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실패가 두렵다.

by moonlight

두 달째다. 집에서 반경 500M를 벗어난 것이 손에 꼽을 정도다. 아~ 정말.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창밖으로 내리는 햇살에 멍 때리기 일쑤다.


헤헤. 그러다 며칠 전 동화 작가 이원수 님을 만났다. 직접은 아니고 책으로......

《도깨비 마을》, 《불꽃의 깃발》, 《떠나는 송아지》 등을 읽고 읽고 또 읽는다.

1970년대에 태어나 2017년에 비로소 동화의 매력에 빠지다니.......

가끔 잠자리에 누워 아이들에게 ‘꼬꼬마와 자이언트’라는 꾸며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이참에 나도 동화 쓰기에 도전해 볼까? 하는 열정이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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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쉴 겸, 다른 서가를 기웃거리다 구본형 님의 《마지막 편지》(2013, 휴머니스타)라는 책을 찾았다. 고전을 풀이한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차분히 손에 들고 읽어 간다. 콩닥콩닥.

책은 사랑에 빠진 L에게, 일밖에 모르는 M에게, 졸업을 앞둔 S에게 등등 ‘어제보다 아름다운 오늘을 살고 싶은 그대에게’ 보내는 열네 편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편지는 작가가 되려는 제자의 일탈(?)을 걱정하는 스승의 마음을 담은 <잡다한 일로 꼭 하고픈 일을 못 하는 P에게>다.


“알 수 없구나. 크로아티아 여행기를 끝내야 하는 네가 어쩌다 연극에 영혼이 팔려 그 일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말이다. 네 하루하루의 글은 그저 잡다한 잡문이 되어 머물고 만다. 너는 하나의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 듯한 작품에 힘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타오르는 열정으로 한 나무 조각을 파다가 이내 그만두고 다른 나무 조각을 깎기 시작한다. 네 주위에는 파다만 조각상들만 즐비하다.”(15쪽)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지난 두 달간의 무기력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게 되었다.


2년 전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진행한 작업이 있다. 초고는 작년에 이미 완성되었지만, 출판사의 사정으로 진행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다른 곳을 찾아야 할 것 같다. 3년 전 처음 출간을 했을 때, 마치 입사 원서 내듯 끊임없이 기획서와 샘플 원고를 제출했다. 우리 가족의 손가락을 모두 합쳐도 안 될 만큼 거절의 메일을 받았고 그 이상으로 외면당했다. 그 일을 또 하려고 하니.... 생각만 해도....


게다가 공동 집필 제안을 받고 올 초에 초고를 완성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런데 함께하기로 한 분의 작업이 더디다. 아마도 아마도 생각하기 싫지만 한 달 두 달은 그냥 지날 것이고, 서랍 속에서 흐물흐물 잊힐 것 같다.

이렇게 두 개의 원고가 깊은 잠을 자고 있었고, 이젠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야 함에도 앞으로 받을 상처에 그만 모른 척, 상대를 더 믿어보기로 하며 무작정 묵혀두며 모른 척했다.


“《맹자(孟子)》에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이란 말이 나온다. “물이 흐르다 웅덩이를 만나면 그 웅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네게 꼭 한마디를 해야 한다면 이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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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라. 신은 누구에게나 공헌할 수 있는 특별한 역할을 맡겼다. 너를 잡다하게 써 낭비하지 마라. 너를 딱 맞는 네 일에 집중해 쓰도록 해라. 그리하여 오래 그 일을 배우고, 좋아하고, 이윽고 그 일로 먹고살고 즐길 수 있는 통달한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다. “ (21쪽)



그의 한마디가 내 마음에도 쑥 들어온다.


거절당하는 것도 싫고,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도 않다.

아직도 실패가 두렵다. 하지만


다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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