 생기기에 연애의 경험이 비교적 적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집착하게 되는 플러스 요인 됩니다. 이런 조건의 남자를 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 남자가 나를 떠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정교수(서태화)와 후배(박지수)는 재연(문근영)의 연구실적을 가로챕니다. 그럼에도 재연은 자신의 연구를 도용한 것에 대해 대응하지 않습니다. 모든 걸 정리하고 숲으로 내려오는 것이 다였죠.
굉장히 수동적인 태도입니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그녀의 태도는 무명작가 지훈(김태훈)과의 관계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그녀의 다이어리를 훔쳐서, 그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설을 계속 써 달라"라고 말합니다.
소설 속에서 초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 까닭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신비롭게 바라보고 우월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좋았던 겁니다.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수동적인 자세인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태도입니다.
재연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지훈(김태훈)과 연인이 되는 환상에 빠질 정도로 누구에 의지하기만을 바랍니다.
정교수는 재연의 연구실적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연구실적을 함께 가로챈 여자와 바람을 피웁니다. 정교수의 집에 방문한 재연이 그 장면을 목격합니다. 당장 머리채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재연은 정교수와 정사를 나누고 있는 여자의 하이힐을 신고 마당을 걷습니다.
하이힐을 신고 위태롭게 걷던 재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나도 저 여자처럼 하이힐을 신고 다닐 수 있는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다였을 겁니다. 내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여자를 부러워하는 재연의 심리 속에 열등감이 가득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은 재연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정교수뿐이었습니다. 재연이 가진 열등감의 뿌리는 부모님의 부재와 가족의 결핍이었습니다.
재연은 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했던 남자가 자신을 버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집착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개인차가 있을 뿐 누구나 집착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를 꼭 봐야 직성이 풀리고, 통장의 잔고에 신경 쓰는 것처럼 우리는 일상적으로 집착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뭐든 과하면 부작용이 나죠. 집착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유리정원>의 재연처럼 비극이 생기기도 하고요. 집착하는 마음이 생길 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봐야 합니다. 나로 인해 상대가 괴로워하고 있다면 좋은 관계가 되기 힘드니까요.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창녕 우포늪 숲길을 걸으면 집착도 사라질 것 같은데, 그 숲이 집착과 비극의 장소가 되다니 아니러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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