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 온 뒤로, 올해는 전주국제영화제에 가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당일치기로 갔다 왔지만 집에서도 온라인으로 몇 편 봤다. 그럼 어떤 영화를 봤는지 간단히 써보자.
1. <바비 야르 협곡> - 세르히 로즈니챠 감독
바비 야르 협곡은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에 있는 곳으로,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독소전쟁 중 유대인 33,771명이 학살당한 장소이다. 처음 바비 야르 협곡을 알게 된 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3번>이 옙투셴코라는 시인이 쓴 <바비 야르>라는 시에 곡을 붙였기 때문이다. <교향곡 13번>의 1악장이 '바비 야르'라는 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목록을 훑어보던 중 <바비 야르 협곡>이라는 영화를 발견해서, 이 영화는 꼭 보고 싶었다. 다행히 온라인으로 상영해서 5천 원 주고 결제. 방에서 편하게 보았다.
영화 <바비 야르 협곡>은 아카이브의 영상과 사진 자료만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주로 이끌어나가는 내레이션도 <바비 야르 협곡>에는 없고, 오직 당시 영상, 사진, 그리고 중간중간 자막만으로 진행된다.
영상 속 당시 사람들의 얼굴은 그 표정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바비 야르 협곡'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고, 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 전쟁이기에 시신 등 잔인한 장면들이 모자이크 없이 나온다. 사전에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장면들은 손으로 가리고 봤다. 그리고 도시에 있는 시신들을 사람들이 모여서 쳐다보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주변에 죽음이 얼마나 많았길래.
영화 초중반까지만 해도 정말 영상과 사진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사람 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지만, 바비 야르 학살 사건을 재판하는 법정 영상이 나오면서 사람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1946년엔가 일어난 이 재판에서는 당시 생존자, 목격자, 그리고 학살을 한 SS대원의 증언이 담겨있다. 영화 가장 마지막에는 재판 이후 바비 야르 학살의 전범들을 광장에서 교수형 하는 모습이 나온다. 광장에는 아주, 아주 많은 인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2. <미스터 란즈베르기스> - 세르히 로즈니챠
두 번째로 본 영화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리투아니아 독립운동을 다룬 <미스터 란즈베르기스>이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영화는 <바비 야르 협곡>과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다. 역시 아카이브 영상으로 주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 영화다. 물론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은 비교적 근대의 역사이기에, 영화 속에 나오는 리투아니아의 정치인 란즈베르기스의 인터뷰도 함께 엮어서 등장한다.
<미스터 란즈베르기스>는 1988년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위해 창단된 사유디스 집회로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시종 인상 깊었던 것은, 독립운동 집회에서 많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른다는 점이다. 이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리투아니아 합창 축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는데, 이 나라 사람들을 비롯해 발트 3국에서 합창은 특별한 문화인가 보다 싶었다.
다시 리투아니아 독립운동으로 돌아와서, 영화는 아직 소련이 존재했지만 거의 끝물이던 1988년부터 리투아니아가 한 단계, 한 단계씩을 거쳐 독립국이 돼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재미있는 건, 당시 리투아니아 의회와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 총회(정확한 명칭이 기억이 안 난다) 영상도 나오는데, 정말 블랙 유머 보는 것 같은 묘한 말들이 실제 회의에서 나온다... 특히 소련 총회 쪽... (이 당시 사람들은 머릿속에 저런 블랙 유머를 장착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나와 정치성이 반대되는 사람이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웃긴답시고 하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을 것 같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는 1991년 리투아니아가 UN에 가입하고, UN총회에서 란즈베르기스가 연설하는 모습이 나온다. 부끄럽지만 이 장면에서 한편으로 놀란 건, 리투아니아가 UN에 가입할 무렵, 남한과 북한도 UN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난 한국이 UN에 그보다 이전에 가입했을 줄 알았는데....
