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함께한 쇼스타코비치 공연들 (1)
쇼스타코비치 좋아하세요?
저는 좋아합니다. 좀 많이요.
그래서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4컷 만화로 소개하는 독립출판 만화책도 만들었고, 언리미티드 에디션 11 - 서울 아트북페어에 '쩨르진스끼 쏭 땐쓰 앙상블'이라는 부스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만든 독립출판물 두 권입니다. 위의 책 <PROKOFIEV SHOSTAKOVICH -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는 1913년부터 1953년까지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아래의 책 <SHOSTAKOVICH AFTER THAT - 쇼스타코비치 그 이후>는 1953년부터 1975년 쇼스타코비치가 사망하기까지의 삶을 4컷 만화로 담았습니다.
저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제대로 처음 듣던 날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것저것 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제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물론 매일 쇼스타코비치 음악만 듣는 건 아닙니다. 한동안 듣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들을 때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새롭고 제 마음을 마구 울립니다.
그래서 저는 올 한 해 작정하고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을 찾아다녔습니다. 시작은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하는 모든 공연에 가겠어!"였지만, 이 각오는 현실적인 이유로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서 더 좋습니다. 한국에서 점점 더 자주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쇼스타코비치는 20세기 클래식 작곡가 중에서 굉장히 자주 연주되는 편입니다. 또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20세기 작곡가 중에서 듣기 쉬운 편에 속합니다. 대체로 전통적인 클래식 조성을 따르고 있으며, 곡의 서사가 확실하고, 매우 극적입니다. 특히 쇼스타코비치의 대표곡인 <교향곡 5번>과 <교향곡 10번>은 이미 공연장의 주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올해만 해도 몇 차례 연주되었고, 내년 2월에도 서울시향에서 <교향곡 10번>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그 밖에 다른 교향곡도 작년, 올해에 몇 곡이 연주되었습니다.
2019년이 일주일 정도 남은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연말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계절이지요. 저도 이번 주에 합창 공연을 볼 예정이라 기대가 됩니다. 무엇보다 내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 벌써 클래식 공연계에 베토벤 바람이 느껴집니다. 아마 쇼스타코비치는 올해보다는 덜 연주되겠지요. 그래도 저는 올해 점점 더 따라다니기 벅찬 쇼스타코비치 바람을 맞은 터라 만족합니다. (쇼스타코비치 붐은 옵니다! 혹은 이미 왔을지도요.) 그럼 제가 올 한 해 열심히 쫓아다닌 쇼스타코비치 공연을 하나씩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프로그램
스트라빈스키 / ‘불새’ 모음곡(1919)
마르티누 / 오보에 협주곡 H.353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6번 b단조 Op.54
연주자
연 주 |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 휘 | 박영민
오보에 | 함 경
'올해'라고 했는데 처음부터 4월이 나와서 조금 놀라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정리하면서 제가 조금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1~3월에는 쇼스타코비치 공연이 없었나?"라는 질문에는 확답을 드리진 못하겠습니다만... 제가 본 공연 중엔 없었습니다. 그래도 2018년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쇼스타코비치 시리즈'를 진행해서 11월에는 노부스 콰르텟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2,8,3번>을 12월에는 KBS교향악단의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을 들었던 터라 공백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쇼스타코비치 시리즈'를 하고 있어 올해에도 몇 차례 쇼스타코비치 공연을 했습니다. 그중에서 <교향곡 6번>을 연주한 4월 공연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랜(?) 공백기 끝에 쇼스타코비치 공연을 접할 수 있어서 즐거웠기 때문일까요. 같이 연주된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은 곡이 끝나면 박수를 짝짝짝 치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동화 이야기입니다. 사실 전 불새 이야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넘어가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글의 주인공은 쇼스타코비치이니까요.
