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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하다 Feb 13. 2024

#1. 나는 행복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왜 그랬어?






 “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오늘을 즐기자? “


이런 문장은 나에게 책에서나 혹은 티브이에서 보이는 그런 추상, 한없이 가벼운 광고 문구 같은 것이었다.


오늘 하루 즐기고 싶을 때 누구나 툭 던질 수 있는 그런 합리화로 똘똘 뭉친 문구, 늘 한 걸음 물러서서 그런 삶들을 바라보며 얼굴을 찡그리곤 했다.



“ 운 나쁘게 백 살까지 살아버리면? “


남은 수 십 년을 그렇게 불안정하게 즐기며 살 수가 있어?


멋지게 캠핑카를 끌고 전 세계를 누비고 나면 거기까지, 돌아오는 편은 소개되지 않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무책임한 언행일 뿐이라고

나는 아주 공고하고 명확하게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던 마흔, 을 넘긴 어느 날 문득,

얼음판같이 공고했던 내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어떤 회오리가 몰아쳤고 고리타분하고 흔한 질문이 꽈리를 틀기 시작했다.



“ 그런데 정말 내일 내 삶이 끝난다면? "


황당하게도 나는 내가 오래 살 것이라는 전제만을 두고

이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근거로 나는 오래 살 것이니 그런 생각은 할 필요도 없으며, 그런 무책임한 질문 따위로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결론 내린 걸까.


매일같이 일만 하며 지나치게 정석대로 열심히 사는 것치곤, 하필이면 죽음에 아쉬움도 없는 편인데.


내가 경멸하던 그 흔하디 흔한 질문이 섬광처럼 머리를 치고 지나갈 때 나는 대비하지 못했다.


어떤 타인이 아닌, 내가 나에게 하는 이 질문이 공고했던 내 삶을 흔들 것이라고는.






“ 그런데 정말 내일 내 삶이 끝난다면? "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내가 나에게 질문을 하다가

어느 순간 뇌를 흔드는 혼미함에 심장이 툭 내려앉고, 무감각하던 정신은 누군가가 바늘로 툭툭 찌르는 것처럼 마구 흔들렸지.


나는 아무것도 해본 것이 없었다.


중요한 일정을 취소하고 바다로 떠나본 적도,

눈 밭에서 미친 사람처럼 굴러본 적도,

우산을 버리고 구두가 젖도록 빗 속을 첨벙첨벙 걸어본 적도,

당장 하고 싶은 무엇을 닥치고 일순위로 해본 적도,

떠오르는 그 순간 누군가에게 보고 싶다고 말해본 적도,

어디선가 우연히 본 작고 예쁜 카페에 당장 가보고 싶어도 합리적인 이유로 늘 가장 가까운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으로 향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어른, 그게 나였어.






그저 정해진 업무를 조심히 빈틈없이 완벽하게, 그리고 고상하고 또박또박 해내는 것에 몰두했지  


머릿속에 회오리가 몰아치고 내게 물었어.


“ 그런데 왜 그랬어? “



음.. 그래야 하니까?

당장 내일 죽을 확률보다는 운 나쁘게 오래 살아버릴 확률이 더 크니까?

이왕 살아야 한다면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고만고만한 그 바닥에서 한 계단 더 올라가는 소소한 성취감과 동기부여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이왕이면 잘 해내는 것이 편했어. 공부하고 연구하고 주어진 일을 해치우는 것쯤은 힘들지 않아, 정말이야.


나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 대답하고는 그 대답의 하찮음에 실없이 힘이 풀리고 만다.


그래 합리적으로 내일 내가 죽을 확률이 너무나 낮다는 것은 알지만 만약 그 0.00001%의 대상이 나라면 생각보다 좀 더 힘들 것 같네.






내일 삶이 끝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대체 왜 못해본 건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하고 싶은데 못해본 일들이 너무나 소소해서,

보고 싶은데 보고 싶다고 말하지 못한 이유는 하찮았고,

어리석은 내 선택의 무게는 너무 무거워서,

남들의 시선과 나의 자존심에 눌러 담은 내 마음들이 너무 가여워서.


그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이 얼마나 나를 더 나아지게 했을지 사실은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그래.



뇌를 흔드는 섬광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공고했던 내 삶에 균열이 나기 시작한 것은 알겠어.


그 균열이 나를 흔들어대자 또각또각 차디찬 건물을 걷는 내 구두 소리가 버겁게 느껴져, 나는 하던 업무를 처음으로 미루고 예전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들려올 말들을 걱정하기 전에,

가벼운 마음으로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어.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랬어.


이 단순한 문장으로 당당하게 대답을 하고 싶다.


나를 둘러싼 아흔아홉 가지 이유들은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어. 결국은 한 가지 이유가 남는다.


“ 나는 행복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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