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 오는 밤, 계란볶음밥 그리고 낡은 여관
배 위의 낭만은 항구에 발을 내딛는 즉시 휘발되었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러닝셔츠를 가슴팍까지 걷어 올린 아저씨들이 사방에서 연기를 뿜어댔다. 이방인을 발견하자 떼로 몰려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끈질긴 호객 행위를 뚫고, 우리는 겨우 베이징역까지 가는 작은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낡은 차 안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낯선 도시의 거친 풍경을 지나며, 아이는 비로소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왔음을 실감했다.
베이징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젖은 붉은 네온사인이 허기진 아이를 맞이했다. 숙소를 찾기에 앞서 배를 먼저 채워야 했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어, 우리는 눈앞의 식당으로 뛰어들었다.
메뉴판의 그림을 보고 주문하면 되리라는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짧은 영어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중국어를 겨우 두세 달 배운 게 전부였건만, 모두의 눈이 아이를 향했다. 빼곡한 한자들 사이 간신히 한 메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지단차오판(鸡蛋炒饭). 계란볶음밥이었다.
우리는 계란볶음밥 한 접시를 둘러싸고 말없이 한 숟갈을 떴다. 반달 숟가락이 지나간 자리에는 기름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눈을 맞추고, 이내 밥을 씹었다. 익숙지 않은 땅콩기름 냄새가 후각을 강타했다. 결국 세 숟갈도 뜨지 못한 채, 연거푸 따뜻한 재스민차를 들이켰다. 중국 사람들이 이래서 차를 많이 마시나. 중국 음식은 다 이렇게 느끼한 건가. 일주일간 대체 뭘 먹고 지내야 하지. 머릿속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엄마가 수첩에 빼곡히 적어온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우리의 숙소, "고려려관". 산 넘고 물 건너 도착한 중국 배낭여행의 성지였다. 조선족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기차표도 잡아주고 길도 알려준다는 말에, 엄마는 이곳을 점찍어 두었던 것 같았다. 여관의 일층 식당에선 김치찌개, 연길랭면 같은 친숙한 음식도 팔았다. 중국 음식이 입에 안 맞더라도 보험을 들어 둔 셈이었다.
청나라 말 기생집으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한 낡은 여관이었다. 식당을 지나 뒷문으로 나가면 좁은 중정을 가운데 두고 방들이 마주 보는 쓰허위엔(四合院) 형식의 내부가 펼쳐졌다.
서울에서 온 아이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허름한 방이었다. 시멘트 바닥과 딱딱해 보이는 침대, 비취색 벽의 조화가 살풍경했다. 화장실과 샤워실 한 칸을 다른 투숙객 모두와 공유해야 하는 불편도 컸다. 그런데 왜였을까. 불쾌함보다 묘한 기대감이 몇 배는 크게 다가왔다.
집을 나선 지 서른 시간도 훌쩍 넘긴 피로 속에서, 아이는 이내 이 도시의 호흡에 맞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