저는 이 공연을 개인적으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6번>의 재발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공연 이전에 제게 <교향곡 6번>은 너무나도 유명한 <교향곡 5번>과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사이에 끼어 그저 쇼스타코비치가 이 곡의 피날레를 마음에 들어했다는 글을 책에서 읽은 정도였습니다. 총 세 악장으로 되어있는 <교향곡 6번>의 시작은 '라르고(느리게)'입니다. 특히 교향곡 전체 30분 중 느린 1악장은 무려 20분으로 꽤 긴 편입니다. 서정적이며 느리고 긴 첫 악장을 공연장에서 접하면 조금은 듣기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느린 악장이 바로 <교향곡 6번>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서사성이 강하다고 말씀드렸는데, <교향곡 6번> 1악장을 귀기울여 듣다 보면 계속 쇼스타코비치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 음악에 가장 잘 집중할 수 있는 공연장에서 이 호소력은 더욱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넘쳐흐르는 <교향곡 6번> 1악장 음악 속에서 개별의 목소리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이어지는 2악장 알레그로에서는 조금 긴장을 풀고 음악을 즐기게 됩니다. 목관이 소곤소곤 내는 소리들이 인상적인 악장입니다. 그리고 이제! 3악장 프레스토(매우 빠르게)가 등장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6번>의 피날레를 두고 "이런 성공적인 피날레를 쓴 건 처음이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의 친구인 비평가 이작 글리크만 역시 이 피날레에 대해 "만약 모차르트와 로시니가 20세기에 살았고, 함께 교향곡 피날레를 썼다면 이렇게 나왔을 거야."라고 언급합니다. 경쾌한 3악장은 정말 로시니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그리고 피날레는... 구김살 없이 경쾌하고 밝게 마무리됩니다. 사실 저는 앞선 1악장을 두고 곡을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었나 싶기도 하고, "이런 성공적인 피날레를 쓴 건 처음이야."라는 쇼스타코비치의 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춤출 수 있을 땐 춤춰야 하겠지요. 이 곡을 지휘한 레너드 번스타인처럼요.
프로그램
하이든 / 현악 4중주 G장조 Op.33 No.5 ‘How do you do’
쇼스타코비치 / 현악 4중주 9번 E 플랫 장조 Op.117
차이코프스키 / 현악 4중주 1번 D장조 Op.11
연주자
보로딘 콰르텟
바이올린 : 루벤 아가로냔 (Ruben Aharonian), 세르게이 로모프스키 (Sergei Lomovsky)
비올라 : 이고르 나이딘 (Igor Naidin )
첼로 : 블라디미르 발신 (Vladimir Balshin)
보로딘 콰르텟이 내한이라니! 너무 신났습니다. 정말 신나서 공연장에 온다프레스에서 복간해주신 따끈따끈한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책을 들고 같이 사진도 찍었습니다.
보로딘 콰르텟은 쇼스타코비치와도 인연이 깊은 현악사중주단입니다. 1945년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 네 명의 음악가들이 결성한 현악사중주단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죠. 창단 멤버 중에는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스트로포비치는 바쁜 일정으로 보로딘 콰르텟에서 빠지고, 이후로도 보로딘 콰르텟의 구성원에는 변동이 있었지만 그 유명세는 여전합니다. 저는 보로딘 콰르텟이 연주한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8번> 연주를 정말 좋아하고, 보로딘 콰르텟의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전곡 앨범도 즐겨 듣는터라 내한 소식에 너무 기뻤습니다.
내한 프로그램 중 쇼스타코비치의 곡은 <현악사중주 9번>이었습니다. 사실 현악사중주를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 어떻게 이 곡에 대해 설명해야 할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보로딘 콰르텟의 연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곡은 하이든도, 기대했던 쇼스타코비치의 곡도 아니라 바로 차이코프스키 <현악사중주 1번>이었습니다. 이곡의 2악장은 따로 떼어서도 연주되는 유명한 <안단테 칸타빌레>입니다. 말 그대로 노래하듯이 느리게 연주되는 이 악장은 넘쳐흐르는 서정성이 떠오르는 곡이지요. 하지만 콘서트홀 무대에 뚜벅뚜벅 걸어와 느리게 인사하던 보로딘 콰르텟의 연주자들은 제가 이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차이코프스키 <현악사중주 1번>을 들려주었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전 음악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생소하고 낯선 해석이라도 그저 각자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겠지요. 공연이 끝나고 사인도 받고(이건 자랑입니다), 즐거웠습니다.
