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경의 아이가 아니었지만》

3. 아큐(阿Q)의 골목

by 도요

아침에 여관 문을 나서자, 전날 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비에 젖어 조용하던 골목이 하룻밤 사이 시장통으로 변해 있었다. 루쉰의 《아큐정전》이 겹쳐 보이는 회색의 돌벽과 낡은 기와지붕 아래, 베이징의 날것 그대로의 삶이 꿈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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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예딴(茶叶蛋) 파는 아줌마가 쉴 새 없이 호객하는 소리, 그릇에 찰랑찰랑 담긴 쏸라펀(酸辣粉)의 투명하고 탱글한 면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 리어카. 흙먼지 이는 바닥에 늘어놓인 진기한 과일들에 넋을 놓고 있자면, 자전거 벨 소리가 날카롭게 등 뒤를 가르고 지나갔다. 낯선 냄새와 소리들이 사방에서 덮쳐왔지만, 기묘하게도 이질적이지 않았다.


그 시장통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들면, 그곳이 따자란(大栅栏)이었다. 천안문 광장 맞은편, 치엔먼(前门) 코앞에 자리한 거리였다.



골목 안 시장통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짜 무대'였다면, 따자란은 황제의 위엄에 걸맞은 화려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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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자란 거리로 접어들자, 오른편에 동인당(同仁堂)이 나타났다. 회색 벽 위로 붉은 등롱이 줄지어 걸려 있었고, 검은 바탕에 금색으로 새긴 현판의 한자 세 글자가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금 더 걸으면, 장이위안(张一元)의 종업원이 차 시음을 권했다. 거우불리(狗不理) 만두집 앞에는, 만두를 진상받는 서태후의 마네킹이 세워져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열두 살 아이에게 그런 역사는 치파오 가게에 색색이 걸린 매끄러운 실크나, 햇빛에 보석처럼 빛나는 빙탕후루보다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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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우불리를 지나 따자란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좌판들이 늘어서 있었다. 오리엔탈풍의 싸구려 부채와 비녀, 공산당 배지, 그리고 엄지손가락 길이의 소책자들. 마오쩌둥(毛澤東)의 어록을 담은 그 수첩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살 수 있는 흔한 기념품이었다. 그 수첩이 궁금했지만, 아이는 좌판에 선뜻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소설 속에서만 보았던 혁명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이걸 한국에 가져가다 들키면 큰일 나는 것 아닐까?' 하는 공포에, 애써 발걸음을 돌렸다. 붉은색의 잔상이 오래 남았다.



† 당시 촬영본이 없는 경우, 동일 장소에서 촬영한 2007년 사진으로 대신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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