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파도 위의 아이
밤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어둡고 깊었다. 열두 살의 아이는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느꼈다. 나고 자란 작은 반도, 실상은 섬이나 다름없는 나라를 떠나 인생 처음으로 월경(越境) 을 앞둔 설렘이 작은 몸을 가득 채웠다.
인천에서 중국 톈진까지는 승선 시간만 스물네 시간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그러나 그 길이 멀다 느끼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이 나를 반기리라. 무엇이 펼쳐져 있을지라도.
처음 보는 거대한 여객선에서는 금속과 기름 냄새가 났다. 대기실을 벗어나 실제로 마주한 배는 상상보다 훨씬 거대했고, 이유 모를 위압감마저 풍겼다.
보딩패스에 쓰인 자리를 찾아 들어간 이코노미칸, 이른바 '꼴등칸'은 낡은 호스텔을 연상케 하는 이층 침대 구조였다. 각국의 가난한 여행자들과 비용을 아끼려는 보따리장수들이 뒤섞여 칸을 채웠다.
과테말라에서 온 젊은 여행객, 이미 슬리퍼로 갈아 신고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묘한 활기가 피어올랐다.
그 사이를 비집고, 셋은 분주히 배정된 자리를 찾았다. 이층 침대를 두고 동생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커튼을 치면 그 안은 똑같이 아늑했다. 똑바로 앉기도 좁은 침대칸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출항하는 선박의 낮은 진동 속에서, 아이는 설명할 수 없는 안도를 느꼈다.
모두 저마다의 목적지를 가지고, 배는 천천히 나아갔다.
배에서는 하루 세 번 식사가 나왔지만, 허기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한두 번은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공용 TV가 유일한 오락거리이던 배 안에서, 아이는 기회만 나면 갑판으로 향했다. 와이파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2001년이었다.
물비린내 가득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바라보는 바다는 놀랍도록 매혹적이었다. 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하얀 거품,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평선, 시간이 흐르며 점점 푸른빛에서 노란빛으로 물드는 바다의 색깔. 중국이 이 바다를 왜 '황해(黃海)'라 부르는지, 아이는 이내 깨달았다.
저녁 일곱 시면 갑판 문을 닫는다는 선내방송이 들려왔다. 바다를 한번 더 눈에 담고 싶었다. 가족들은 바다는 충분히 봤다며 조심히 다녀오라고만 했다.
여섯 시 반, 갑판으로 뛰어가 문을 열고 짭짤한 바닷내음을 깊이 들이켰다. 도시라면 사방이 밝았겠지만, 이 바다에는 배 외에 어떤 빛도 없었다. 바다와 나, 둘만이 존재하는 시공간 같았다. 거대한 선박이 캄캄한 바닷물을 가르는 소리가 주변을 메웠다. 청새치를 잡던 어떤 노인의 이야기를 떠올렸고, 모비 딕을 떠올렸다.
칠흑 같은 바다도, 곧 마주할 미지의 땅도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모험은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