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능선과 운해 (4) 마지막
얼추 완성이 되어가는 것 같은 단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색을 추가로 더했더니 그림에 깊이가 더해졌다. 혹시 그 색이 눈에 보이신다면? (박수를 드립니다! 첨가한 색은 바로, 보라색입니다.) 구름에 슬쩍 보라색을 얹었다. 산등성이에도 조금씩 보라색을 얹었다. 몇 화 전에 썼던 '보이지 않는 색을 섞는 이유'와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눈에 보이는 색만 쓰려고 해서 그림이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그다음, 어려움을 느꼈던 것은 가장 앞에 보이는 나무다. 소나무와 소나무가 아닌 나무들이 섞여있는데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회색처럼 보이는 멀리 있는 나무를 빽빽하게 찍고, 그 보다 앞에 보이는 나무를 짙게 찍어 표현하라고 했다. 잘 되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이 오셔서 나무를 더 나무답게 고쳐주셨다. 내가 그린 붓의 터칭은 너무 소심했다. 선생님이 오셔서 손을 보니 붓이 굵기와 꺾임이 정말 노련했다. 이건 내가 지금 당장 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구름을 표현하라고 하셨다. 역시 선생님은 바로 노하우를 전수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애를 먹었다. 나름대로 하얀색처럼 보이지만 절대 하얀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뒷 배경과 비슷한 하얀색을 만들어 붙여 묻혀 색을 펼쳤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이미 칠한 물감을 흰색으로 긁어내는 것처럼 되었다.
다시 했다. 마찬가지였다.
결국 마무리 시간쯤 되어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의 과감한 붓놀림이자 색 놀림을 사진으로 찍었다. 선생님은 흰색을 바로 올리지 않았다. 흰색 구름이 표현되기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섞어 색을 만들었던 색을 섞지 않은 채로 그 자리를 대충 찾아 올렸다. (노란색을 먼저 보시라) 그다음에 하얀색 또는 하늘색을 바로 캔버스에 올려 도화지 위에서 색을 섞기 시작했다. 유화니까 가능한 부분일 테다. 그렇게 물감이 도화지(캔버스) 위에서 만나서 경계를 풀어내니 색이 더욱 넓게 펼쳐져 하늘이 넓게 표현됐다.
충분히 해의 변화에 따른 하늘색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 뒤, 징크 화이트를 조금 올려 펴바르니 구름은 물론, 바람까지 나타낼 수 있었다. 내가 이것저것 겨우 색을 맞추어 표현했다고 생각했던 물감 낱개를 캔버스에 올릴 때 조금 놀랐다.
과감함이 필요하다.
빽붓으로 뭐 크게 그림을 그리는 과감함이 아니고, 색 속에서 과감한 순간을 마주하니 근래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고자 마음먹은 일이 떠올랐다. 나는 이 후퇴를 결심하기까지 아주 오랜 고민을 해왔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결정 하나로 일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올린 레몬 옐로가 마치 나의 작지만 큰 결정처럼 보였다.
아. 비로소 이 그림이 마무리되었다. F6 사이즈 캔버스라 피사체를 담기엔 좀 작은 감이 있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역시나. 멀리서 보자. 그러면 더 여유롭게 그림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