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케이크 하나로 끝났습니다

by 도요

그를 차단하면서, 귀중한 사료가 될 카톡 대화와 사진들이 날아간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래서 기억을 뒤져 이별 전후의 생존 기록을 작성해야 한다.

이 글의 주조연급인 '그'에게 닉네임을 하나 붙여주고 이 글을 쓸까 했으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만 머릿속에 떠올라서 그냥 '그'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이별은 갑작스레 찾아오지 않는다.

공기처럼 일상에, 내 주변에, 먼지처럼 떠다니다 밤이 되면 콧속으로 들어와 외로움을 상기시켰고, 왠지 모를 불안을 부추겼다.

옆에 그가 누워 있는 밤에도 나는 등을 돌리고 울었다. "우리 좀 더 노력해 보자. 잘해보자." 설득해도 말로만 알았다 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의 어떤 행동도 개선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는 날이 갈수록 더 무심해졌다.

당혹스러웠다. 내가 본 그의 첫 모습은 안정적이고 단단하며, 내실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에게는 핑계가 조금씩 늘어 갔다. 그 와중에도 가끔은 열과 성을 다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본인이 얼마나 힘든지를 훨씬 더 많이 이야기하며 생색도 잊지 않았다.

'아, 요즘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구나. 그런데도 나를 이렇게 아껴주다니.' 언제나 상대에게 바라는 게 많지 않은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를 살뜰히 챙겼다.


가게 개업을 하루 앞두고 그의 첫 생일을 맞이했다. 주말도 밤도 없이 오픈 준비에 몰두하고 있던 시기라, 나답지 않게 생일 케이크나 카드를 준비할 정신이 없었던 것이 트러블의 계기가 됐다.

생일을 챙길 마음의 여유는 없었고, 비가 오는 날 홍대에서 대충 점심을 먹고 들어가자 그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케이크와 초를 사서 차에 탔고, 그는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불만이 많았다. '이건 내 잘못이니까, 충분히 서운할 수 있어.'

하지만 그 뒤로도 조금 불만이 쌓이면, 예의 케이크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이 정도로 잘못했나?' 싶었지만, 그가 서운해하니 일단 사과를 해야만 했다.

평상시의 나였다면 이렇게 진 빠지는 관계는 진작 포기했을 텐데, 그는 희한하게도 사람을 잘 몰아붙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내가 사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본인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정답을 정해놓은 채 몇 시간이고 마음이 풀릴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내가 지치면, "너 지금 긍정적으로 풀어나갈 생각 있어? 네가 잘못한 건데 나만 긍정적으로 풀어보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라고 했다.


돌아보니 그건 가스라이팅이었지만, 막상 닥쳤을 땐 인지하기 쉽지 않았다. 왜냐면 상대방은 내 언행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고, 서로 마음의 응어리를 헤아리는 것이 연인 된 도리니까.

하지만 격한 감정의 여파로, 어디까지가 '도리'인지 경계가 종종 희미해졌다.


그 뒤로도 우리의 싸움은 항상 같은 패턴이었다.

내가 별 의미 없이 던진 말에 "너무 서운하다", "화가 난다"며 싸움을 걸어왔다. 나는 새벽 3시까지든 4시까지든 해명하고, 설명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빌어야 했다.

이상했다. 난 어린 나이도 아니고, 연애도 할 만큼 해봤는데 "말을 서운하게 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없었다. 그냥 이 사람이 좀 더 섬세한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게 가장 편했다.


연애 상대가 갑자기 돌변한다면, 당연히 누구든 버텨낼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 나를 침식했다. 우리는 웃고 떠들며 미래를 꿈꿨지만, 그 예쁜 말들 속에서 내 양말이 젖어가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돌변하지 않았다. 천천히 회피의 늪으로 나를 끌어내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