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무엇을 만들지'만 고민했을까?

BOLD Seoul 2025 후기

by 김도윤
KakaoTalk_Photo_2025-12-19-02-00-14 001.jpeg


운 좋게 티켓을 얻어 방문하게 된 BOLD Seoul 2025. 갑작스러운 미팅 일정 때문에 참석이 많이 늦어졌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막판에 도착한 Vision Hall에서 예상치 못한 큰 수확을 얻었다. 바로 에이블리(ABLY) 강석훈 대표님의 세션이다.


우선 강연을 들으며 가장 놀랐던 지점은 에이블리의 시장 내 입지였다. 막연히 잘 나가는 패션 플랫폼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제 한국 커머스 시장에서 쿠팡 다음으로 거론될 만큼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서비스가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큰 서비스인데도 실질적인 성과나 체급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아쉬움이 남았다. 앞으로 업계의 흐름을 더 민감하게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에이블리 팀의 사업 접근 방식이었다. 사실 기획자나 PM으로서 사업에 접근할 때 흔히 취하는 방식은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불편함을 포착하고, 직감이나 데이터를 통해 가설을 세운 뒤 이를 해결할 프로덕트를 만드는 방식이다. 나 역시 늘 '무엇을 만들 것인가', '어떤 유저의 페인 포인트를 풀 것인가'를 고민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이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유효한 문법일 것이다.


그런데 에이블리 팀의 사례는 조금 다른 우선순위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먼저 커머스라는 거대한 시장을 카테고리별로 세분화한 뒤, 각 영역에서 경쟁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대기업이 이미 선점한 영역과 아직 주인이 없는 빈틈을 명확히 구분해 내고, 승산이 가장 높은 세부 카테고리를 찾아내어 그곳에 화력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즉, 아이디어로 출발해 시장을 찾는 게 아니라 시장의 구조적 기회를 먼저 포착하고 그에 맞는 프로덕트를 설계한 것이다.


사실 사업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그렇지, 시장분석 자체가 새로운 전략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나에게는 이를 프로덕트 기획의 출발점에서 가장 강력한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만큼이나 "시장 내의 어떤 빈틈을 공략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덕트'라는 익숙한 틀 안에서 기획을 다듬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의 빈틈'을 먼저 읽어내고 있었다. 어떤 방식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내가 그동안 너무 한쪽 방향의 사고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에이블리의 사례는 아이디어 중심으로만 흘렀던 나의 기획에 '시장 구조'라는 또 다른 출발점을 더해주었다. 그동안은 프로덕트를 먼저 설정하고 그에 맞는 시장과 경쟁사를 찾아왔다면, 이제는 시장을 먼저 읽고 경쟁사들이 놓친 빈틈을 찾아 그에 맞는 프로덕트를 설계하는 접근도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기획의 시야가 한 단계 더 확장된 느낌? 앞으로 어떤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되면 이 두 가지 관점을 오가며 더 입체적으로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