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공무원에게 묻다>가 출간된 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인터뷰이 중에는 근무기관을 옮긴 이도 있고, 국외훈련을 가거나 육아휴직을 한 이도 있으며 승진을 한 이도 있습니다. 이후의 소식이 궁금하시죠?
지난 6일. 전라남도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는데요. 여기서 살짝 선배 공무원으로 소개했던 엄미현 동장님을 만났더랬습니다. 지금은 승진해서 동장님이 아닌 광산구청 복지교육국장님으로 일하고 있죠. 아니 그전에 <우리 동장이 수상해>란 책을 집필하며 작가가 되셨습니다.
엄미현 국장님은 인터뷰할 때는 우산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더불어樂노인복지관, 이야기꽃 도서관, 광주여자대학교 등을 다니며 시민들의 생활공간을 보고, 듣고 느끼고 왔답니다. (잠깐 짬을 내서 고 이건희 기증품이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광주시립미술관을 못 간 것은 좀 많이 아쉬웠지만요.)
여전히 엄미현 국장님은 시민과 행정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가며 활동하고 있었어요.
근데 눈에 띄게 다르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데요. 바로 업무 범위였어요.
직급이 높아지고 그에 맞는 직위가 주어지면 다양한 정보를 듣고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조율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기잖아요. (물론 그거 하라고 승진시키는 거잖아요.) 그런데 소위 한솥밥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심 팔이 안으로 굽기를 바라고 있잖아요. 승진이나 포상은 물론이고 조직 확장과 인력, 예산의 지원에서 팍팍 이뤄질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죠.(명확하게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순전히 제 경험에서 나온 촉으로 짐작한 가정이에요.)
근데 이분이 또 그런 분은 아니거든요. 관성에 따라 일하는, 내 식구 챙기는 분이 아니죠. 직위에 맞는 책임과 권한을 생각하시더라고요.
아마 힘든 시기를 함께 겪었던 동료들은 속이 상했을 거예요.
속사정을 잘 알면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는 서운함이 커지겠죠.
하지만 챙겨주는 거. 직위에 따라 바뀌는 거예요. 대상에서 방식으로 변화는 겁니다.
특정인을 겨냥해 당장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공정한 시스템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제거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중간관리자 A직렬이 하던 업무에 B직렬도 가능토록 열어두었다면 A직렬은 전문성을 부정당하거나 자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B직렬이 하던 중간관리자 책무에 A직렬도 갈 수 있도록 열어두는 거죠. 승진해 관리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능력 위주로 열어두는 거죠.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다음 승진은 내 차례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요. 그에 대한 원망을 감당하는 것도 국장이란 보직자의 책무임을 엄미현 국장님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해요.
근황을 이야기하는 중간에 나온 이야기로 가정해본 설정이지만
혹여 승진한 상사에게 배신감을 가진 분이 있다면 자신이 떠나고 공정한 체계 속에서 지속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분이라 생각하심 어떨까 하는 마음에 적어보았습니다.
참, 엄미현 국장님은 <젊은 공무원에게 묻다>에서도 공직자의 태도를 강조했어요.
국장님은 된 지금은 어떠냐면요? 후배 동료들이 ‘거절도 친절하게 하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이는 생각 만해도 어려운 일이거든요. 거절하기도 쉽지 않지만, 이를 친절하게 하라니요.
어때요? 단순히 태도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전문성이 없으면 친절하게 거절할 수 없어요. 거절의 이유를 확실히 인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이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친절하게 거절할 수 있는 거잖아요. (배울 것이 많지만 쉽지 않은 상사예요. ㅠㅠ)
그리고 폐지 줍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어요. 사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없어요. 신호등 건널 때 가끔 무단횡단처럼 보일 정도로 초록과 빨강 신호의 사이에서 길을 건너 어르신과 수레를 보았죠. 수레를 끌고 가니 보행자 신호가 아닌 차량 신호를 보는 것인가 하는 착각을 하면서요. 뒤에서 살짝 밀어드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제 일상 속에 들어오진 않았어요.
국장님은 이 분들을 안타까워했어요. 그러면서 복지가 확대되어 노인분들이 폐지 줍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빨리 오길 바라셨죠. 그런데 한 자원순환 전문가와 얘기를 나누던 중 생각이 확 바뀌었대요. 그 전문가는 폐지 줍는 노인을 ‘자원순환 활동가’라 칭하며 최일선에서 선 그분들로 인해 자원순환의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요. 물론 그분들의 고단함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단순히 복지의 대상자로 노인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함을 함께 인식하고 이에 맞게 대우하자는 시선이 깔려있는 거예요. 그래서 가볍고 안전한 수레를 제작해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어때요?
엄미현 국장님과 함께 한 4시간 동안
이번에도 저는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엄미현 국장님에게는 공직생활이 200여 일 남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그리고 퇴직 후에도 그러해야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무언가 하나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나씩 만들어가야겠지만, 뭔가 발칙한 것을 해보고자 해요.
앵무새처럼 모범답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땡땡땡 이라며 욕을 내뱉더라도 자기 생각을 까칠하게 표현하는 것으로요.
이제 그 궁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