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매몰비용이 존재한다니

by 도요

이별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고구마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읽어도 "진작에 찼어야지 뭐 한다고 끼고 살았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전편에 이어 이번 회를 읽는 당신 또한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하지만 실제 인생은 웹소설 같은 사이다 전개로 펼쳐지지 않는다. 또한, 감정의 농도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처음 만난 그는 다 허물어져가는 경차에서 내리며 환히 웃었다. 키도 크고 거구였던 그가, 보통의 남자라면 피하고 싶을 장면을 연출하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게 인상 깊었다.

미리 받아봤던 사진 속 그는 눈에 띌 만큼 출중한 미남자였고, 현실의 그는 30kg가량 살이 붙어 이목구비가 완전히 바뀐 상태였다. 같은 사람임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정도의 뉘앙스만이 남아 있었다.


바보 같을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오는 그를 보며, 처음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사진이랑 너무 다르잖아?" 하는 약간의 실망과, 그리고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라는 약간의 안도감.

사진만큼 매력적인 외모는 아니었어도, 소탈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사회 초년생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차를 타고 있다며, 직업에 애착도 있고, 큰돈은 못 벌어도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허세 없이 성실한 사람이라니— 돈이 많은 것보다 더 귀한 자산처럼 느껴졌다. (물론, 벌어둔 돈도 성실함을 증명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유머러스하고, 본인의 치부를 솔직히 드러낼 줄 아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는 1년 정도 만나보고 결혼을 하자고 했다. 당황스러울 만큼 직구였다.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일렀고, 나는 결혼에 큰 뜻은 없었으니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생을 함께하고 싶을 만한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고민해 볼까 하는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에게 그렇게 말하자, 본인이 그 사람이 되겠다며 자신이 일하는 곳 전화번호까지 알려주며 믿어보라 했다.


액수는 크지 않아도 돈도 알차게 모았다고 했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는 게 그의 평생의 꿈이라면서.

신선한 방식의 소통이었다. 그래, 한번 믿어 봅시다. 나는 계약을 마무리 짓는 사업가인 양 악수를 청했고, 그는 "만나보자는데 악수를 하자는 여자는 처음 본다"며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작년 겨울.

무심한 그가 웬일로 밖에 나가서 술 한잔 하자고 하더니, 곱창전골에 소주 한잔을 앞에 두고 오랜 시간 숨겨온 '진실'을 고백했다. 돈을 모은 것도, 소형빌라를 산 것도 거짓말이지만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의 말이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어 반복해 캐물은 결과, 그가 내게 말한 모든 것 — 직업, 재산, 신분 — 모든 것이 사실과 허구를 교묘히 짜집기한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평소 당당하게 나를 몰아붙이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이, 곧 쥐구멍에 들어갈 것 같았다. 그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어쩐지, 1년이 지나면 결혼을 하자더니 3년간 미룬 이유가 이거였구나.

시기가 묘했다. 결혼을 진행하기로 하고, 그의 가족들을 만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나와 대화를 해본 그의 가족들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그를 책망한 것이다.


그는 본인의 의지로 거짓을 바로잡은 것조차 아니었다. 모래성에 쌓아 올린 신뢰가 순식간에 무너지자, 내 안의 무언가가 삐걱였다.

그에겐 연쇄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을 기회가 있었다. 빠져나오는 길이 분명히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기다려, "아무것도 없는 나지만, 앞으로 정신 차리고 최선을 다할 테니 함께해 주면 안 되겠냐"라고 물었다.

미련하게, 그러겠다고 했다.


내 모든 심연을 수용할 테니, 같이 행복한 미래를 가꾸자 말한 그였다. 우릴 빼닮은 아이를 둘 낳아 행복하게 살자던 그의 약속이 전부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할 자신이 없었다.

후퇴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를 사람 구실 하게 만들어야, 그 옆에서 외롭게 참아낸 내 시간이 가치 있을 것 같았다.


그를 버리면 그에게 헌신한 내 인생의 3년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게 또, 퇴각 찬스를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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