음악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안무 | 레나토 자넬라
예술감독 | 강수진
발레 <마타 하리>에는 쇼스타코비치 음악이 총 두 곡 사용됩니다. 바로 <교향곡 10번>과 <교향곡 5번>입니다. 정확히는 1막에서 <교향곡 10번>이, 2막에서는 <교향곡 5번>이 사용됩니다. 따라서 저는 2018년 첫 <마타 하리> 공연에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들으러 갔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무려 두 곡이나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첫 공연에서 전 눈물을 철철 흘렸습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1악장이 이렇게 슬픈 곡이던가요? 자바 섬에 살던 마타 하리가 남편을 떠나 파리로 향하던 장면에서 펼쳐지던 <교향곡 10번> 1악장의 클라이맥스 부분은 볼 때마다 울게 됩니다. 왠지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발레 <마타 하리> 1막은 음악과 조화나 전체적인 흐름도 괜찮았습니다. 전쟁을 표현한 장면과 짧고 긴박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2악장은 잘 어우러졌고, 3악장에서 마치 춤곡처럼 나오는 dsch 모티프에 맞춰 파리 사교계의 사람들이 춤추는 장면은 제가 이 발레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깨알 포인트로 발레 뤼스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딱 여기까지가 좋았습니다. 2막부터는 마타 하리의 서사를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마타 하리가 이중 스파이로 몰리는 과정에서 수많은 남성 배역이 등장하는데 누가 누군지 도저히 구별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무용수로서 마타 하리를 새롭게 조명해보려고 한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남성용 모자가 걸려 있는 옷걸이를 일일이 무너뜨리고 쓰러지는 마타 하리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프로그램
하차투리안 / 스파르타쿠스 모음곡 (발췌)
라흐마니노프 /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Op.43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1번 g 단조 Op.103
연주자
연 주 | KBS교향악단
지 휘 | 요엘 레비
피아노 | 다니엘 하리토노프
올해 들었던 쇼스타코비치 공연 중 가장 인상 깊은 공연을 고르라면 저는 바로 이 공연을 들고 싶습니다. KBS교향악단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연주와 같은 밀도와 집중력을 가진 공연은 정말 만나기 힘듭니다. 1시간가량 되는 곡을 악장 간 휴식 없이 내리 달렸으니까요! <교향곡 11번> 연주를 들을 당시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온통 무대를 향해 집중해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앞서 연주된 하차투리안 <스파르타쿠스 모음곡>도 정말 좋았습니다. 단언컨대 하차투리안은 소련 클래식 음악계 최고의 뽕짝입니다. 특히 제일 마지막에 연주된 <에기나의 바리아시옹과 바카날>은 뽕짝 그 자체입니다. 점점 더 광란으로 치닿는 음악을 들으며 <스파르타쿠스> 발레가 꼭 보고 싶어졌습니다. 익숙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으로 잠시 열기를 식히고 공연은 2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으로 향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은 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차르에게 청원하기 위해 차르의 초상화를 들고 향하던 시위대가 차르의 군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사건이지요. <교향곡 11번>은 이 역사적 사건을 총 네 개의 악장으로 생생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1악장에는 '궁전 앞 광장', 2악장은 '1월 9일', 3악장은 '영원의 기억', 그리고 4악장에는 '경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또한 이 곡에는 총 6개의 혁명가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곡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dozagi925/16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과 같이 역사적 사건을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는 음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 곡을 말할 때 곡이 담고 있는 역사적 배경(1905년 1월 9일 '피의 일요일' 사건)은 물론이고 곡이 만들어진 상황(1957년 10월 혁명 40주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요. 다른 회고록을 보면 이 곡과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의 연관성에 관한 언급도 나옵니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잠시 잊고 듣더라도 <교향곡 11번>의 꿈틀대고 요동치는 음악은 2019 한국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이런 게 바로 음악의 힘이라면 참으로 놀랍고 무서운 힘입니다.
프로그램
프로코피예프 / 고전 교향곡(교향곡 제1번) Op.25
쇼스타코비치 / 첼로 협주곡 제2번 G 장조 Op.126
림스키-코르사코프 / 셰에라자드 Op.35
연주자
연 주 | KBS교향악단
지 휘 | 요엘 레비
첼로 | 니콜라스 알트슈태트
또다시 KBS교향악단입니다. KBS교향악단이 올해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많이 연주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8월에는 영화제도 가고 휴가도 가고 마감도 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래서 이 공연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음, 이 공연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2번>이 연주되었군요! 첼로 좋아하시나요? 저는 첼로를 정말 좋아합니다. 한때 첼로를 배웠기도 하고요. 쇼스타코비치는 총 두 곡의 첼로 협주곡을 썼습니다. 그중 두 번째 첼로 협주곡은 여러 모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이 곡은 굉장히 음산하고 느린 악장으로 시작합니다. 어떻게 보면 내면적이라 할 수 있는 1악장은 첼리스트의 기교뿐 아니라 정서적인 영역까지 시험하는 것 같습니다. 1악장을 지나고 2악장에서는 분위기를 달리하여 약간 뒤뚱거리는 듯한 주제 선율이 등장합니다. 이 선율은 바로 우크라이나 오데사 길거리에서 불렸다는 '부블리크 사주세요'라는 노래입니다. (부블리크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에서 먹는 가운데 구멍이 뚫린 빵입니다. 사진을 보니 저도 먹고 싶어지네요.)
