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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야 Nov 03. 2023

노르웨이 문화 적응기: 휘청거리다 깨달은 것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언어 그리고 새로운 문화까지.

타국을 떠나 타지에서 해외 살이중인 이민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언어 배움 외에 문화 적응에 따른 불편한 시기를 거칠 것이다. 


다른 문화가 가지고 오는 색다름은 여행객에게 달콤함, 신선함을 준다. 장기적으로 거주하게 된다면 한두 달의 동화 같은 시간이 끝나고 나면 눈앞에 있는 다른 문화가 하나둘 들어온다. 다름에 마주하면, 불편하고 답답하고 대부분 이유를 알 수 없고 해답 또한 뚜렷하지 않는 악보의 도돌이표를 돌고 돈다. 


초기 노르웨이 생활을 하며 느낀 그들의 문화를 표현하자면 침묵 속 차가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문화를 겪으며 혼란스러움을 느낀 나의 자아는 한 발을 더 떼봐야 할지 아니면 한 발을 물러서야 할지 알 수가 없었고 노르웨이 문화는 나를 받아들일지 말 지 끊임없이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일상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경험들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진절머리가 나기도 했다. 한국에서 살아오던 방식은 노르웨이에서는 아니라며 통통 튕겨나갔다.  


"그정도라고?" 궁금을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내가 개인적으로 어떤 경험을 했는 지 한가지를 뽑아 설명해보자면, 한국에서는 슈퍼마켓에서 무언가를 잘못 결제할 때 바로 직전 취소 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환불이 어렵지 않게 아주 간편하게 진행 되죠? 카드사 환불로 한달이상 기다려본 적 없으시죠?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한번도 꼬치꼬치 질문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진행됐던 일들이 노르웨이에서는 아주 상반되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날, 노르웨이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국 카드로 결제했는 데 모니터에 오류 메시지가 떴고 결제 영수증이 나오지 않았지만 해당 카드 어플에서 결제 완료 알림을 받게 됐다. 마트 직원 분에게 어플 알림을 보여주며 상황 설명을 했더니, 직원 분께서 해당 주문 건은 자동 취소가 될 거고 일단은 재결제를 해야 한다는 답을 주었다. 나의 촉은 뭔가 싸했으나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어쩌겠나 싶어 일단 재결제를 하고 그럼 언제 환불이 이뤄지는지 물었으나 한 1-2주 소요된다고 답하고 끝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결제 오류 났다는 증거도 없는 데 나중에 결제 취소가 안되면 이중 결제를 하게 되는 거니 영수증이라도 달라고 요청했고 그 직원분이 한 종이에 해당 상황에 대한 짧은 요약과 서명한 뒤, 나에게 종이를 건네며 "2주 뒤에 환불 안될 경우 다시 한번 방문해 주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2주 뒤에 자동결제 취소 및 환불은 당연히 안 됐고 이중결제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다시 해당 슈퍼마켓을 찾아가 종이를 건네 이런이런 상황이 있었음을 얘기하자, 이 상황을 처음 접한 다른 마트 직원 분은 "잠시만요"라며 살아지더니, 20분 뒤에 나에게 이메일이 적힌 한 종이를 건네며 "동료한테 물어보니 여기로 문의하라고 하네요."라며 슈퍼마켓 고객센터 이메일을 건넸다.


이메일로 해당 상황을 재차 설명을 해야 하는 점과 왜 그럼 진작에 이 이메일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건가라는 짜증이 밀려왔다. 이중결제된 내역 첨부와 또 슈퍼마켓 직원이 자기 서명과 함께 해당 상황을 적은 종이까지 첨부해서 이메일을 발송했고 며칠 후 "무슨 오류인지 모르겠지만 자동 결제 취소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계좌번호로 이체해 드릴게요."라며 답장이 왔다. 


당시 노르웨이 계좌번호가 없던 나는 한국은행 계좌번호를 전달하며 해외 송금 수수료를 자사에서 부담하길 요청한다고 전했다. 그 후 뭐 어떻게 진행했다는 지의 답장은 받아볼 수 없었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되어서야 해당 금액이 나의 한국은행 통장으로 입금됐다. 그렇게 장장 약 한 달이란 기간을 걸쳐 환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당시 나는 화가 굉장히 많이 치밀어 올랐는데 그 이유로는 한국은 문제 해결을 적극 도와주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는 똑 부러지게 해결책을 아는 사람도 없고 또 문제 해결에 도움보다는 문제를 겪고 있는 고객이 직접 셀프로 해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운이 안 좋게 일어났던 단순한 1회 경험이 아닌 이러한 비슷한 해결 방식은 노르웨이 곳곳에 깔려있다.



왜 그럴까?라고 생각해보니, 한국은 경쟁 사회로 일터에 중요한 존재, 인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하고 남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암묵적으로 깔려있고 역할에 따른 사회적인 책임이 뚜렷한 반면, 노르웨이는 그렇지 않다. 상사라고 해서 하사라고 해서 엄청나게 다른 점은 없다. 다만 상사에게 전반적인 책임이 주어지지만 결국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회사 문제/책임이지 개인의 문제 또는 책임으로 경각심을 일으킬 만큼 다가오지 않는다. 같은 직위로 일한다는 가정하에 나이가 많든 적든 더 책임이 주어지거나 적어지는 경우도 없다. 


여담) 나도 노르웨이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 한 것이 아니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더 책임이 주어질까 봐, 맡아야 하는 게 싫어서 승진 대신 현지 위치에 머무르려는 이들도 종종 있기도 했다. 한국이였으면 "야 너 그 나이 먹도록 아직도 사원이야? / 거기 일한지가 몇년인데 아직도?"라고 누군가의 의아함을 듣거나 좀 더 노력해보라는 발전 없는 삶에 대해 꾸짖음도 어렵지 않게 당할 수도 있겠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이런 말과 반응이 전혀 없다. 부럽다고 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해당 얘기는 여기서 생략.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하게 글로 풀어볼게요. 


그렇게 나는 노르웨이에서의 일 년 동안은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는 데 여기는 왜 이렇게 하지? 여기는 왜 이렇지?" 하는 감정의 휘청거림과 불편함을 지독히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들이 어느 순간 나에게 전환점을 만들어냈는 데, 즉 노르웨이 문화뿐만 아닌 노르웨이에 거주하고 있는 자국민들로부터 접하는 한국문화에서도 언제나 늘 편안함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다른 외국인들이 갖고 있는 그들만의 문화 또한 나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그 깨우침이 자아가 가지고 있던 고집을 낮추고 평온함을 일깨워주는 레슨이 된 것 같다. 그리하여 예전보다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내가 자라온 문화와 다른 문화의 어떤 부분에 대해 불편함이 느껴지면 나는 아래와 같이 나 자신에게 말하기 시작하며 그 순간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나 또한 나 자신을 완벽하게 사랑하지 못했던 것처럼,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회 그리고 한국 문화를 백 프로 만족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생김새, 사고방식, 자라온 문화는 다르지만 붉은색의 피, 신체구조를 갖추고 있는 나와 같은 인간일 뿐이다. 내가 모든 사람들을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이 나라 문화의 모든 것에 매력을 느끼고 좋아할 수 없다.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좋은 점과 안 좋은 점 중 어떤 것에 더 집중하고 있었는가? 안 좋은 점을 모르는 체할 수 없지만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미덕, 그리고 좋은 점을 더 좋게 바라봐주고 왜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자. 



문화던 인간관계던 결국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것,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 지에 대한 폭이 커짐에 따라 자연스레 고요한 안정감이 든든하게 따라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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