<미스터 란즈베르기스>는 상영시간이 무려 4시간...이나 된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결제해서 본 나는 결제 후 24시간 안에 관람인 줄 알고 이틀에 나눠서 보려고 먼저 앞에 2시간을 보고, 다음날 뒤에 2시간을 보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결제 후 12시간 이내 관람이었다... 덕분에 두 번 결제했지만, 만 원이 절대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헉 소리 나게 길지만, 정말 재밌다. 러시아, 소련, 동유럽 역사 쪽에 관심 있는 분은 정말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3. <그들이 서 있던 곳에서> - 크리스토프 코녜
다시 제2차 세계대전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에서 나치의 감시를 피해 몰래 수용소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기에,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수용소에서 몰래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진에 담은 것도 영화 초반에는 의무실 주변의 수감자들의 모습에서부터, 화장장 주변, 변소, 막 수용소에 도착한 사람들 무리, 수용소 확장 공사를 하는 수감자들과 사진을 찍는 자기 자신, 자신의 상처를 내보인 인체 실험의 피실험자들, 마지막에는 가스실 안에서 존더코만도가 찍은 옷을 벗고 가스실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수감자들의 사진, 그리고 그들이 사망한 뒤 존더코만도가 밖으로 내놓은 시신들이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소개하는 사진들은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하나의 서사처럼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수감자들이 어떤 장소에서 어떤 구도로, 어떤 자세로 사진을 찍었을지 직접 찾고 현재의 모습과 사진을 겹쳐본다. 처음에는 저렇게까지 해서 어떤 곳에서 어떤 자세로 찍었는지 알 필요가 있나? 이미 사진이 있고, 그 사진이 담고 있는 내용 자체로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일 마지막에 가스실에서 찍은 사진을 본 뒤로 왜 학자들이 그렇게까지 해서 사진을 찍은 위치와 당시 상황을 알아내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건 영화의 제목인 <그들이 서 있던 곳에서>와도 맞닿아 있다. 가스실의 참상을 알린 사진은 그 참상이 일어난 장소를 찍지는 않았지만, 그 참상이 일어난 장소에 서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찍던 사람이 당시 어느 곳에 서 있었는지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수용소에 대해 모르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수용소에는 사진부, 영화관(주로 선전 영화를 상영하고, 고문을 하기도 했다.)이 있었고, 매음굴도 있었다고 한다. 영화 포스터에 나온 사람은 '토끼'라고 불리는 인체 실험의 피실험자이다. 그들이 받는 인체 실험은 글로 읽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었지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찍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에는 '인간성이 종말하는 이 장소에서 자기 자신으로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투쟁하는 것이었다.'라는 식의 말이 나오는데, 몰래 주변의 사진을 찍어 남기고, 자신의 사진을 찍고, 필름을 땅에 묻고, 밖으로 가져가는 이 행위들 모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4.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 - 시릴 쇼이블린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려고 당일치기로 전주에 다녀왔다... 이 영화는 온라인으로 상영하지 않았고, 내용도 내가 관심 있는 내용이고, 왠지 내 취향의 영화일 것 같아서 너무 보고 싶었다. 다행히 좌석이 남아있어서 예매하고, 질렀다...
결과적으로 정말 내 취향의 영화였다. 19세기 초반 스위스의 작은 산골 마을에 있는 시계공장 노동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의 이야기인데, 아나키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지만 표면에서 격렬한 갈등이 일어나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마치 체호프의 분위기 극처럼 잔잔하고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갈등이 당연히 존재하지만, 자본가(시계공장 경영진)와 노동자, 아나키스트(그중에는 시계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가 묘하게 공존하는 모습이다. 사실, 여기에 공존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나 싶지만 그렇다고 표면에서 말 그대로 치고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 묘하게... 묘하게 서로 까면서 살아가는 모습이라서 이 부분이 또 재밌다.
예를 들어서 시계공장 경영진이 담뱃불을 지필 때, 공장 노동자가 자신의 성냥을 꺼내서 불을 붙여주고, 성냥갑은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공장 경영진이 이 성냥갑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읽게 되는데, 대략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류의 선전문구가 쓰여있다. 그리고 이 공장 경영진이 나중에 외부의 정치가였나 군인과 이야기하다가 아나키스트들의 신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장 경영진은 놀랍게도, 정치가에게 이 아나키스트 신문을 읽어보라고, 그들은 연락망이 발달해서 외국의 소식도 실려 있어서 유용하다고 말한다. 이 장면을 보고 이건 완전 실용주의적 관점 아닌가 싶었다. 물론 시계공장 경영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에 관해서만 실용주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공장 생산량에 저하가 되는 요인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전형적인 자본가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또 인상적인 것은 이 스위스 산골의 작은 마을에 표준시각이 무려 네 가지나 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쓰는 시각, 시청에서 쓰는 시각, 지역에서 쓰는 시각 등이 몇 분씩 다르다. 공장에서 쓰는 시각은 다른 시각에 비해 8분이 더 빠른데, 공장 경영진은 이 공장 표준 시각에 대해 다른 시각보다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영화 상영 후 이뤄진 GV에서 감독이 이 표준시각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현재 우리가 쓰는 시각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의 협의로 정해진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여러 모로 재밌는 구석이 소소하게 여기저기 숨어있듯 들어있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 19세기 스위스의 정치적으로 묘한 상황 덕분에 일어난 일들에 관심이 있는데, 그래서 더욱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이렇게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온, 오프라인으로 본 영화를 소개해보았다.
다음번에는 당일치기가 아니라 좀 더 여유롭게 전주국제영화제를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