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삶도 죽음도 시작이었다.

by moonlight

11월 그날 저녁. 툭툭 거리며 비가 내렸다. 시원함 대신 끈적함이 쌓이던 날, 발열이 시작되었다. 발전기도 아닌 내가 이렇게 뜨거운 열을 뿜어낼 수 있다니 두려웠다. 해열제를 먹었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터질 듯한 가슴에 손을 올리고 숨을 깊이 쉬지만 뜨끈한 무언가가 꽉 틀어막고 있었다.

주말 야간 진료하는 병원을 검색했고, 집에서 5.6㎞ 떨어진 곳의 소아청소년과를 찾아냈다. 성인이어도 진료 가능한지 물어본 후 ‘똑닥’으로 예약하고 홀로 이동했다. 비에 이끌려 젖은 바닥에 주저앉은 낙엽을 보자니, 한여름 초록 잎사귀가 보냈을 뜨거운 순간을 그려졌다.


멍한 머리를 들고서 한참을 기다려 신속항원검사를 받았고, 더 한참을 기다려 양성 통보를 받았다. 가슴이 답답하다 호소했으나, 의사는 뉴스에서 나오는 일을 잘 일어나지 않는다며 며칠 쉬면 괜찮을 거라 했다. 그의 말이 나의 뒷등을 스쳐 지날 때, 기온이 떨어지는 깊은 밤 치솟을 나의 체온 걱정에 무서웠다. 침묵하며 진료실을 떠나지 않는 나에게 의사는 말했다.


“힘들면 119로 전화하면 돼요.

심야에도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데려다 줄 거예요.”

그는 나의 걱정에 공감하지 못했고,

나는 그의 진료에 동의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작은 공간에 꼭 박혔다. 약은 먹었으나, 추운 밤은 길었다.

다음날 약으로 견뎌낼 수 있었으나, 두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이렇게 끝나는 생도 있겠구나.

회복의 기미가 없다면

이런 상태의 지속이라면

생을 중단하려는 이도 있겠구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마음과 행동에 내 마음을 포개어 보았다.


‘사람은 철저히 혼자구나’


날 걱정하고 돌봐주는 이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 모든 순간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의 고통만이 내 의식을 오롯이 지배하는 순간을 경험한 냉혹함의 표현이다.


누군가는 하루 이틀의 두통과 발열, 인후통이 지나면 괜찮다고, 심지어 아무런 증상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타인의 경험담은 나의 아픔 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와 중증환자, 사망자 수를 보며 생과 사의 무게를 가늠해 본 적 없이 그저 많고 적음의 숫자로 간주한 내가 감히 서운할 일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내 삶의 해프닝으로 간주되는 현실에서


나의 죽음 또한

누구의 생에서 소소한 해프닝, 어쩌면 사망자 ‘+1’로 인식될 테다.

나와 너의 삶과 죽음 속에서

서로의 생과 사가 뒤섞인 것을 보니


삶이 시작이라면

죽음도 시작이겠다.


이제 밤이 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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