회고록을 읽어보면 어떻게 이 노래가 <첼로 협주곡 2번>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쇼스타코비치도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어떤 회고에는 쇼스타코비치가 이 곡을 초연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 명절을 같이 보내며 멜로디 맞추기 게임을 했는데, 그때 이 노래가 나왔다는 말이 나옵니다. 혹은 쇼스타코비치의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빵을 팔던 시절 이 노래를 불렀다는 말도 있습니다. 무엇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첼로 협주곡 2번> 특유의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란 어렵습니다. 타악기와 현악기의 피치카토가 번갈아가며 연주되다가 첼로의 D음과 타악기의 연주로 끝나는 마지막 부분에 어떤 설명을 붙일 수 있을까요.
저는 이 곡을 직접 들어보실 것은 추천해드립니다. 무엇보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아주 좋은 자료가 남아있거든요! 무려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2번> 세계 초연 동영상입니다. 이 곡은 1966년 9월 25일, 쇼스타코비치의 60번째 생일 기념 콘서트에서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로 모스크바 음악원 대공연장에서 초연됩니다.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이 공연장 어딘가에 쇼스타코비치가 앉아있습니다. 여러분은 쇼스타코비치와 같은 연주를 보고 있는 거예요!
프로그램
베토벤 / 에그몬트 서곡 Op.84
브람스 /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Op.77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2번 라단조 Op.112 <1917년>
Ⅰ. Moderato - Allegro 보통 빠르기로 - 빠르게 <Revolutionary 'Petrograd' 혁명의 페트로그라드>
Ⅱ. Adagio 매우 느리게 <Razliv 라즈리프>
Ⅲ. Allegro 빠르게 <Aurora 오로라>
Ⅳ. Allegro - Allegretto 빠르게 - 조금 빠르게 <Dawn of Humanity 인류의 새벽>
연주자
연 주 |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 휘 | 알렉세이 코르니엔코
바이올린 | 김재영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이 1905년이었다면 <교향곡 12번>은 1917년입니다. 바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해이지요.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번>을 연주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궁금해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번>은 제게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입니다. 연달아 두 번이나 러시아 혁명을 다룬 곡을 쓰고 정말 쇼스타코비치는 체제 선전 교향곡을 쓴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 생각에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음악을 듣는 것 자체가 물립니다. 음악을 들어야 하는데, 음악이 들리지 않고 다른 소리가 가득 채우는 셈이지요. <교향곡 12번>은 음악 자체를 보자면 괜찮은 곡입니다. 마치 거미줄처럼 얽히며 쭉쭉 밀고 나가는 <교향곡 12번>은 '역시 믿고 듣는 쇼스타코비치'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이 곡을 접할 때면 제 머릿속에는 복잡한 생각이 가득합니다. 이 생각을 정리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1962년 에든버러 축제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4번>과 <교향곡 12번>을 서구 초연한 지휘자 로제스트벤스키는 말을 가져와봅니다.
"<교향곡 12번>을 지휘하고 녹음한 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이것이 <교향곡 4번>보다 나쁘지 않은 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12번>은 그저 <4번>과 다를 뿐이다. 이것은 레닌, 그와 관련이 있는 혁명적 사건의 초상이 아니라 스탈린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무시무시한 우상인 '레닌 프로파간다', 혹은 '레닌-신'의 초상이었다. 그래서 <12번>의 작곡 스타일이 '프로파간다 현수막' 같고, 각 악장에 붙은 부제는 패러디인 것이다. 별로인 것은 오직 4악장 '인류의 여명' 뿐이다."
- Elizabeth Wilson, <Shostakovich : A Life Remembered>, 2006, p.387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2번>이 레닌이나 1917년 레닌을 중심으로 한 혁명적 사건을 묘사한 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우상화한 현상을 묘사했다는 로제스트벤스키의 지적이 새롭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귀에 이 곡은 그렇게 들리지 않습니다. 제 귀에 들리는 것은 1917년 혁명의 긴박함, 순양함 오로라의 발포 등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저도 이 곡에서 새로운 해석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때까지 계속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들어야겠네요. 그 앞날이 기대됩니다.
아직 2019년 제가 본 쇼스타코비치 공연 소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략 절반쯤 왔습니다. 하지만 공연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리고,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작곡가에 대해 쓰다 보니 글이 점점 더 길어지네요. 이쯤 해서 첫 번째 글을 닫겠습니다. 2019년 9월부터 본 쇼스타코비치 공연 이야기는 두 번째 글에서 이어집니다. 두 번째 글은 새해에 올라오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